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림팰리스> 주연배우 김선영. 인디스토리 제공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tvN)에서 ‘선우엄마’로 강렬한 인상을 심은 배우 김선영(47)은 캐릭터에 동시대성을 가장 잘 녹이는 배우로 평가 받는다. 올해 방송을 탄 <일타스캔들>(tvN)에서 ‘수아임당’이라는 별명까지 얻는 사교육 극성엄마가 그랬고 넷플릭스 <퀸메이커>에서 주인공과 함께 인권운동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등을 돌리게 된 화수이모 역이 그랬다. 31일 개봉하는 <드림팰리스>(가성문 감독)에서는 아파트가 안정과 행복과 사회적 지위까지 결정하는 한국사회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싱글맘’ 혜정을 연기했다. 이 작품으로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제20회 아시아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칸영화제만큼 유명한 영화제는 아니라 해도 수상소식을 듣고 엄청나게 기뻤어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한테까지 내 마음이 전달된 것 같아서요.” 지난 25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선영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던 프랑스 영화 <리턴 투 서울>의 데이비 추 감독으로부터 캐스팅 제안을 받을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영화 <세 자매>를 보고 저를 콕 짚었다는데 신기하더라고요. 연기의 의미는 관객이 배우를 통해 몰랐던 한 인간을 이해하고 그 인간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연기로 지금 여기와 지구 반대편이 연결되는 느낌이랄까요?”
지난 3일 한국에서 개봉한 <리턴 투 서울>에서 김선영은 한국에서 가족을 만난 프랑스 입양아와 생부 간의 엇갈리는 관계를 조심스럽게 잇는 한국인 고모 역을 연기했다. 올 상반기에만 드라마 2편, 영화 2편에 출연하며 분주한 발걸음으로 팬들과 만나고 있다.
<드림팰리스>에서 남편을 안전사고로 잃고 받은 보상금으로 아파트를 마련해 외아들과 잘살아 보려고 애쓰는 혜정은 김선영에게도 유독 힘든 역할이었다. “혜정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불합리하고 억울한 상황에 계속 던져져요. 가장 가까운 친구도 아들도 이게 모두 자신 때문이라고 비난을 하죠. 혜정이 겪는 고립감은 홀로 분투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40~50대 여성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더 잘하고 싶었어요.”
<동백꽃 필 무렵>(KBS2)을 찍을 때는 본인의 촬영장면이 없어도 촬영장에 가서 ‘옹산 게장골목’ 식구들과 삼겹살 구워 먹으며 재밌게 지냈는데 이번에는 쉬는 시간에 동료들과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할 정도로 무겁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감정의 바닥을 치는 연기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할 줄 알았지만 그는 “이런 작품 백편 하고 싶다”며 “나는 얼마든지 사용되고 소모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별로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 가장 바쁜 40대 여성배우 중 하나인 줄 알았더니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촬영나가는 게 다”라며 본의 아니게 한가해진 배우활동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최근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제작도 줄면서 그 유탄을 맞은 것이기도 하지만 그는 여성서사가 여전히 빈곤하다는 지적을 했다. “자식 결혼을 반대한다거나 하는 전통적인 모성애에 묶인 관계가 아닌 독립적인 50대 여성의 서사가 있는 작품은 많지 않아요. 물론 최근 조금씩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고 드라마나 영화 속 남녀 주요 캐릭터의 비중은 여전히 80대20에 머물러 있죠. 누구의 엄마나 이모가 아닌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라면 어떤 캐릭터라도 손들고 나서서 연기하고 싶어요.”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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