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이 배재학당 설립자인 헨리 아펜젤러(1858∼1902)에 하사했다고 보이는 나전 공예품이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 기증됐다. 검은 옻칠에 나전 기법으로 장식된 ‘나전흑칠삼층장’은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나전의 전통 양식과 근대적 양식이 절충된 작품으로 소장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지난해 12월 아펜젤러의 증손녀 다이앤 도지 크롬으로부터 나전흑칠삼층장을 받았다고 11일 밝혔다. 그는 지난해 9월 박물관에 전자우편을 보내 나전흑칠삼층장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델라웨어에 있는 한 박물관에서 일하는 그는 “앞으로 (나전흑칠삼층장이) 100년을 이어가려면 유물의 유지·보수가 중요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나전흑칠삼층장은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에게 고종이 하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아펜젤러 가문 가계도, 기증자가 건넨 사진 자료, 소장 경위, 전문가 평가 등을 종합한 평가다. 아펜젤러는 1885년 27살 때 첫 근대식 고등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의 전신인 영어학교를 세웠다. 이곳에서 서재필, 이승만, 김규식 등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다. 아펜젤러는 1902년 44살에 전남 목포로 가던 가운데 서해에서 배 밖으로 떨어진 조선인 소녀를 구하려다 실종됐다. 서울 마포구 양화진선교사묘역엔 그의 빈 무덤이 있다.
조선 왕실이 외국인 선교사에 준 선물은 △자수 병풍 △도자기 △금팔찌 △손거울 등이 있다. 그런데도 나전 가구는 알려진 적이 없다고 박물관은 밝혔다. 최공호 전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높이가) 180㎝가 넘는 대형 삼층장의 규모, 섬세하고 유려한 문양 표현의 품격을 볼 때 19세기 말을 대표하는 유물로 손색이 없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보존처리 작업을 거쳐 올해 하반기 특별전시에서 유물을 공개한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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