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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한 몸과 노래로…‘마돈나의 길’ 택한 샘 스미스

등록 2023-02-15 07:00수정 2023-02-15 08:59

'파격 변신' 샘 스미스가 던진 논쟁
“나를 더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영국 팝스타 샘 스미스와 독일 싱어송라이터 킴 페트라스가 지난 5일(현지시각)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트로피를 받은 뒤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팝스타 샘 스미스와 독일 싱어송라이터 킴 페트라스가 지난 5일(현지시각)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트로피를 받은 뒤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다들 논쟁할 준비가 되셨나요?”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5회 그래미 어워드 무대에 시상자로 오른 가수 마돈나가 샘 스미스와 킴 페트라스의 노래 ‘언홀리’(Unholy)를 소개하기에 앞서 던진 질문이다. ‘언홀리’는 최근 들어 가장 논쟁적인 히트곡이다. 이는 그래미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상을 받았고, 샘 스미스와 이 노래를 함께 부른 킴 페트라스는 최초로 그래미를 수상한 트랜스젠더로 기록됐다.

샘 스미스에게 첫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선사한 ‘언홀리’는 한 남성의 불륜과 성매매를 고발하는 곡이다. 웅장한 합창 위로, 불경한(Unholy) 사건을 노래하는 부조화가 펼쳐진다. 샘 스미스의 의상과 춤, 표정이 모두 파격적이다. 벨트로 꽉 조인 셔츠를 입거나, 빨간 가죽 바지와 킬힐 차림으로 춤추기도 한다.

이 노래가 수록된 4집 앨범 <글로리아>에 함께 실린 디스코곡 ‘아임 낫 히어 투 메이크 프렌즈’(I’m Not Here To Make Friends)는 한발 더 나아간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드래그 퀸’(옷차림이나 행동 등을 통해 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문을 연다. 뮤직비디오에서 샘 스미스는 코르셋을 착용하고, 신체 여러 부위를 드러낸다. 그리고 성적 욕망과 자기애를 두루 노래한다. “다들 집으로 데려갈 누군가를 찾고자 노력하네/ 나도 마찬가지야/ 사랑을 나누기에 축복받은 몸을 가졌지”

샘 스미스 앨범 &lt;글로리아&gt; 표지. 유니버설뮤직 제공
샘 스미스 앨범 <글로리아> 표지. 유니버설뮤직 제공

2014년 발표곡으로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발라드 ‘아임 낫 디 온리 원’(I’m Not The Only One) 시절의 샘 스미스를 기억한다면, 그는 이곳에 없다. 팝 역사에서도 손꼽힐 만큼 급진적인 변신이다. 조지 마이클이나 데이비드 보위 정도를 제외하면, 이만큼 변신의 폭이 큰 경우는 찾기 힘들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샘 스미스는 데뷔 초부터 자신을 ‘게이 남성’이라 소개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게이 팝스타에 익숙하다. 정장을 입고 노래하는 샘 스미스 역시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적정선에 서 있었다. 2015년 그는 당대 최고 팝스타에게 주어진다는 <007> 시리즈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2019년 자신을 ‘젠더 논바이너리’로 새로이 정의한다. 남성과 여성의 성별 이분법에 포함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후 그는 춤을 추기 시작했고, 과감한 의상을 입은 모습을 에스엔에스(SNS)에 게시했다. 그는 지난달 발표한 신보 <글로리아>를 ‘감정적·성적·영적인 해방’으로 지칭한다. 수줍은 사랑 고백으로 채운 데뷔 앨범과는 반대였다. 욕망, 그리고 퀴어의 자아를 본격적으로 가시화한다. 외형도 바꿨다. 한때 공격적인 다이어트를 하며 반듯한 신사가 됐지만, “신체 강박에서 벗어나겠다”며 다시 체중을 늘렸다.

샘 스미스의 2014년 데뷔 앨범 &lt;인 더 론리 아워&gt; 표지. 유니버설뮤직 제공
샘 스미스의 2014년 데뷔 앨범 <인 더 론리 아워> 표지. 유니버설뮤직 제공

반작용은 컸다. 온라인상에서 샘 스미스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이 나타났다. 누군가는 배신감을 토로했다. 뮤직비디오의 선정성을 문제 삼기도 했고, ‘정상적인 모습’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이어트를 포기한 신체에 대한 모욕도 쉽게 발견된다. 파격적인 의상을 입은 팝스타는 과거에도 많았으나, 샘 스미스와 같은 외형의 퀴어 뮤지션은 없었기 때문이다. 소수자 혐오와 외모지상주의가 교묘히 결합했다.

성적 정체성을 새로 규정한 이후, 샘 스미스는 길거리에서 언어폭력을 자주 겪게 됐다고 한다. 대뜸 침을 뱉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오늘을 예찬한다. 그 길은 모두에게 사랑받기 힘든 길이다. <007> 주제가를 부르는, 품위 있는 팝스타는 이제 지향점이 아니다. 그 대신 “나를 더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노랫말(‘러브 미 모어’)에 더 충실할 것이다. 존재하지만 없는 듯 여겨지는 동시대 퀴어 친구를 위해 춤출 것이며, 때로는 불경한 노래로 논쟁거리를 자처할 것이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마돈나는 샘 스미스와 킴 페트라스에게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열을 내는 저항군”이라며 경의를 표했다. 지난 40년간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을 부정하고, “자신을 억압하지 말라”며 전복을 노래한 장본인의 연설인 만큼, 더욱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지금의 샘 스미스 역시 마돈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 더욱더.

이현파 음악 칼럼니스트·유튜브 ‘왓더뮤직’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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