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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화의 세계화, 어떻게 이뤄낼 건가…‘묵은 숙제’ 용어 검토도

등록 2023-05-30 08:00수정 2023-05-30 09:14

경주민화포럼에서 쏟아진 민화의 현주소 진단
19세기 화원 이형록이 그린 <책가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책과 도자기, 꽃 등의 다양한 문물들을 기품있게 구성해 배치했다.
19세기 화원 이형록이 그린 <책가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책과 도자기, 꽃 등의 다양한 문물들을 기품있게 구성해 배치했다.

까치호랑이 그림만 떠올렸던 ‘민화’에 돈과 사람이 몰린다고? 지금 민화 장르는 한국 미술판 이면에 꿈틀거리는 거대한 소비 시장에 가깝다. 이 동네에 적을 둔 작가들만 20만명 넘는다는 업계 추정까지 나온다.

민화하면 사람들은 조선 말기에 복을 빌거나 악귀를 쫓기 위해 붙이는 까치호랑이나 새그림, 모란도 등의 익살스럽고 기복적인 전통 그림을 떠올리곤 한다. 세간에는 해학적이고 서민적인 옛 그림으로만 알지만 전통민화 도상을 바탕으로 색깔만 조금 바꿔 베껴 그리거나 새롭게 창작하는 프로와 아마추어 작가들이 201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가격대를 형성하면서 미술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진 못했다. 하지만, 평생교육원·문화센터 등을 통해 스승과 제자들의 사숙관계를 형성한 민화 교육 시장은 무섭게 성장했다. 주수요층인 중노년 여성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힘입어 민화 영역은 갈수록 미술판에서 주목해야 할 영역권으로 떠오르면서 작가들의 개인전, 연합전은 물론 옛 민화·현대민화의 국내외 기획전들도 잇따라 마련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민화센터(이사장 이영실)가 지난 26~27일 경주 보문단지 라한호텔 컨벤션홀에서 ‘케이(K)아트, 민화’란 주제로 열린 10회 경주국제민화포럼은 이런 민화의 성장을 화두로 놓고 10년 사이 성장한 한국 현대민화의 세계화와 미래에 대해 전문가들의 진단과 고민들을 쏟아낸 자리였다.

내용 측면에서 우선 눈길을 끈 것은 한국 화가인 정종미 고려대명예교수의 발제 ‘한국화와 민화’였다. 그는 민화는 기본적으로 채색화인 만큼 석채(돌가루 안료)와 염료 등 재료에 대한 연구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국과 일본처럼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신 석채 재료를 개발해야 전통의 맥을 잇는 주제와 더불어 자생성을 지닌 그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민화는 계급사회였던 왕조시대 주로 서민에 의해 그려진 염원화였다. 이런 성격을 지닌 민화가 문인 백성이란 계급구조가 사라진 지금 시민 사회에서는 존재 근거를 상실한 만큼 개념과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은 국내외 현대미술 대가와 인기 작가들의 작품들을 본보기로 들어 국내 민화계의 인식전환을 촉구했다. 이 미술관에서 지난 1~4월 열렸던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팝아트 대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회고전에 선보였던 이른바 슈퍼플랫으로 불리는 그의 평면적이고 괴기스러운 작품들이 일본의 우키요에(풍속을 소재로 한 목판화), 불화, 채색화, 장벽화 같은 전통미술과 깊은 연관을 맺으면서 동시대 미술에서 전통적 요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의 결과라는 것을 도판 분석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는 최하늘, 박그림, 김지평 등 국내 젊은 관객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끄는 소장 작가들의 사례들도 꺼냈다. 이들이 전통 백납병 병풍이나 민화 도상, 용문양 등을 자유자재로 디지털 화상이나 조형물들로 응용하면서 자신들의 퀴어적, 여성주의적 감각과 의도를 드러내는데 제약 없이 쓰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전통 장르의 제약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민화작가들의 인식전환을 촉구했다.

기존 민화계의 묵은 숙제인 용어를 둘러싼 이견도 여전히 표출됐다.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화를 위해 지난 1000년간 국내 회화사의 주류였던 채색화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켜야 한다면서 그 중요한 일부인 민화 장르의 민화 용어를 폐기시키고 새 용어를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윤 전관장은 이어 “국제경쟁력을 생각하면 독창적인 작가의식은 더욱 중요한데, 우리 민화계는 아직 모사와 창작, 취미와 작가 생활이 혼재돼 있다”면서 “다른 민화 도상을 그대로 베껴그린 것을 창작인양 전시하는 행위는 이제 하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민화가 20세기초 조선의 미를 비애의 미로 규정한 일본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된 용어로 속히 내버리고 채색 길상화나 한화 우리그림 등의 여러 대안적 조어들을 검토해 새롭게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윤열수 가회민화박물관장은 채색화는 한·중·일에 보편적으로 규정되는 모호한 장르 개념인데 비해 민화는 한국의 전통미술의 가장 독특한 부분을 표상하는 명칭이고 민화 평단조차 미비한 상황을 감안하면 개정을 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한다는 반론을 폈다. 정병모 한국민화학교장은 대중문화 한류를 거론하면서 젊은 세대의 감수성에 맞는 현대적인 형식과 창의적인 콘텐츠를 개발해 민화장르의 슈퍼스타 작가를 개발하는 것이 세계화를 위해 긴요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경주/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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