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부리오가 간담회에서 전시 구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금 세계 문화계는 포화상태입니다. 너무 많은 비엔날레 전시들, 너무 많은 책들, 너무 많은 영화들, 너무 많은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그렇다고 예술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형식이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을 늦출 수는 없어요. 이번 광주 비엔날레는 창조적인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38년 역사를 지닌 국내 최대 규모의 격년제 국제미술제로 내년 9월 열리는 15회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인 프랑스의 기획자 니콜라 부리오(58)는 새 전시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뚜렷해 보였다. 관객과 작가가 함께 협력 관계를 형성해 공동체적인 작업을 하는 과정 자체를 작품으로 삼는 관계 미학 담론을 창안해 지난 20여년간 세계 미술계를 풍미한 스타 큐레이터인 그는 지난달 초 임명된 뒤 26일 낮 서울 한 식당에서 광주비엔날레 재단 박양우 대표이사와 함께 첫 언론 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내년 비엔날레 본전시 주제를 ‘판소리-21세기 사운드스케이프(소리의 풍경)’로 잡았다고 발표하면서 ‘한국 전통소리를 통한 21세기 공간 탐구’를 화두로 삼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기존 미술관 기획전과 별 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은 지난 7~8년 동안의 전시 흐름과는 다른 양상의 실험적 이슈를 제기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그는 “작품을 그저 의미없이 늘어놓고 걸어놓는 전시가 아니라 형식에 집중해서 형식을 통해 다른 점을 보여주고 싶다”며 “전시작품들을 하나의 시퀀스처럼 구성해 마치 영화를 보듯 감상하는 비엔날레를 만들겠다”고 했다.
니콜라 부리오가 26일 낮 서울 도심 식당에서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전시구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비엔날레가 동시대성이 필요한 전시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철학자 들뢰즈가 한 말이 있어요. 과거를 잊기 위해서는 많은 기억이 필요하다고요. 그래서 저는 비엔날레 전시를 진행하는 것이 마치 영화를 찍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비엔날레가 일어나는 현장 주변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도 광주란 도시가 담은 역사적 기억이나 흔적들을 담아내야 한다는 생각들을 갖고 있으나 명백한 방식, 직접적 방식을 피하고 간접적 방식으로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는 감독 선임 이전 공모를 준비하면서 판소리란 한국 전통 음악장르를 알고 결정적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판소리 반주자 박수의 리듬 속에 서사를 이어나가는 판소리 특유의 형식으로 코로나19 유행과 기후위기 이후 촉발된 공간의 문제를 표현하겠다는 구상이 자연스럽게 생겼다는 것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1993)에서 보이듯 산과 시장 등의 공간을 향해 소리를 쏟아내는 이미지들이 비엔날레를 끌어가는 힘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본전시장 외에도 공원과 대안공간, 카페, 상점 등에서 관객들이 소리의 이미지와 함께 공간의 의미를 느껴보게 하겠다는 생각도 털어놨다.
음향의 충돌로 소음이 발생하는 라르센 효과, 독립적 선율이 수평적으로 흘러가는 다성음악, 불교의 ‘옴’ 구령에서 연상되는 ‘태초의 소리’로 세부 섹션을 구분해 공간에 대한 탐색을 벌이겠다는 이 프랑스 기획자는 “음악과 대지 땅의 융화에 대한 메시지도 전할 것”이라며 준비과정에서 깜짝 놀랄 기획들을 계속 선보이겠다고 장담했다.
글 ·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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