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용산구 용산씨지브이(CGV)에서 영화 전공 대학생들과의 만남을 가진 넷플릭스 공동시이오 테드 서랜도스(가운데)와 박찬욱 감독.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는 옆에 계신 박찬욱 감독 같은 거장들과도 작업하지만 전체 오리지널 영화의 1/5은 연출 입봉작이며 신인 감독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지금은 스토리텔링의 황금기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길 바랍니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시이오가 미래의 한국 영화인들을 만났다. 21일 오후 서랜도스는 박찬욱 감독과 함께 서울 용산구 씨지브이(CGV)용산 박찬욱관에서 영화 전공 대학생 백여명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현재 미국 케이블 채널인 에이치비오(HBO) 시리즈 <동조자들> 편집 중이라고 근황을 밝힌 박 감독은 이날 “넷플릭스 행사에 참여하느라 <동조자들> 편집시간을 땡땡이쳤다는 게 에이치비오에 알려지지 않길 바란다”는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최근 강동원, 박정민 주연으로 촬영을 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전,란>(김상만 감독)의 각본과 제작을 맡기도 했다. 박 감독은 “임진왜란을 소재로 하는 무협 사극이라 어느 정도의 (예산) 규모가 필요한데 넷플릭스와 협의가 잘됐고 (아직까지는) 스튜디오의 간섭도 없어, 즐겁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랜도스는 “<옥자>(2017)로 한국 영화에 첫 투자를 하면서 나뿐만 아니라 세계가 한국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현재 한국 영화계의 수준을 따라올 곳은 없다”면서 “실력있는 스토리텔러에게 창작의 자유와 예산을 최대한 지원하는 게 우리들의 오리지널 제작 방식이다”라고 덧붙였다.
21일 서울 용산구 용산씨지브이(CGV)에서 영화 전공 대학생들과의 만남을 가진 넷플릭스 공동시이오 테드 서랜도스(가운데)와 박찬욱 감독. 넷플릭스 제공
젊은 시절 친구와 비디오 가게를 운영했다가 망했던 경험이 있는 박찬욱 감독과 비슷하게 서랜도스는 대학을 그만두고 비디오 가게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디브이디(DVD) 우편 대여를 하던 넷플릭스의 초창기부터 몸담아왔다. 그는 “2004년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보며 한국영화에 대해 진입을 해서 이후 한국영화를 많이 찾아봤다. 이처럼 좋은 영화는 긴 여정의 진입로가 되어주고 타인과 나 사이의 연결을 해준다”고 말했다.
박 감독 역시 “좋은 영화는 협소할 수밖에 없는 개인적 경험이나 자아를 넓혀주고 다른 사람, 다른 세계와 연결시켜준다”면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 <로마>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70년대 멕시코시티 가정부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는 것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겠는가. 이런 경험을 주는 게 좋은 영화”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하나로 촬영과 편집이 가능해지고 인공지능(AI)까지 창작의 도구 또는 주체로 등장하는 등 기술적 급변기에 놓인 영화의 미래에 대해 서랜도스는 “매우 밝다”며 기업인으로서의 긍정적 견해를 밝혔다. 그는 “코로나 중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통화하면서 팬데믹 시기에 자신에게 필요한 건 음식과 물, 스토리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스토리텔링은 우리 삶에 중요하다. 갈수록 좋은 스토리텔러가 훌륭한 스토리텔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들이 늘고 있고 스토리를 즐길 수 있는 선택지도 늘어나고 있다. 넷플릭스는 스토리 텔러와 관람자들에게 좋은 경험들을 늘려가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창작자로서 빠른 기술 발달이 겁도 나고 기대도 된다”면서 “지금은 값비싼 카메라와 전문적 기술자가 없어도 스마트폰 하나로 영화를 찍고 개봉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비전문가는 오히려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 영화의 미래는 다양성이 더 증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볼 수 있는 선택지가 다양해져 편리하지만 전화기로만은 영화를 안 봤으면 좋겠다. 그것만큼은 나도 힘들다”고 웃으며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세태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21일 서울 용산구 용산씨지브이(CGV)에서 영화 전공 대학생들과의 만남을 가진 넷플릭스 공동시이오 테드 서랜도스(가운데)와 박찬욱 감독. 넷플릭스 제공
한국영화가 세계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박 감독은 “나라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개개인 필름메이커의 개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조심스럽다”고 운을 떼면서 “한국인은 일본강점기와 전쟁, 독재정권, 산업화로 인한 계급 갈등 등 고생스러운 역사를 압축적으로 겪으면서 웬만한 자극에는 끄떡도 하지 않은 게 자극적 드라마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짚었다. “작품 한 편에 유머와 슬픔, 공포 등 다양한 진폭의 감정을 담으려고 하다 보니 자극적이면서도 인류가 가진 보편적 감정을 건드린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서랜도스는 넷플릭스 최고 책임자로서 가장 잘한 결정을 묻는 질문에 “오리지널 시리즈와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결정”이라면서 “당시 자발적이라기보다는 스튜디오들이 성공한 작품을 팔지 않으려고 해서 이뤄졌던 결정이긴 하지만 이 프로세스를 시작함으로써 넷플릭스는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