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프 무효타로브 전통제지술 보유자가 사마르칸트시 외곽 테르메스 거리에 있는 수공업 제지공장에서 종이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마른 뽕나무 가지를 잿물 속에 넣어 끓인 뒤 나온 것이다.
정수일의 실크로드 재발견 <21> ‘종이의 길’을 튼 ‘사마르칸드지’
종이제작 최적지 사마르칸트에 정착…유럽에까지 종이 전파 일찍이 중국에서 발명된 이른바 ‘채후지(蔡侯紙)’는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식물성 섬유지의 원조로서, 아직은 양피지나 파피루스 같은 원시적 서사재료를 쓰고 있던 이슬람 세계와 그를 통해 유럽에 전파되게 된 계기는 바로 고선지 장군이 이끈 탈라스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이슬람-석국 연합군에 포로가 된 2만명 당군 가운데는 많은 기술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제지기술자도 더러 끼어 있었다. 이들 제지기술자들에 의해 서방에서는 처음으로 당시 강국(康國)의 수도였던 사마르칸드에 제지소가 세워져 종이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사실은 중세 아랍-이슬람 학자들의 여러 기록에 의해 확인된다. 아랍 사학자 자히즈는 사마르칸드에서의 종이(카기드) 제조에 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이슬람 세계에 처음으로 등장한 종이는 이슬람력 134년(서력 751년) 아틀라흐 전투(즉 탈라스 전쟁)에서 지하드 이븐 살리흐(이슬람군 총사령관) 장군에게 잡힌 당군 포로들이 사마르칸드에서 만든 것이다. 그들은 본국에서 하던 방식대로 아마와 대마 조각으로 종이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그때부터 이를 모방함으로써 이슬람제국 여러 곳에서 양산되었고, 그것이 다시 유럽으로 돌어가 명성을 얻게 되었다.” 유사한 기록은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 세력이 승승장구 동진하면서 한창 중앙아시아가 이슬람화되어 가고 있을 때, 그 중심지의 하나였던 사마르칸드는 수자원이 넉넉하고 수리관리가 발달한 오아시스 도시로서 종이 원료인 아마나 대마를 재배하는 데 더 없는 적지였다. 새로운 문명에 대한 목마름 속에서 이곳에 진출한 아랍-무슬림들은 탈라스 전쟁에서 생포한 중국인 제지기술자들을 지체없이 활용해 처음으로 제지공장을 세워 질 좋은 종이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얼마 안 가서 이곳이 제지업의 중심지가 되고, 종이가 이곳의 주요한 교역품으로 부상한다. 당시 외지인들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종이를 산지 이름을 따서 ‘사마르칸드지’라고 부르며 선호했다. 사마르칸드지의 수출과 더불어 제지술이 점차 아랍-이슬람제국의 각지에 전파되었으며, 급기야 이슬람 세계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와같이 사마르칸드지는 종이가 서방으로 전파하는 길, 이른바 ‘종이의 길’에서 관문과 고리 역할을 함으로써 동서문명교류에 큰 기여를 했다. 여기에 더해 그 출현은 고선지 장군이 쌓아올린 위업의 하나라는 사실 때문에 필자는 일찍부터 사마르칸드지의 현장추적에 큰 관심을 품어 왔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관련 유적에 관한 구체적 실증은 별로 없이, 주로 문헌기록에만 의존하다 보니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사마르칸드에 도착한 첫날부터 이번만큼은 꼭 한번 현장조사를 해보기로 작심했다. 7월 30일, 사마르칸드 역사박물관을 참관할 때, 탈라스 전쟁에 의한 제지술의 전파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한 학예연구관으로부터 전통제지술 보유자의 주소를 대략 알아가지고 찾아나섰다. 근 두 시간 동안이나 탐문을 거듭하던 끝에 어렵사리 알아낸 곳은 시 변두리에 있는 테르메스 거리에 자리한 자그마한 수공업 제지공장이다. 공장 주인이자 전통제지술 보유자는 50대 초반의 자리프 무흐타로브다. 그는 사마르칸드 수공업협회 수공업발전센터 소장으로서 1997년부터 이곳에 100여평의 공장을 차려놓고 대여섯 전수생들과 함께 전통제지술을 복원 전수하는 작업을 하면서, 마당에 시료로 뽕나무를 심어 키우고 있었다. 한편, 그는 약 20분 거리에 있는 곳에 현대식 제지공장을 세울 계획이라면서 이미 완성한 설계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몇년간 ‘종이의 길’을 추적하기 위해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여러 나라들이 취재경쟁을 벌인다고 귀뜸하면서, 관련국인 한국의 관심과 협조를 요망했다.
그에 의하면, 당시 사마르칸드를 끼고 흐르는 씨압 강 유역에 300여소의 제지공장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어 질 좋은 ‘사마르칸드지’를 대량 생산했는데, 당시 주원료는 아마나 면화 나무였으며, 그런 전통은 1920년대까지 지속되어 왔다. 그러다가 현대적 제지술에 밀려 거의 멸적위기에 처한 것을 최근 다시 복원하고 있으며, 지금은 가끔 면화 나무를 쓰기도 하지만, 뽕나무를 주원료로 쓴다고 한다. 전통제지술의 복원에 대한 그의 자긍심이나 집념은 여간 굳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전수생들을 데리고 전통종이의 제조과정을 다음과 같이 재현해 보여주었다. 마른 뽕나무 섬유를 나무를 태워 만든 잿물 속에 넣어 6~7시간 끓인 다음 나무판 위에 놓고 거볍게 두드려 섬유질이 풀어지게 하고는 물로 깨끗이 씻는다. 씻어낸 섬유를 채에 걸러서 물기를 뺀 다음 널어서 구덕구덕 말린다. 그리고 나서 로울러나 두 널판자 속에 끼워 압축해 물기를 말끔히 빼낸 다음 나무판 위에 널어 말리면 애벌 종이가 된다. 그런 다음 조개 껍데기로 문지르면 반들반들해지고 윤이 나며, 암염 가루를 약간 뿌리면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앞뒤가 비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흰 종이는 눈을 자극하기 때문에 요즘은 주로 황지를 제조하는데, 그 목적은 판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서 복원이나 전승에 있으며, 전통 그림을 그리는 데도 쓰인다고 한다.
아랍군에 잡힌 제지기술자들, 조선 도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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