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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구포터들, 구본주 기일이면 어디선가 나타나더라”

등록 2023-01-14 13:54수정 2023-01-15 22:24

[인터뷰] 전미영 조각가·본주르유나이티드 대표
전미영(왼쪽), 구본주 작가 부부. 1995년 동학 100년 기념 전시 출품작 ‘갑오농민전쟁’을 제작하던 때 함께 찍은 사진이다. 구본주기념사업회 제공
전미영(왼쪽), 구본주 작가 부부. 1995년 동학 100년 기념 전시 출품작 ‘갑오농민전쟁’을 제작하던 때 함께 찍은 사진이다. 구본주기념사업회 제공

―올해가 구본주 타계 20년이 되는 해다. 지난 연말에 구본주 추모 도록을 정식 출간하게 된 계기는?

“2004년 1주기 추모전시 도록은 지인들에게만 전달했다. 서점 구입도 가능한 대중서로 만들어 만인에게 구본주가 알려지길 바랐다. 20주기가 되기 전에 발간하려고 했다. 너무 일찍 별이 되어서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기대할 수 없는 게 아깝고 아쉽고 안타깝지만 남겨진 작품에 더해진 시간을 말로 꺼내고 글로 옮기고 빛으로 담고 책으로 엮어 아직 만나지 못한 이들에게 이 책을 전하면서 19년을 그리워하는 마음들을 모아내고자 했다.”

―책을 기획한 ‘구본주를나르는사람들’은 어떤 이들인가?

“유족이 중심인 구본주기념사업회를 포함한 지인과 팬들로 이루어진 ‘구포터’들을 가리킨다. 혼자서는 옮기기 어려운 철과 돌과 나무를, 두드리고 자르고 깎아 만든 작품들을, 기꺼이 날라주고 싶을 만큼 감동적인 예술을 하고 싶어 하던 작가의 마음을 기억하며 이름 붙였다. 조직화 되어 있지도 않고 일상 교류도 없지만 추모의 시간이 되면 어디선가 나타난다.”

―구본주 작가의 작품이 1980~90년대 노동자, 농민에서 2000년대 샐러리맨으로 전환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

“블루칼라 노동자와 화이트칼라 임금노동자로 보면 일관되게 이해될 듯하다. 계급적인 관점으로 보면 봉건시대에는 농민, 근 현대는 노동자라고 보면 된다. 구본주는 서양미술 일색인 미대 입시과정에서 만들어진 미학적 식민지성 극복을 위해 미술사 공부, 한국사 공부를 했고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에서 출발한 시대사 인식을 작품으로 표현해 왔다. 농민, 노동자, 샐러리맨으로 이어지는 소재에는 주체적인 인식을 가지고 부정하고 모순된 체제와 세계에 저항하고 변혁하거나 다양하게 스며드는 동시대적 인물의 단단한 전형들을 찾아내고자 한 작가적 고투가 있다. 민주화된 세상이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작품의 인물들이 잘 말해준다. 과장된 근육질의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 <갑오농민전쟁> 등은 어렵게 조직화한 농민군들의 강인함을, 노동자·파업시리즈 등은 학생운동 속에서 경험한 인간군상들의 현실 발언을, 가늘게 늘리고 비틀려져 왜곡된 형태들로 표현된 샐러리맨 시리즈는 초자본주의의 속도감을 따라가지만 그 끝을 암시하는 진실을 담았다. 모두가 각 시대상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들을 작품의 전면에 등장시킨 것은 동시대인들과 공감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작가의 애정과 연대의식의 표현이다.”

―뒤로 갈수록 비애나 풍자, 해학이 많아진 것 같다. 원래 풍자나 해학이 많은 사람이었나?

“구본주 작가 본인이 유쾌 발랄하고 다정하고 따뜻한 품성의 소유자다. 2013년 10주기 추모전시의 주제이기도 한 <세상, 사람, 사랑: 세상과 사람을 사랑한 구본주>가 딱 그렇다. ‘풍자’와 ‘해학’은 좀 다른 결인데, 구본주의 작업은 시니컬한 냉소적 비판이 주된 의미인 ‘풍자’보다는 요즘 말로 ‘웃프다, 웃픈’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애환에 대한 공감과, 긍정적인 웃음을 위해 우스꽝스런 형태를 취하며 결국엔 나로 동일시되는 ‘해학’쪽이 맞다. 사람들은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고 구본주는 예술이 전문애호가들만의 리그가 아니며 대중과 함께 대중 속에서 공감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예술 인식을 가졌다.”

―유작 ‘별이 되다’는 어떻게 완성했나?

“1000명의 샐러리맨들을 하늘에 설치하는 작업이었는데 2개만 완성하고 나머지 998개는 후배, 동료작가 들과 함께 완성했다. 광주시립미술관과 덕원갤러리 개인전에 전시 예정이던 설치작품으로, 작가의 유고로 설치과정 역시 후배, 동료 작가 들이 함께했다. 처음 구상할 때는 구본주와 내가 각각 500명씩 만들고 전시를 철수한 뒤 1000명의 지인들에게 한 개씩 작품을 나눠주려 했다. 서울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상이나 세종대왕상처럼 평생 다른 이들이 우러러 볼 일이라곤 없을 소시민들, 가장들에 대한 존경과 경의를 상징화한 작품이다.”

―구본주는 어떤 작가, 어떤 배우자이자 아빠였나?

“언제나 지치지 않는 영감을 주는 ‘작가들의 작가’라고 하고 싶다. 우리는 학생미술운동을 하던 그룹이 주기적으로 진행한 작품전시회 준비를 하며 각각 대학 2학년과 3학년때 만났다. 딸 바보, 아들 바보였던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고 건강하고 멋진 작업을 끊임없이 발표하던 열정적인 천재 조각가이다.”

―노동자, 빈민들의 농성현장과 연대하는 ‘파견미술가’로 지금 활동중인데, 전미영 작가가 파견미술가로 활동하는 것에 구본주 작가의 영향이 있었나?

“내 영향을 구본주가 받은 게 아닐까 한다. 내가 더 급진적이고 구본주는 온순하다.”

―구본주의 작품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은?

“모든 작품들을 다 좋아한다. 신던 작업화, 용접면, 조각도 하나까지도 다 좋아한다. 그게 모두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나왔고 그래서 지금까지 온 것이라 믿는다. 매번 놀랄 만한 작품으로, 다시는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무색해지게 계속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구본주는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눈에만 안 보일 뿐이지 생생히 살아서 나보다 더 오랫동안 그 스스로가 작품보다 더 아끼던 아이들과 함께해줄 것이다. 명작의 힘이다.”

―남성들의 면모를 주로 담아낸 작품을 볼 때, 여성의 입장에선 동일시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구본주 작품에 여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습작기에 꾸준히 제작된 토르소와 흉상, 반신상 등 다양한 형태들과 더불어 대표작인 <파업1>, <파업3>에서는 각각 전투경찰에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는 여대생의 표현과 농성을 지원하는 어머니, 아내,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중심축으로 배치되어 유족을 엄호하는 인물들을 이룬다. 작고하기 직전에 제작한 <부부2>는 모형 작업에서부터 조형물 설치까지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내는 부부가 동반자로서 함께 견뎌내는 모습을 나타낸다.”

―올해 어떤 계획이 있나?

“20주기에 맞춘 책을 준비중이다. 노순택 사진가가 담아 낸 구본주의 작품사진과 사회적 의미를 담고, 일상의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본 배우자이자 동료 작가로서 바라본 시선을 다룬 책이다. 올해로 13회를 맞는 구본주예술상도 있다. 매년 좋은 예술가들로 채워지고 있어 가슴이 뛴다. 또 파견미술가들의 그림책 작업과 연계 전시를 준비중이다. 출판을 통해 파견미술가들의 작업들을 소개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목판화가 이윤엽, 화가 전진경, 조각가 나규환의 책이 차례로 출간될 예정이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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