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만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프로듀서.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이하 에스엠) 설립자인 이수만 대주주와 회사 경영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소속 가수들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이성수 에스엠 공동대표가 이수만에 등을 돌린 배경도 주목된다.
#1. 2021년 10월5일 에스엠 소속 에스파가 첫 번째 미니앨범 <새비지> 발매 기념 온라인 쇼케이스를 열었다.
타이틀곡 ‘새비지’의 포인트 안무는 ‘쯧쯧쯧쯧’ 춤이었다. 후렴에 나오는 추임새 ‘쯧쯧쯧쯧’은 이수만 당시 총괄프로듀서의 손을 거쳤다. 카리나는 “이수만 선생님이 ‘조금 더 포인트를 줬으면 좋겠다’며 원래 ‘즈즈즈즈’라는 가사를 ‘쯧쯧쯧쯧’으로 바꿨다”며 “블랙맘바에게 ‘넌 우리 상대가 안 돼. 안타깝다’라고 말하는 뉘앙스”라고 전했다. 블랙맘바는 에스파 세계관 안에 등장하는 빌런이다.
에스파가 2021년 10월5일 선보인 첫 미니앨범 <새비지> 티저 이미지.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날 쇼케이스는 이수만이 에스엠 소속 가수 활동에 얼마나 관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수만은 아티스트 육성에서 데뷔, 곡 선정, 헤어스타일까지 그동안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을 통해 관여해 왔다.
에스엠 현 경영진은 지난 3일 내놓은 ‘에스엠 3.0’을 통해 이수만과의 관계를 끊으려 했다. 이날 발표에서 에스엠은 창업자 이수만 주도로 에이치오티(H.O.T.),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같은 대형 아티스트를 탄생시킨 2010년까지를 ‘에스엠 1.0’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어 이수만이 에스엠 총괄프로듀서로서 엑소, 레드벨벳, 엔시티, 에스파 등을 탄생시키고 회사에 다수의 프로듀싱 역량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게 된 2022년까지를 ‘에스엠 2.0’으로 설명했다. ‘에스엠 3.0’은 이수만의 독점 프로듀싱 체제에서 벗어나 5개 제작센터와 내·외부 레이블이 독립적으로 음악을 생산하는 ‘멀티 프로듀싱’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수만 쪽 관계자들은 내부 인력, 특히 이성수·탁영준 대표의 자질을 두고 비판하고 있다. 한 에스엠 내부 관계자는 “‘에스엠 3.0’엔 가장 중요한 프로듀싱을 누가 할 것인가,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프로듀서는 누구인가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며 “현 경영진은 프로듀서가 아닌 분들로, 이들이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심지어 신인 데뷔를 준비하는 게 가능할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엠 소속 가수들이 어떤 편에 서느냐에 따라 한쪽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먼저 총대를 멘 건 에스엠 소속 가수 겸 배우인 김민종 이사였다. 그는 5일 에스엠 전 직원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저를 비롯한 에스엠 아티스트 활동에는 (이수만) 선생님의 프로듀싱과 감각적 역량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에스엠 3.0’을 맹비난했다. 하지만 이는 역풍을 맞았다. 기업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에스엠 게시판엔 김민종의 전자우편을 반박하는 의견이 여럿 올라왔다.
현재로선 주요 아티스트들이나 그룹 리더들이 ‘중립 기어’를 놓고 ‘관망’하는 모양새다. 사실 최근까지도 이수만 대주주와 이성수 대표가 서로 갈등 관계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아티스트들이 어느 한 편을 지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에스엠의 한 인사는 “이수만 대주주와 이성수 대표 중 누가 힘을 얻을지는 아티스트들의 지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수만 쪽 인사는 “김민종 이사가 입장문을 전자우편으로 보냈을 때 다른 아티스트들이 호응하지 않아 당황했다”고 말했다.
에스엠 안팎에선 유영진 이사(프로듀서)나 몇몇 아티스트가 에스엔에스(SNS)로 이번 사태에 관해 의견을 밝힐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보아 등 이수만과 오랜 기간 인연이 있는 가수는 콘서트 일정 등으로 의견을 내기 곤란해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성수(왼쪽)·탁영준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2. 이성수 대표와 이수만 대주주의 사이가 벌어진 이유는?
“이수만 총괄프로듀서 같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이성수 대표가 지난해 3월28일 경제전문 유튜브 채널 <삼프로티브이(TV)>에 나와 한 말이다. 이날 방송에서 이성수 대표는 시종일관 이수만 대주주의 특별한 프로듀싱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랬던 이성수 대표와 이수만 대주주의 사이가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이성수 대표는 소액주주를 대변하는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과 함께하고 있다.
이성수 대표는 이수만의 처조카다. 그는 1998년부터 에스엠에서 아르바이트로 팬클럽 동향을 보고하는 일로 이수만과 관계를 맺었다. 2005년 에스엠에 정식 입사한 뒤 2014년 첫 등기이사에 올랐다. 이후 실장, 그룹장, 이수만 총괄 직속 프로듀싱본부장 등의 자리를 거쳐 2020년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건, 이성수 대표가 “얼라인 요구에 따르는 조처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 반면, 이수만은 “회사가 얼라인 요구에 끌려다닌다”며 이견을 보이면서다. 이수만은 에스엠 등기임원이 아니지만, 이성수 대표는 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성수 대표 쪽 관계자는 “지난해 3월 주주총회 현장에서 주주 반응을 본 이성수 대표가 회사가 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이수만 대주주는 얼라인의 공세에 회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관계가 틀어졌다”고 했다.
이수만 쪽 관계자 말은 다르다. 이 관계자는 “얼라인에서 주주대표소송 등으로 이성수 대표를 압박했고, 자기네와 협력하면 연임을 보장한다는 제안을 한 거로 알고 있다”고 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두 사람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