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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영화로 듣다, 스필버그의 가슴 시린 성장담

등록 2023-03-22 07:00수정 2023-03-22 14:42

‘파벨만스’ 오늘 개봉
10대 때 찍은 영화들 재현
말 못 할 고뇌·상처 드러내
영화란 무엇인가 깊은 성찰도
“4천만달러짜리 치유” 자평
영화 <파벨만스>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영화 <파벨만스>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꿈의 공장’ 할리우드에는 여러 천재 감독이 명멸했지만 가장 빛나는 이름 하나를 꼽는다면 스티븐 스필버그(76)다. 으스스한 음악과 함께 다가와 거대한 입을 벌리던 식인 상어(<죠스> 1975), 바구니 속 작고 못생긴 외계인과 하늘을 날던 자전거(<이티> 1982), 긴 목을 우아하게 세우고 선사시대를 활보하던 거대 공룡(<쥬라기 공원> 1993) 등 스필버그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 리스트는 길고도 길다.

영화 &lt;파벨만스&gt;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영화 <파벨만스>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멈추지 않는 꿈의 공장 같던 스필버그가 자전적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이제 그 상상력도 고갈됐나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다. 그가 “4천만달러짜리 치유”라고 표현하며 내놓은 <파벨만스>(22일 개봉)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이면서 누구나 공감할 가족 이야기이자 가슴 쓰린 성장담이다. 또한 예술가의 딜레마에 관한 깊은 성찰이면서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한마디로 에스에프(SF) 같은 장르적 상상력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작품이고 스필버그의 걸작 리스트 위쪽에 올라갈 만한 영화다.

영화 &lt;파벨만스&gt;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영화 <파벨만스>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파벨만스>는 스필버그가 여섯살 때 처음 경험한 극장 스크린의 충격으로 시작된다. 어두운 극장을 무서워했던 꼬마 새미 파벨만(마테오 조리안)은 영화에 빨려들어간다. 스필버그가 첫 영화적 경험으로 소개하곤 했던 세실 드밀의 <지상 최대의 쇼>(1952)다. 영화 속 자동차와 기차가 충돌하는 장면에 사로잡힌 새미는 아버지 버트(폴 데이노)가 사준 값비싼 장난감 기차와 자동차로 충돌 장면을 재현하면서 장난감들을 망가뜨린다. 그러자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는 집에 있던 8㎜ 비디오카메라를 쥐여주며 “한번만 찍으면 반복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감독 스필버그가 탄생한 순간이다.

영화 &lt;파벨만스&gt;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영화 <파벨만스>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폴 데이노는, 의상과 분장을 마치고 촬영장에 들어선 “나와 윌리엄스를 보자 스필버그가 눈물을 쏟아, 그를 끌어안고 위로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파벨만스>는 인물과 장면, 이야기에서 스필버그의 유년 시절을 철저하게 재현한다. 새미의 천재성은 컴퓨터 엔지니어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고 지원받았다. 미치는 토네이도가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문을 걸어 잠그는 보통 어머니가 아니라, 토네이도를 가까이 보기 위해서 아이들을 끌고 위험한 운전까지 불사하는 호기심의 소유자였다. 차분한 공학도인 아버지는 새미에게 영화의 24프레임 원리를 과학적으로 알려준다.

영화 &lt;파벨만스&gt;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영화 <파벨만스>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영화 &lt;파벨만스&gt;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영화 <파벨만스>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새미(가브리엘 라벨)는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0대 초반부터 보이스카우트 친구들을 동원해 극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서부영화와 전쟁영화를 찍으며 폭파 장면에 원시적인 특수기술을 실험하고 스필버그의 인장과도 같은 역광 촬영의 씨앗이 싹튼다. 스필버그가 10대 때 찍었던 영화들을 재현하기 위해 스필버그와 오랫동안 협업해온 카메라 감독 야누시 카민스키가 16㎜ 필름 카메라를 직접 들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 보였던 부모는 그에게 긴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새미는 가족 캠핑 촬영을 편집하다가 어린 시절부터 가족같이 지내던 아빠의 동료이자 절친 베니(세스 로건)와 엄마의 불륜을 알아챈다. 메인 피사체 뒤편의 은밀한 손길과 현실에서는 포착하지 못했던 두 사람 사이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 필름에 새겨진 것이다.

영화 &lt;파벨만스&gt;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영화 <파벨만스>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파벨만스>는 소년의 말 못 할 고뇌와 상처를 그리면서 영화가 담아내는 삶의 진실과 구현의 문제에 한발 더 들어간다. 새미는 편집을 통해 불륜의 흔적을 걷어내고 행복한 가족 상영회를 열지만 허울 좋은 껍데기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캘리포니아로 전학한 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던 새미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찍은 <땡땡이의 날>(1964)은 더 흥미롭다. 동창들이 바닷가에서 놀던 하루를 찍은 이 영화에서 새미는 그를 가장 괴롭혔던 동급생을 가장 멋진 인물로 담아낸다. 졸업 파티 때 영화를 본 동급생은 말 그대로 ‘멘탈이 붕괴되는’ 경험을 한다. 영화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때로 인생까지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스필버그의 영화적 조언인 셈이다.

영화 &lt;파벨만스&gt;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영화 <파벨만스>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파벨만스>는 코로나 유행 이후 영화 관람 문화가 급변하면서 우리가 잊고 있던 영화적 원체험의 아름다움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새미는 언제나 깜깜한 작은 옷방에 앉아 그가 편집한 완성본을 감상한다. 깊은 어둠과 정적, 그리고 밝게 빛나는 스크린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그 순간들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연출된 장면이다.

영화 &lt;파벨만스&gt;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영화 <파벨만스>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음악을 맡은 존 윌리엄스(91)는 <죠스>를 비롯해 스필버그의 주요 작품과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메인 테마곡을 만든 전설적인 작곡가로 한참 전에 은퇴했지만 스필버그의 간청을 못 이겨 이번 작품에 참여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마지막 영화음악이 될 <파벨만스>는 오리지널 스코어뿐 아니라 삽입된 바흐와 에리크 사티의 곡들까지 오랫동안 귀에 맴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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