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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사찰 입구의 금강역사상은 왜 노려보고 있을까

등록 2023-04-18 07:00수정 2023-04-18 10:19

임영애 교수의 신간 <금강역사상>
석굴암 본존불 공간 들머리에 있는 금강역사상. &lt;한겨레&gt;자료사진
석굴암 본존불 공간 들머리에 있는 금강역사상. <한겨레>자료사진

이땅의 절집하면 퍼뜩 생각나는 상징물은 뭘까.

큰 사찰의 문간에서 우락부락한 얼굴을 하고 선 금강역사상이나 사천왕상을 꼽는 이들이 많을 터다. 이런 연상은 사실 불가사의한 의문을 낳는다. 자비심과 평상심을 얻는 수행공간인데, 왜 하필 주먹 쳐들고 싸울 듯한 자세로 노려보는 전투적 조각상들이 아이콘이 된 것일까. 이 상의 과거엔 어떤 곡절이 있는 걸까. 좀 더 시야를 넓혀 한국 불교문화의 바탕이라 할 옛 신라 유적까지 살펴보면 더욱 놀라운 실상들을 목도하게 된다. 석굴암 본실 입구벽과 여러 불탑들의 기단, 심지어 귀족들의 고분 문짝에까지 이런 상이 새겨져 있는 까닭이다.

일반 상식선에서 제기할 법한 금강역사상의 역사에 얽힌 궁금증을 한국 고대불교조각사 전문가인 임영애 동국대교수의 역저 <금강역사상>(동국대출판부·2만5000원)은 명쾌하게 풀어준다. 친숙한 외관과 달리 속내는 알쏭달쏭한 금강역사상의 2000년 내력을 국내 학계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추적하고 의미를 풀이한 책이다.

석굴암 본존불 공간 들머리에 있는 금강역사상. &lt;한겨레&gt;자료사진
석굴암 본존불 공간 들머리에 있는 금강역사상. <한겨레>자료사진

‘간다라에서 신라로의 여정’이란 부제대로 저자는 1~2세기 북인도 간다라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9세기 신라에 이르기까지 시기별 지역별로 금강역사상이 어떻게 변해갔는지에 얽힌 여정을 집요한 현장탐구를 통해 살펴보고 분석했다. 불교 경전에 언급된 금강역사상과 실제로 구현된 금강역사상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경전에는 언급되지 않는 내용이 미술품으로 표현된 이유와 각 지역마다 금강역사상을 어떤 모습으로 구현하려 노력했는지 등을 기술했다. 저자는 젊은 불교미술사학도로서 수학하던 시절 경주 석굴암을 답사하면서 본실 입구벽에서 금강역사상을 마주한 순간부터 본존상과 함께 한 화면에 들어오는 고부조의 매력에 끌렸다고 한다. 그때 벽에서 튀어나올 듯 불끈 쥔 주먹을 허공에 띄운 화강암 상의 믿어지지 않는 입체적 생동감과 조형미에 빠진 그는 지난 30년간 고대 인도 간다라 문명부터 고대 중세의 중앙아시아와 중국, 신라와 고대 일본에서 조각, 회화 등으로 제작된 금강역사 도상들을 섭렵하면서 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물을 정리한 것이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상이 태어난 인도에서 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위상과 외형이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점이 핵심이다.

책에 따르면, 금강역사상은 애초 인도 전통 브라만교의 수호신 인드라가 손에 쥔 무기인 금강저를 넘겨받고 부처를 호위하게 된 하급 수호신 야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간다라에서는 부처의 곁에 찰싹 붙어 밀착 수행하는 일종의 비서 구실을 하다가 중앙아시아에서는 이란풍의 장식복식과 중국풍 갑옷을 입은 경호대장으로, 뒤이어 5세기 중국 남북조시대에 전래돼 수당대를 거치면서부터 단독상에서 쌍신상이 됐고, 험상궂은 호인(서역인)의 표정을 하고 사찰의 성역을 지키는 쪽으로 기능이 확대됐다. 7세기 신라에 전래된 뒤로는 분황사모전석탑, 장항리 절터 탑, 석굴암 등 탑과 석굴의 호신상으로 구실하면서 8세기 유행하다 사천왕상에 수호신상 자리를 물려주지만, 험상궂지 않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바뀌면서 신라 특유의 미학적 도상으로 정착된다.

저자는 인도에서 중국, 신라, 일본에 이르는 금강역사 도상의 변천사가 불교 경전에 기록된 심오하고 복잡한 교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불교미술은 직접적인 이미지로 대중의 종교적 열망을 풀어주는 특성을 담고 있으며, 힘의 상징인 금강역사상은 다른 어떤 불교미술 작품들보다 시각적 주목도가 커서 각 지역 대중에게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방향으로 변모를 거듭했다는 게 책의 논지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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