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홍순명, 변죽 울려 전체 드러내기 20여년

등록 2022-11-15 07:00수정 2022-11-15 09:17

중견화가 홍순명 개인전 눈길
2층 전시장에 나온 신작 <비스듬한 기억-바다 Ⅰ>(2022). 노형석 기자
2층 전시장에 나온 신작 <비스듬한 기억-바다 Ⅰ>(2022). 노형석 기자

‘하나를 보면 열을 알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이런 예술적 믿음을 세우고 ‘변죽 울리는 그림’만 발버둥 치며 그렸다.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 2~4층에서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재난, 가족’이란 제목으로 지난 9월부터 개인전을 열고있는 중견화가 홍순명(63)씨. 그의 이력은 유별나다.

전시장의 2층에 내걸린 거대한 크기의 재해 현장 그림들-오스트레일리아 산불, 9·11 뉴욕 테러 당시 일어난 화염, 부산 해변을 덮친 태풍 해일 등-에서 짐작되는 바이지만, 그는 우리 일상을 감싼 여러 사건과 현상의 이미지에서 잘 보이지 않는 주변부를 화폭에 드러낸다.

유학하고도 10년 가까이 현지 작가로 활동하던 프랑스 파리에서 1998년 귀국한 그는 국내 대안적 공간의 원조가 된 쌈지스페이스 1기 작가로 한국 화단에 새삼스럽게 얼굴을 알린 뒤 2000년대 초반부터 날마다 쏟아지는 세계 각지 시사 보도 사진들을 주된 소재로 떠와서 크고 작은 그림들을 그렸다. 팝아트처럼 베껴 옮기거나 극사실적인 묘사에만 천착한 것이 아니었다. 주목하지 않는 사진의 주변부 이미지를 거칠고 빠른 광필로 휙휙 그어 확대하거나 분석적으로 파고들어 세필로 묘사하는 ‘사이드스케이프(주변의 풍경)’ 연작들을 꾸준히 내놓았다. 1990년대 중반 파리에서 유학을 마치고 현장 작가로 힘겹게 작업하던 시절 우연히 탐독한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라는 명저를 보고 ‘부분 안에서 대부분의 전체를 찾아볼 수 있다’는 화두를 끄집어내어 자신의 작업에서 어렴풋하게 실현한 것이었다. 재현에 집착하지 않고 사진의 부분적 이미지들을 통해 숨겨진 사건이나 현상 이면의 보이지 않는 질서나 기운, 의미 등을 회화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작업들은 리얼리즘, 모더니즘, 추상과 구상 등 도식적인 사조적 틀에 포괄되지 않는 특유의 자유롭고 난해한 상상력을 쏟아냈다. 이런 홍순명 화풍의 특징은 2000년대 이후 그림 보기의 새로운 담론을 제기하는 몇 안되는 중견 대가의 반열로 그를 끌어올린 원동력이 됐다. 이번 전시는 이런 측면에서 틀거지가 새롭다. ‘사이드 스케이프’의 연장선상에서 인간 사회가 통제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재해, 재앙의 세부 이미지들을 수십개의 조각 그림들을 합체시켜 드러낸 대작들을 서두에 내놓았다. 작가의 속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홍순명 작가가 최근 그려온 &lt;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gt; 연작의 일부(2020). 노형석 기자
홍순명 작가가 최근 그려온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연작의 일부(2020). 노형석 기자

“사람이 만든 문명의 선을 뛰어넘은 자연현상이나 인공적 사고가 곧 재해인데, 그냥 이미지로만 보면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는 게 모순적입니다. 사실 이런 재해는 끔찍한 인명과 건물, 재산 등의 피해로 직결되기 때문에 이런 참상과 아름다움을 나란히 양가적으로 민감하게 느끼는 예술가의 감각을 화폭에 그대로 펼쳐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

그의 말대로 2층은 산불과 해일, 테러, 풍랑 등으로, 짓쳐들어오듯 위협적이면서도 아득하고 거대한 화마와 불똥, 산 같은 물결과 연기 속 화염의 실루엣들이 가로 7~8m 대작들을 통해서 묘사된다. 작가의 말대로 양가적인 감각을 담았다고 하지만, 관객에 따라 자신의 기억, 특유의 안목이나 감각에 의해 참상의 풍경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어서 감상의 묘미가 절묘하게 느껴진다.

지난 13일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 전시장에서 만난 홍순명 작가. 그의 뒤로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인 대작 &lt;풍경-아이러니&gt;(2022)가 보인다. 노형석 기자
지난 13일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 전시장에서 만난 홍순명 작가. 그의 뒤로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인 대작 <풍경-아이러니>(2022)가 보인다. 노형석 기자

더욱 흥미로운 건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란 제목이 붙은 3층의 근작들이다. 평소 종교관이나 자신의 직업을 놓고 심각하게 갈등을 빚어왔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화두로 그의 개인사와 삶의 정체성을 회화로 표현한 작업들인데, 표현방식이 자못 흥미롭다. 과거 어머니의 삶이 담긴 흑백 사진 이미지를 바탕에 재현하고 그 위에 자신의 삶이 담긴 컬러 사진 이미지를 겹쳐 올리되 그사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사건의 이미지 형상을 테이프를 붙였다가 떼어낸 형상과 겹쳐, 3개의 이미지들이 서로 삼투되는 독특한 방식의 화폭을 구현했다. 부분과 전체라는 화두로 재해나 일상적 자연적 현상의 세부를 포착해 붓질하던 그의 묘사 방식이 새롭게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거대한 빙산 하나가 녹는 과정 자체를 재앙의 징후로 보고 창백한 푸른 톤의 색조에 물감을 흘리거나 퍼뜨리는 기법으로 묘사한 4층의 빙산 연작들도 예사롭지 않은 변모의 한 단면이다. 작가는 “기존 연작의 변모를 의식한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나이 들면서 개인적으로 살풀이하듯 그림 자체로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자연스럽게 재앙 연작과 함께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양자택일적 사고에서 벗어나 주변부에서 새롭게 대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사이드스케이프‘의 미학 개념을 지난 20여년간 일관되게 추구하면서 빚어낸 성찰적이고 감각적인 그림들로 가득한 전시다. 작가의 손맛과 회화, 시대에 대한 지적인 고민이 조화를 이룬 출품작들은 작가가 고백하듯 “작가로서 가는 길에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이자 “지금의 나를 설득하려고 노력한 대답의 흔적들”이라고 할 수 있다. 20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