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수라>를 연출한 황윤 감독, 스튜디오 두마 제공
“극영화로 표현하면 반전 드라마라고 할까요?”
2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수라>의 황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수라>는 반전의 연속이다. 영화에서 황 감독이 직접 말하듯 반문이 먼저 나온다. “새만금에 갯벌이 남아있었네? 간척사업으로 다 없어진 거 아냐?” 파괴되는 새만금의 생태를 고발하는 줄 알았는데 푸른 새벽 갯벌의 거대한 분홍색 달, 수천마리 도요새의 웅장한 비행과 솜털같은 아기 새의 꿈뻑이는 눈 등 아름다운 장면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2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황 감독은 “새만금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수라>를 소개했다.
전북 군산 미군기지 근처에 있는 수라갯벌은 노태우 정부 때 시작해 지금까지도 진행중인 새만금 간척사업에서 아직 유일하게 남아있는 갯벌이다. 현재 새만금신공항사업이 추진되는 바로 그 위치에 놓여있다. 황 감독 역시 2014년 군산으로 이사를 가지 않았다면 이 갯벌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
“이사온 이듬해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을 우연히 만나게 됐어요. 다 끝난 일인 줄 알았는데 새만금을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무엇보다 동필씨라는 인물이 놀라웠어요. 목수 출신으로 갯벌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인테리어와 보일러 일을 하는 사람이 시간만 나면 2톤 트럭에 조사, 촬영 장비를 싣고 갯벌로 가요. 그가 말했죠. 머리 위에서 도요새 10만 마리가 춤추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그 경이로운 순간이 얼마나 황홀했을까, 더 이상 볼 수 없는 상실감은 얼마나 클까, 하는 질문에서 <수라>가 시작됐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새들이 떠나면서 그런 장관을 이제는 볼 수 없지만 경이로운 순간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바닷물이 거의 빠져나가 황폐화되고 있는 염습지에서도 쇠제비갈매기가 알을 낳고, 보송보송한 아기새가 비척대고 일어나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은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촬영은 7년간 이어졌다. 동물원에 갇힌 새끼 호랑이의 슬픔을 담은 <작별>(2008)이 2년 남짓, 돼지 사육환경과 육식문화를 자기성찰적으로 바라본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가 4년가량 걸렸으니 전작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갯벌 나가는 아빠를 군말없이 쫓아다니던 동필씨의 중3 아들 승준씨는 “사라진 쇠검은머리쑥새를 찾아 번식하는 과정까지 연구하고 싶다”는 관찰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생물학 전공 대학생이 됐다. 간척과정에서 발생하는 먼지 때문에 비염으로 고생하던 황 감독의 아들 8살 도영이는 엄마보다 훌쩍 큰 14살 소년이 됐다.
황 감독은 “생태 다큐라기보다 성장 다큐”라고 말했다. 카메라 한 가운데 등장하는 황 감독 자신의 성장이 무엇보다 컸다. “이야기는 시민조사단의 활동만으로도 넘쳐서 제가 카메라 앞에 나설 생각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들을 보면서 현장 한번 제대로 와보지 않고 멀리서 다 끝났다고 생각해온 제 생각이 부끄러워졌어요. 위대한 시민조사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을 만나면서 점차 변해가는 나, 방관자였다가 수라갯벌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나의 모습에서 관객들이 비슷한 마음을 찾게 될 것 같아 다시 카메라 앞에 나서게 됐습니다.”
<수라>는 지난 21일 개봉 첫날 1만명이 보고 갔다. 부족한 제작비와 열악한 홍보환경, 적은 스크린 수를 감안하면 상업 대작영화의 백만 관객에 견줄 만한 기록이다. 관객들이 직접 나선 ‘<수라> 100개 극장 프로젝트’ 추진의 결과다. 시작은 <수라>가 처음 공개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직후부터였다. “영화제 끝나자마자 이곳저곳에서 공동체 상영을 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어요.” 취향이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극장 아닌 곳에 모여 영화를 보는 게 공동체 상영방식이다. 황 감독과 제작진은 이들에게 극장 스크린으로 보기를 추천했다. 화면 가득 담은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관객들이 직접 모금을 하고 극장 대관을 해 연 시사회가 올 초부터 지금까지 30차례에 이르렀다. <수라>에 대한 이 애정은 100개 극장 개봉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개봉일에 맞춰 관객들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확보한 극장이 80개에 이르자 극장 쪽도 관심을 보이며 131개관에서 개봉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감독으로서 보람있는 성과지만 마음이 편치 만은 않다. 공항이 건설되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게 ‘수라’가 놓인 처지인 탓이다. “새만금신공항에 경제성이 없다는 건 이미 여러번 보고된 상황이예요. 법정 보호종 동물도 40종 이상 확인됐구요. 환경영향평가는 여전히 진행중이고 기후위기 시대가 요구하는 탄소배출 억제라는 과제에도 역행하는 일이죠. 염습지의 탄소흡수능력이 숲의 50배에 이르니까요. 국민 혈세를 써서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을 왜 하려는 건지 분노할 수 밖에 없습니다.” 황윤 감독은 660세대 2천여명의 주민들이 강제로 떠나면서 사라진 군산 미군기지 근처의 하제마을과 유일하게 마을을 떠나지 않은 600살짜리 나무에 관한 다큐멘터리 <하제>를 차기작으로 준비중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