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주요 영화 배급사들이 올해 최대 흥행 기대작을 내놓는 여름 극장가에 ‘할저씨(할아버지+아저씨)’ 삼총사가 최고의 액션 히어로 자리를 놓고 대결한다.
평균 나이 70살. 팔순의 나이에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오른 해리슨 포드와 31년 만의 복귀로 모던 에이지(1989년 <배트맨>이후 4부작) 배트맨 팬들의 심장 박동수를 높인 <플래시>의 마이클 키튼(71), 5년 만에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로 돌아오는 톰 크루즈(60)가 그들이다.
가장 긴 공백만큼 큰 궁금증을 일으키는 건 팀 버튼 연출작 <배트맨 1,2>(1989,1992)의 마이클 키튼이다. 14일 국내 개봉하는 <플래시>는 빛보다 빠른 히어로 플래시(애즈라 밀러)가 주인공이지만 팬들의 관심사는 은둔의 배트맨으로 등장하는 마이클 키튼에 쏠렸다. 마이클 키튼은 조지 클루니, 크리스천 베일, 벤 애플렉 등 톱스타급 차기 배트맨들을 누르고 역대 최고의 배트맨으로 여러번 꼽힌 바 있다. 근육질도 아닌데다, 어둠을 드리운 키튼의 배트맨은 당시까지의 액션 히어로 공식을 깨면서 새로운 히어로의 전형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플래시>에서 배트맨은 은둔자로 살아가는 과거의 히어로지만 플래시의 조력자가 되면서 다시 검은 수트를 입는다. 공개된 예고편에서 배트윙을 우아하게 펼치며 하늘을 나는 마이클 키튼의 모습이 공개되자 “카리스마 미쳤다” “옛날보다 더 젊어졌네” 등 댓글들이 달리며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내고 있다. 키튼이 <배트맨>에서 조커와 대적할 때 외쳤던 유명한 대사 “당신 미친 짓하고 싶어? 같이 미쳐보자(You wanna get nuts? Let’s get nuts)”도 묵직한 저음으로 다시 등장하며 기대를 높이고 있다.
이달 말 개봉하는 <인디아나 존스:운명의 다이얼>은 해리슨 포드가 공식 선언한 존스 박사의 마지막 모험담이다. 할리우드의 양대 거장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함께 만든 이 매력적인 모험가는 1981년 <레이더스>에서 출발했으니 올해로 40년 넘게 여정을 이어간 셈이다. 극 중 존스는 1899년생. 시리즈 다섯번째 작품인 <운명의 다이얼>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존스가 나치에게 잡혔다 탈출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은퇴를 앞둔 1969년으로 무대를 옮겨간다. 극 중에서도 이미 일흔살이기 때문에 초기작들만큼의 액션은 등장하지 않고 컴퓨터그래픽도 많이 사용했다. 이 때문에 재미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지만 요즘 할리우드 액션과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이 시리즈에서 팬들의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은 존 윌리엄스의 그 유명한 메인 테마곡이 나오면서 존스가 모자와 채찍을 들고 40년 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바로 그때이기 때문이다.
‘환갑 청년’ 톰 크루즈는 ‘현역’ 액션 스타임을 강조하면서 시리즈 7편 <미션 임파서블:데드 레코닝 파트 원>(7월12일 개봉)으로 돌아온다. 1996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1편이 공개됐으니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특수 요원 ‘이단 헌트’의 나이도 어림잡아 환갑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와 제이슨 본이 무릎 꿇을 수준의 고난도 액션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공개된 9분짜리 액션 촬영 현장은 영화적 보정을 하지 않은 현장 동영상임에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찔함을 선보인다. 노르웨이의 절벽에서 모터사이클을 타고 낙하하는 장면으로 톰 크루즈는 와이어 연결이 아예 불가능한 높이에서 안전장비 없이 바이크를 타고 달려 뛰어내린다. 톰 크루즈는 “장담컨대 지금까지 해본 것 중 가장 위험한 시도”라고 말했다.
젊고 뛰어난 피지컬을 가진 배우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액션 히어로 대열에 이른바 ‘올드 스쿨’이 합류한 건 우선 영화기술의 발달에 있다. <운명의 다이얼>에서 해리슨 포드의 액션은 고난도 승마부터 격투씬까지 대부분 스턴트맨과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했다. 특히 극 중 일흔의 나이라도 액션에 설득력을 가질 정도로 젊어 보이는 존스와 2차 대전 당시의 40대 존스에는 디에이징 기술을 적용했는데 업그레이드된 기술력 덕에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보다 더 중요한 올드스쿨의 활약 이유는 최근 거의 모든 흥행 대작들이 속편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올해 개봉 예정인 대작 중 속편이 아닌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정도다. 팬데믹 이후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의 극장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도에 돈을 퍼붓기 보다는 검증된 흥행요소가 있는 속편 제작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왕년의 액션스타들도 덩달아 호출되고 있는 것. 지난 달 4편을 개봉하며 시리즈의 끝을 알렸던 <존 윅>도 최근 5편 제작 논의에 들어갔다. 존 윅을 연기한 키아누 리브스는 현재 58살. ‘액션이라면 환갑은 되야’라는 새로운 공식이 쓰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각 영화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