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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연예인 심리상담 1년새 4배…‘합숙하며 고립’ 시스템 바꿔야

등록 2023-05-01 08:00수정 2023-05-01 09:57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편지, 꽃다발, 선물… 서울 강남구 삼성로 기획사 판타지오 사옥 앞에는 누군가의 ‘마음’들이 가득 차 있다. 모두 지난 19일 세상을 떠난 보이그룹 아스트로 멤버 문빈을 향한 것들이다. 문빈의 소속사 판타지오가 마련한 추모 공간에 팬과 동료 등 수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같은 아픔을 겪은 샤이니 종현 팬들은 문빈의 팬들을 위해 초콜릿을 두고 가기도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추모글 중) 2017년 12월 종현, 2019년 10월 설리와 11월 구하라에 이어 문빈까지 잃은 연예계는 또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종현이 떠나자 소속사들은 병원과 연결해 심리상담을 지원했고, 설리가 악성댓글로 고통받자 다음(2019년 10월31일)과 네이버(2020년 3월5일)가 연예 기사 댓글을 폐지하는 등 업계는 건강하게 변해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아프다.

한 대형 기획사 간부급 관계자는 “문빈은 그동안 아이돌들을 괴롭혔던 악플 등의 고통을 호소해온 것도 아니고 인기도 있고 활발하게 활동 중이었다. 그의 아팠던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에 미안함과 충격이 더 크다”며 “시장은 커졌는데 과연 우리는 잘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세상을 떠난 문빈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서울 강남 판타지오 사옥. 소속사는 팬들의 요청에 추모 방문 기간을 6월6일 49재 때까지 연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그를 추모하며 팬들이 올린 사진.
지난 19일 세상을 떠난 문빈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서울 강남 판타지오 사옥. 소속사는 팬들의 요청에 추모 방문 기간을 6월6일 49재 때까지 연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그를 추모하며 팬들이 올린 사진.

■ 상담 인원, 최근 1년 새 4배 껑충

잘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드라마, 영화에 이어 음악까지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은 높아지고 시장은 커졌지만 연예인들의 고민은 여전하다. <한겨레>가 2011년부터 대중문화예술지원센터를 운영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에 요청해 받은 ‘대중문화예술인 심리상담 현황’을 보면, 심리상담을 받는 대중문화예술인은 2019년 111명(건수 329회), 2020년 146명(699회), 2021년 176명(902회), 2022년 661명(2612회)으로 해마다 크게 늘어왔다. 지난해에는 상담 인원이 1년 새 4배 가까이로 뛰었다. 공식 기록 외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돌 인권 관련 책을 쓴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이사는 “심리상담의 중요성을 인지했다는 긍정적인 의미인 동시에 그만큼 고민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2021년 기존 청소년에서 성인까지 심리상담 대상자를 확대하면서 현역 연예인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전체 대중문화예술인 가운데 현역 연예인 상담은 2020년 9%에 그쳤는데 2021년 24%, 2022년 39%로 높아졌다. 반면, 2020년 89%로 압도적이었던 청소년 연습생 상담 비율은 64%, 53%로 낮아지고 있다. 현역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연습생을 상대로 강의를 많이 해온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기획사마다 정기적으로 전문가를 불러 인성교육을 하고 심리상담을 하는 등 연습생을 상대로 한 시스템은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 오히려 현역들을 상대로는 그동안 문제로 지적된 ‘악플’ 등에 대처하는 데 집중하느라 달라진 시장과 세대의 고민을 모르고 지나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콘진원에 요청해 상담 결과를 분석했다. 그래픽 인포그래픽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나를 알고 싶어요”…자기관리 어려움 호소

엠제트(MZ)세대 중에서도 2007년생(아이브 이서 등)까지 아이돌로 활동하는 시대다. 그들의 고민은 다를 수밖에 없다. 콘진원이 열쇳말만 뽑아 제공한 2022년 상담 내용을 보면, 연예인·연습생이 주로 호소한 어려움은 불안이 21.53%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대인관계(14.45%), 스트레스(14.16%), 정서조절(14.16%), 우울(8.5%), 자기이해(8.22%), 진로(7.93%), 자살사고(1.7%) 등이었다.

이런 열쇳말들은 대체로 ‘자기관리’ 문제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감정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콘진원 자료를 보면, 이들은 정서 관리와 조절의 어려움’(정서조절),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의 어려움’(우울) 등을 주로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를 이해하고 싶고 나의 상태를 파악하고 싶어 하는 것’(자기이해)도 상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이젠 기획사들의 목표가 방탄소년단같은 세계적인 스타를 키우는 게 되면서 꿈과 현실의 괴리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 사이에서 연예인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모든 불안함의 원인과 해결책을 자신에게 찾는 것은 위험한 지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승욱 정신분석가는 “(비연예인) 20~30대 중에서 사회적으로 좌절을 경험하고 안 좋은 선택을 한 이들 중에 심리적으로 면역력이 약한 경우가 많다. 마음이 치유가 안 된 상태에서는 어떤 순간이 ‘트리거’(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연예인도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회복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슷한 아픔을 겪은 종현 팬들이 문빈 팬들을 위해 추모 공간에 초콜릿을 두고 갔다. 온라인 커뮤니티
비슷한 아픔을 겪은 종현 팬들이 문빈 팬들을 위해 추모 공간에 초콜릿을 두고 갔다. 온라인 커뮤니티

■ 숙소 생활, 경쟁 등 마음관리 방해

한국 연예계에서도 특히 아이돌 시스템은 이들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연습생 때부터 매월 평가를 받고 실력이 향상되지 않으면 소속사에서 방출되기도 해 대다수가 사생활을 포기하고 연습한다. 과거에는 생활이 자유롭지 않은 부분을 주로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도리어 성공을 위해서는 자유를 일정 부분 포기하는 것은 감수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일 정도다. 중소 기획사에서 아이돌 연습생을 지도해온 한 트레이너는 “자기관리가 가장 중요한 요즘은 자유가 없는 것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아이들은 오히려 성공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스스로 연습 시간을 늘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심리상담 내용을 봐도 이런 부분은 확인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경쟁이다. 특히 데뷔하는 나이는 갈수록 어려지고 지망생은 늘어나는데 이들을 한 숙소에 몰아넣어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습생 때부터 숙소 생활을 하고, 데뷔하면 함께 사는 게 관행이다. 아이돌을 했던 자녀를 둔 한 부모는 “또래들과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 실력과 외모, 인기 등을 비교하고 그러면서 질투도 하고. 아이가 성격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서 집으로 데려온 적이 있다”며 “이럴 때는 대화를 나누는 어른이 중요한데 매니저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승욱 정신분석가도 “합숙 생활을 하면 친소 관계를 맺기 때문에 갈등을 유발하는 대상과 24시간 함께 있어야 하고, 스트레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콘진원 상담에서 두번째로 비중이 높은 열쇳말은 ‘대인관계’다. 구체적으로 ‘팀 내 적응 문제 및 불화’(대인관계의 불편함)가 큰 고민이라는 것이다.

종현, 설리, 구하라가 떠나고 1년 뒤 팬과 소속사가 이들을 떠올리며 남긴 메시지들. 온라인 커뮤니티
종현, 설리, 구하라가 떠나고 1년 뒤 팬과 소속사가 이들을 떠올리며 남긴 메시지들. 온라인 커뮤니티

■ 연예계에 맞는 전문 상담 필요…시스템 변화도 생각해야

<한겨레>와 접촉한 대중문화예술인과 업계 관계자들은 “케이팝 위상은 높아졌어도 새벽부터 하루 종일 시간을 빼야 하는 음악 방송 촬영 등 여전한 업계 시스템” “연예인은 인성과 실력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과도한 일정”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다만 당장은 심리상담의 대상을 넓히고 더욱 세밀하고 정기적인 상담이라도 제대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상담 효과는 실제로 확인된다. 콘진원의 2022년 상담 결과를 보면, 위험 수준이거나 그에 근접했던 ‘자살경향성’ ‘우울척도’ ‘스트레스’ 세 항목의 수치가 상담 이후 모두 낮아졌다. ‘자살경향성’(7점 이상 위험)은 6.72점에서 5.62점, 우울척도(20점 이상 위험)는 17.76점에서 11.27점, 스트레스(21~22점 이상 위험)는 21.49점에서 17.41점으로 나타났다. 콘진원은 현재 1회 1시간, 1인당 최대 12회 상담을 진행한다.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 탓에 콘진원 상담도 원활하게만 이뤄지지는 않는다. 콘진원 관계자는 “신청자가 원하는 곳으로 찾아가는 상담을 원칙으로 하고 비대면 상담을 통해 익명성과 사생활 보호에도 주의를 기울이지만 부정적인 오해나 차별 등에 대해 걱정하며 심리상담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연예계라는 특수한 직업과 분야를 잘 이해하는 전문 상담가도 필요하다. 문화분야 관련 협회장을 지낸 한 인사는 “작은 기획사들도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설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이종임 이사는 “그러나 심리상담이 완전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학습권을 보장해 또래 문화를 경험하게 하고, 합숙 생활 등 시스템을 바꿔 연예인들이 고립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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