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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단독] 서울시, ‘이태원 참사’ 언급된 전시 뜯어냈다

등록 2023-01-02 07:00수정 2023-01-02 13:18

서울도서관 ‘문화예술 검열’ 논란
‘노동과 예술’ 전에 “정치적 오해 소지”
홍보물에 언급될 뿐 전시는 참사 안 다뤄
자각몽이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내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전시하려던 ‘예술과 노동’ 기획전 현장. 자각몽 제공
자각몽이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내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전시하려던 ‘예술과 노동’ 기획전 현장. 자각몽 제공

“이태원 참사를 다룬 전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홍보문에 그 말 나왔다고 통째로 전시를 철거했어요.”

김용재 자각몽 대표는 말문이 막힌다고 했다. 그가 꾸린 전시는 새해 벽두부터 문화예술 검열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시 산하 서울도서관이 위탁운영 중인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돔의 복합문화공간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지난 29일 시작하려던 ‘예술과 노동’에 대한 기획전이다. 서울도서관 간부와 수탁업체가 이 기획전 홍보물에 ‘이태원 참사’ ‘화물연대’가 언급됐다는 이유로 전시품들을 일방적으로 뜯어내고, 문화공간 누리집에서 관련 홍보물을 무단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획자와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항의하며 해명과 사과, 수습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철거된 전시의 정식 제목은 ‘공개법정―우리는 대한민국의 노동자입니다’. 서울아트책보고 입주서점 자각몽 세션에서 김용재 자각몽 대표가 기획해 펼치려던 아카이빙 자료전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이 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3대 종북세력으로 규정해 파괴 공작을 벌이고, 케이티(KT) 노동조합 선거에 온건파가 당선되도록 개입한 사건 등을 다룬 모의법정 형식의 전시로, 지난 2021년 11월 전태일기념관에서 처음 선보인 바 있다. 2년 전 공개법정 행사의 아카이빙 자료들로 구성한 이번 전시는 시민단체 손잡고와 오는 14일까지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 29일 개막 당일 서울아트책보고를 운영하는 수탁업체 쪽은 직원을 동원해 전시 포스터와 소책자를 일방적으로 걷고, 아카이빙 영상의 전원을 끄고, 누리집에서 홍보물을 차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각몽이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내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전시하려던 ‘예술과 노동’ 기획전 현장. 자각몽 제공
자각몽이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내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전시하려던 ‘예술과 노동’ 기획전 현장. 자각몽 제공

서울도서관 쪽은 전시 철거에 대해 자각몽이 ‘예술과 노동’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밝힌 취지 가운데 ‘이태원 참사’ ‘화물노조 파업’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언급한 부분이 원래 공간 개설 취지와 다르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지난 30일 서울도서관 지식문화과장은 자각몽 김 대표와의 전화 통화에서 공지된 전시 취지 중 “이태원 참사”와 “화물노조 파업”이 “사회적 논란의 소지”나 “정치적으로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제라서 공공기관인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전시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담당 과장은 전시하지 말라는 결정을 자신이 했다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김 대표에게 “사전에 충분하게 검토해서 걸러내지 못한 것은 수탁업체의 불찰”이라며 사태의 책임을 떠넘겼다.

전시기획자가 서울아트책보고 수탁업체에 항의하자 업체 쪽은 30일 오후 전시물을 다시 복구했다가 다음날인 31일 오전 서울도서관 지식문화과장의 지시로 다시 철거하고, 누리집에서 ‘이태원 참사’ ‘화물연대 파업’ 등의 문구가 담긴 홍보글도 다시 삭제했다. 김 대표와 전시기획자 쪽은 “전시를 복구한 것은 물론 이를 재철거하는 과정에서 어떤 협의나 통보도 없었다”며 “철거를 진행한 수탁업체를 통해 ‘노동’이나 ‘민주노총’ 같은 단어들까지 문제가 됐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자각몽이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내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전시하려던 ‘예술과 노동’ 기획전 현장. 자각몽 제공
자각몽이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내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전시하려던 ‘예술과 노동’ 기획전 현장. 자각몽 제공

김 대표와 시민단체 손잡고 등은 이에 대해 “명백한 예술 검열로 깊은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태원 참사나 화물연대 파업이 “다양한 견해가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전시를 할 수 없다는 서울도서관 담당 과장의 발언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굳이 ‘정치적 소재’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특정 예술인들을 배제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견해가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 예술의 존재 이유이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요체인데, 담당 과장의 발언은 이런 사실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라고 짚었다.

2021년 첫 공개법정 행사 당시 연출자로 이번 사태 진상을 조사 중인 이양구 작가는 “더욱 당황스러운 건 서울도서관 담당 과장이 통화에서 문제 삼은 전시 내용이 이태원 참사나 화물연대 파업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과장은 ‘전시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냐’고 묻는 자각몽 대표에게 자신이 전달받은 자료에서 ‘이태원 참사’나 ‘화물연대’라는 말을 보았고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판단의 견해가 있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자각몽이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내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전시하려던 ‘예술과 노동’ 기획전 계획서. 자각몽 제공
자각몽이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내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전시하려던 ‘예술과 노동’ 기획전 계획서. 자각몽 제공

김 대표와 시민단체 손잡고 쪽은 서울도서관에 공개 사과와 검열 책임자 문책, 수습책 및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검열 사유로 거론한 이태원 참사 유족들과 화물연대 노동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도서관이 계속해서 수탁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사태의 책임 이행을 외면하려고 한다면 더 강력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고 사태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지은 서울도서관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운영사(수탁기관)에서 전시를 먼저 철거한 후 서울도서관에 보고한 것으로 해당 단어들이 언급됐다고 전시를 못 하는 건 아니며 검열도 절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오 관장은 “입주서점 쪽이 운영사에 지난해 10월26일 처음 낸 계획서는 ‘건축’이었는데, 개막 3일 전 내용을 ‘예술과 노동’으로 바꿔 다시 냈던 상황이어서 운영사가 바뀐 전시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실제 전시 내용상의 문제점을 발견한 뒤 우선 철거부터 하고 사후 도서관에 보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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