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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살짝 훑어도, 1천년 유물 주르륵…‘訓, 營’ 새겨진 돌엔

등록 2023-01-05 07:00수정 2023-01-05 19:32

문화재청 권역 기초조사 결과
본격조사 땐 유물 더 나올 가능성
청와대 권역의 옛 후원 시절 궁장(담장) 유적 주변의 땅에 흩어져 있다가 수습된 고려~조선시대 추정 기왓장들. 문화재청 제공
청와대 권역의 옛 후원 시절 궁장(담장) 유적 주변의 땅에 흩어져 있다가 수습된 고려~조선시대 추정 기왓장들. 문화재청 제공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재임 당시 ‘역사 바로 세우기’ 명분으로 일제 조선총독 관저였던 청와대 옛 본관(수궁 터)을 철거할 때 건물 터의 지반층 흙까지 모조리 파내어 내다버렸으며 동대문운동장 지하철역을 굴착하면서 나온 흙으로 빈 자리를 메웠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런 내용은 90년대 청와대에 재직한 이보연 전 경호처 조경담당팀장이 문화재청 관계자에게 밝힌 것으로, 지난 3일 저녁 문화재청이 언론에 공개한 ‘경복궁 후원(청와대 권역) 기초조사 연구’ 보고서를 통해 처음 알려지게 됐다. 이 전 팀장은 이와 관련해 현 수궁 터 일원의 흙을 모두 다 걷어내고 성토했기 때문에 주목 뿌리 흙과 주변의 흙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위에서 내려다본 현재 청와대 권역(경복궁 후원)의 전경에 옛 후원 시절 주요 건물터 위치를 표기한 설명 사진. 문화재청 제공
위에서 내려다본 현재 청와대 권역(경복궁 후원)의 전경에 옛 후원 시절 주요 건물터 위치를 표기한 설명 사진. 문화재청 제공

이 보고서는 문화재청 산하 궁능유적본부가 지난해 8월 말부터 문화유산 전문가들한테 의뢰해 지난달 말까지 벌인 청와대 권역 기초조사 연구 작업의 결과물이다. 청와대 권역의 전통·근현대 건축물과 유적에 대한 지표조사, 문헌, 식물 등의 식생, 조경 조사 내용 등을 담았는데, 비서실과 경호팀 전·현직 담당자들이 밝힌 1990~2000년대 청와대 건물과 정원 조경의 변천사와 이에 얽힌 전직 대통령들의 비사가 눈길을 끈다.

보고서의 관계자 증언들을 보면, 지난해 5월 초 개방된 청와대 경내에서 관람객들이 거니는 명소 중 하나인 녹지원 계곡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작품이다. 그가 90년대 현대건설 사장 시절 청와대 내부 조경공사를 하면서 처음 저류조로 만들었다가 대통령이 된 뒤 완성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그와 한국 대통령이 산책하는 시설물로 그의 큰 키에 맞춰 청와대 정원에 높이 2m30㎝의 불로문을 건립했다는 비화도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A·B구역으로 철책을 두고 나뉘어 있던 정원 구역의 경계를 헐어 통합적인 조경 공간을 만들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쓰레기장으로 버려졌던 소정원 구역을 정원 공간에 통합시켰다.

상춘재와 침류정에는 영부인들의 관심이 많았는데,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상춘재 구역에 해태상, 드므 등 각종 경물 등을 가져와 치장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감을 좋아해 상춘재 감나무 홍시를 직접 따서 먹는 것을 즐겼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모친은 침류정 부근에 텃밭을 가꾸기도 했다.

관저 내부의 마당 정원에는 야생화를 심어 전통 조경을 했으나, 지난해 5월 전면 개방 뒤 야생화는 거의 다 죽어버렸다는 한탄도 나왔다.

‘營’(영)자가 새겨진 궁장의 사각진 돌덩이 부재를 조금 떨어져서 본 모습. 문화재청 제공
‘營’(영)자가 새겨진 궁장의 사각진 돌덩이 부재를 조금 떨어져서 본 모습. 문화재청 제공

한자 ‘營’(영)자가 새겨진 궁장의 돌덩이 부재를 가까이서 본 모습. 조선시대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제공
한자 ‘營’(영)자가 새겨진 궁장의 돌덩이 부재를 가까이서 본 모습. 조선시대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제공

학술적으로 가장 주목되는 건 지표조사 결과다. 고고역사학계 전문가들은 청와대 본관, 영빈관, 춘추관, 정원, 관저 등 곳곳의 시설과 통행로 등지의 표면 유적 현황만 살펴봤는데도 청와대 내부 8개 구역에서 고려시대 추정 기왓장과 ‘訓’ ‘營’ 등의 글자가 새겨진 담장 돌, 담장 터 흔적 등이 줄줄이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청와대 본관 동쪽에 자리한 침류정과 청와대 담장(궁장) 권역, 권역의 가장 서쪽 영조의 모친 사당인 칠궁 영역에서는 많은 기와와 백자 도기 등이 출토됐다. 앞으로 본격적인 시굴과 발굴조사가 벌어지면 <고려사>에 숙종 치세기 이래 백악산 아래 청와대 자리에 건립했다고 전해지는 고려시대 남경 별궁 추정 건물 터와 조선시대 후원 각종 시설 터 등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연구진은 “수습된 유물 대부분이 기와들이고 조선뿐 아니라 고려시대 기와로도 볼 수 있는 유물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고려시대 남경과 관련된 건물지 매장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 내부에 대해 정밀 지표 조사를 벌여 유적 성격을 가늠하는 시굴 범위를 정확하게 설정해야 하고 이를 토대로 유적과 유물들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발굴, 정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청와대 경내 침류각 뒤쪽에 있는 유물 산포 구역의 풍경. 전각 북쪽에서 남쪽을 내려다보며 찍은 것이다. 문화재청 제공
청와대 경내 침류각 뒤쪽에 있는 유물 산포 구역의 풍경. 전각 북쪽에서 남쪽을 내려다보며 찍은 것이다. 문화재청 제공

애초 대통령실에서 역사성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청와대를 개방한 것이 사려 깊지 못한 판단이었다는 문화재 학계의 비판이 이번 연구조사 결과물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했던 청와대 미술관 신설 등 복합문화 공간화 방안의 문제점도 다시금 드러낸 것이어서 앞으로 대통령실이 내놓을 활용 방안이 주목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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