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커튼 틈 사이로 처음 그댈 보았지~.” 1994년 히트곡 ‘늪’을 기억하는가. 당시에도 가사가 꽤 논란이었다. ‘남의 아내’를 짝사랑한다는 점이 부도덕하다는 비난이었다. 그런데 지금 들으면 ‘남의 아내’인지보다 스토킹이 연상되어 소름 끼친다. ‘늪’의 가사가 문제란 인식은 공유하지만, ‘남의 아내’를 탐해서 부도덕하다는 시각과 여자를 스토킹해서 범죄라는 시각은 다르다. 전자는 가부장적 시각이고, 후자는 여성주의적 시각이다. 이처럼 뭔가를 반대한다는 점은 같지만, 이유가 완전히 다른 경우가 있다. 포르노가 성적 문란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성엄숙주의적 입장이 있는가 하면, 포르노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와 폭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성평등주의적 입장이 있다. 둘은 다르지만, 포르노 추방에서 한목소리를 낸다.
서론이 길었다. 최근 <고딩엄빠2>(엠비엔·MBN) 논란을 말하기 위해서다. 시즌1 시작부터 폐지하란 목소리가 있었다. 청소년의 성관계와 임신, 출산을 부추긴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비판적 지지의 목소리도 있었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인정하면서, 피임 교육을 강화하고 임신 중단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되 출산을 결심한 청소년에게는 키울 수 있도록 현실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시즌2로 접어들면서 무색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성엄숙주의적 폐지론과 성평등주의적 폐지론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즌2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출연자 중 상당수가 성인 남성과 미성년 여성 간의 임신으로 출발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이나 막막한 청소년 부부에 대한 지원이라는 명분은 퇴색한다. 그보다는 성인 남성과 미성년 여성의 기울어진 권력관계, 성인 남성의 무책임과 무능, 그리고 성적 착취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일례를 보자. 13회에 출연한 커플은 30살의 배달원이 자신을 ‘삼촌’이라 부르던 17살 아르바이트생에게 ‘오빠’라고 부르라며 친하게 굴다가 임신했다. 이후 결혼한 여성은 25살에 두 딸의 엄마가 되어 빠듯한 살림에 권위적인 남편의 잔소리를 참으며 살아간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25회에 출연한 커플은 부모의 이혼과 학교폭력의 트라우마를 지닌 15살 여중생이 교회에서 목사님의 아들이자 10살 연상의 교회 선생님과 친해져서 18살부터 비밀연애를 하다가 19살에 임신했다. 산모는 가출하여 홀로 미혼모 시설에서 출산한 뒤 결혼했다. 그 뒤 10년간 여자는 계속 아이를 낳아 지금 5남매의 엄마다. 교회 선생님과 학생으로, 즉 정신적 지배 관계에 있는 성인 남성과 고립되고 취약한 소녀의 비밀연애라니, 불평등하고 착취적인 관계는 아니었을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교회에선 어린 여자가 ‘꽃뱀’처럼 목사님 아들에게 계획적으로 들러붙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여자는 아직까지 목사님의 불명예스러운 사임이 자기 탓인 양 자책한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가 성인 남성과 미성년 여성의 관계에서 성인 남성이 마땅히 져야 할 윤리적 책임을 어린 여자 탓으로 돌리는 미개한 사회임을 징그럽게 누설한다. 극히 예외일 뿐이라고? 최근 방영된 <한국방송2>(KBS2)의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 ‘프리즘’에서도 예고 학과장과 학생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가 등장한다. 관계가 소문나자 비난은 소녀를 향한다. 소녀는 친구에게 자신이 성적을 위해 ‘꽃뱀’ 짓을 하지 않았노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학과장에 대해서는 어떤 비난도 해명도 요구되지 않는다. ‘스쿨 미투’가 터졌어야 할 상황이 이렇게 그려진다. 엔(n)번방 사건이 그토록 많은 피해자를 낳은 이유 역시, 그루밍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를 오히려 문란하다고 비난하는 정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고딩엄빠2>는 가장 최근 회차인 27회에서 또다시 30살 남자와 사귄 19살 여자의 임신을 보여주었다. 비판을 의식한 듯 이인철 변호사가 남자에게 쓴소리하고, 사연을 최대한 유쾌하게 풀어 한바탕 부부 예능 같았다. 그러나 성인 남성과 미성년 여성의 성이라는 본질은 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린다.
10대 출산은 성엄숙주의적 반대와 성자유주의적 옹호로 다룰 문제가 아니다. <하틀랜드>가 분석하듯, 선진국에서조차 10대 출산은 가난의 젠더화와 대물림의 핵심 고리이기 때문이다. 성착취의 개념 없이 성인 남성과 미성년 여성의 성을 자연스러운 듯 전시하지 말라. 학력 단절과 기회 박탈과 독박육아라는 참혹한 현실에 대한 고찰 없이, 정서적 위안으로 넘어가지 말라. 10대 출산에 대한 성평등주의적이고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