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토벤; 베토벤 시크릿> 장면. 이엠케이뮤지컬컴퍼니 제공
“콰콰콰 쾅!”
천둥·번개 속에서 베토벤이 팔을 힘차게 치켜올렸다.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지난 16일 낮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 뮤지컬 <베토벤; 베토벤 시크릿>(이하 <베토벤>) 공연 현장은 만석이었다. 이른바 ‘쿄토벤’으로 불리는 박효신의 베토벤 연기를 보고자 피 튀기는 ‘피케팅’에 참전해 승리를 거둔 이들이었다.
<베토벤>은 국내 뮤지컬 제작사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가 7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지난 1월 초연한 창작 뮤지컬. 청력을 잃어가는 40대 베토벤이 운명의 여인 안토니 브렌타노를 만나면서 고통과 번뇌를 이겨내고 예술혼을 불사르는 이야기를 그렸다. 초연 당시엔 창작의 고통보다 사랑에만 초점을 맞춘 서사에 호불호가 갈리면서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 평점이 7점대에 그쳤다. 이후 제작사는 베토벤이 안토니와 사랑에 빠지는 당위성과 청력 상실에 따른 고통 등 서사를 보강하고 일부 넘버(노래)를 추가해 지난 14일 시즌2(5월15일까지) 막을 올렸다. 한층 매끄러워진 전개와 높아진 몰입도에 20일 현재 평점이 9점대까지 치솟았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장면. 에이치제이컬쳐 제공
유럽 클래식 음악가를 다룬 국내 창작 뮤지컬이 사랑받고 있다. <베토벤>뿐 아니라 <라흐마니노프>도 지난 1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개막해 22일까지 공연을 이어간다. 에이치제이(HJ)컬쳐가 제작한 <라흐마니노프>는 첫 교향곡을 완성한 뒤 혹평과 함께 슬럼프에 빠져 절망하던 라흐마니노프가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와의 만남을 통해 치유돼가는 3년간의 이야기를 그렸다. 2016년 초연 이후 올해 다섯번째 공연(오연)을 할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새달 5~7일 부산 공연도 한다.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도 지난달 서울 대학로 공연을 마치고 6월16~17일 안산 공연을 이어간다. 지난해에는 <안나, 차이코프스키>가 초연했다.
전문가들은 2010년 <모차르트!> 국내 초연 이후 창작 뮤지컬 시장에서 클래식 음악가 작품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본다. 미하엘 쿤체 작가와 실베스터 르베이 작곡가가 합작한 오스트리아 뮤지컬 <모차르트!>는 국내에서 곧 일곱번째 공연(칠연)을 앞둘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모차르트!> 한국 라이선스 공연을 제작한 이엠케이는 아예 미하엘 쿤체,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와 손잡고 <베토벤>을 창작하기에 이르렀다.
뮤지컬 <베토벤; 베토벤 시크릿> 장면. 이엠케이뮤지컬컴퍼니 제공
국내 창작 뮤지컬 시장이 클래식 음악가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세계인에게 친숙한 음악가 이야기가 글로벌 진출에 용이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엄홍현 이엠케이 대표는 “케이(K)팝, 케이드라마에 이어 전세계에 케이뮤지컬을 알릴 때가 올 것”이라며 “<베토벤>은 세계로 나가는 걸 목표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라흐마니노프>뿐 아니라 <살리에르> <파리넬리> <파가니니> 등을 제작한 한승원 에이치제이컬쳐 대표는 “창작 뮤지컬은 좁은 국내 시장 넘어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며 “그러려면 누구나 아는 소재여야 하는데, 클래식 음악가들이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친숙한 클래식 곡을 들려줌으로써 관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간다는 장점도 있다. <베토벤>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비창)과 14번(월광), 교향곡 5번(운명)과 9번(합창) 등을 활용한 넘버를 들려준다. <라흐마니노프> 또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 선율을 바탕으로 한다. 정지영 한세대 음악학과 교수는 논문 ‘클래식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의 음악적 분류 및 특징’(2022)에서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하게 되면 이미 잘 알려지고 친밀감 높은 음악과 함께 다양한 장르로 새로이 창작된 음악들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 창작 뮤지컬의 음악적 전달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짚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장면. 에이치제이컬쳐 제공
클래식 애호가들을 불러들이는 효과도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아예 무대 위에 피아노 연주자와 현악 6중주단을 올려놓고 공연한다. 한승원 대표는 “음악을 제3의 배우로 생각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연주자들을 무대 위로 올렸다”며 “보통 뮤지컬 관객들은 배우 캐스트에 관심을 갖는데, 이 작품은 클래식 팬들이 많아선지 김여랑·조영훈 피아니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최근 <라흐마니노프>를 본 안준(30)씨는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했는데,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해 뮤지컬을 보러 갔다”며 “김여랑 피아니스트 무대를 본 뒤 평소 좋아하던 조영훈 피아니스트의 힘 있는 연주를 보고 싶어 이틀 뒤 또 갔다”고 말했다.
음악가들의 예술적 업적과 인간적 면모를 교차해 보여주는 구도가 뮤지컬에 적합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음악가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면서도 그 이면에 가려진 인간적 고뇌와 갈등, 가정불화, 연인과의 관계 등을 병치해 내러티브를 교차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품들이 많다”며 “앞으로 음악가 등 예술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기존에 알려진 사실 이외에 픽션의 비중을 높여 새로운 관점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