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그림, 콘티까지 공모를 통해 선발된 팬들이 직접 만든 웹툰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과 <차원을 넘어 이세계아이돌>. 카카오웹툰 제공
머클, 갈가알, 여비날, 남궁둘기…. 이름은 낯설지만, 알고 보면 ‘차원이 다른’ 웹툰 작가들이다. 카카오웹툰에서 요즘 화제인 ‘이세계아이돌 시리즈’를 만든 주인공이다. ‘이세계아이돌 시리즈’는 팬 스스로 만든 웹툰이다. 스타와 관련한 이야기를 팬이 만든 일종의 ‘팬픽’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수준이 전문 작가 못지않다. 스토리·그림·콘티 작가도 이세계아이돌 팬들이고, 웹툰 배경음악(OST)에 뮤직비디오 일러스트레이터와 이모티콘도 팬들의 솜씨다.
자발적으로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도 아니고 대형 회사에서 나온 웹툰을 팬들이 만든 것은 처음이다. 팬들이 ‘최애’에 다가가려고 정체를 숨기고 숨어들기라도 한 걸까. 카카오웹툰 쪽은 7일 <한겨레>에 “이세계아이돌을 주인공으로 웹툰을 준비하다가 팬들이 참여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3D 그룹인 버추얼 아이돌의 색다른 점과 특징은 누구보다 팬들이 웹툰에 잘 녹여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팬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공모전을 열었고, 500여편 중에서 실력자 4명을 선발했다. 머클과 갈가알이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을, 여비날과 남궁둘기가 <차원을 넘어 이세계아이돌>을 맡아 글과 작화, 콘티를 담당했다.
반응도 좋다. 지난 6월21일 먼저 공개된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은 첫주 주말 기준 카카오웹툰·카카오웹소설 조회수 1위를 기록했다. 7일 현재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를 합친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 누적 조회수는 약 300만회. 웹툰과 함께 공개된 오에스티 ‘록다운’ 뮤직비디오는 첫 주말 인기 급상승 동영상 1~2위에 올랐다.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의 성공에 오는 20일 시작하는 <차원을 넘어 이세계아이돌>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진다. <차원을 넘어 이세계아이돌>은 6월23일 프롤로그를 공개했다. 이세계아이돌의 한 팬은 “우리의 마음을 잘 아는 팬들이 만들어 공감대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 속 장면이 그룹 세계관과 연결되면서, 이세계아이돌을 좋아하는 10~20대 팬들이 웹툰으로 유입되는 현상도 일어난다.
팬들이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는 현상은 대중문화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한 식품회사의 경우 베스트셀러 제품 5개를 의인화해 혼성 2D 그룹을 만들면서 팬덤명과 활동명 등을 팬들이 직접 선택하게 했다. 멤버들의 목소리도 오디션을 통해 팬들이 선발했다. 팬 참여형 그룹도 나왔다. 회사에서 그룹을 데뷔시키면서 팬들의 투표로 타이틀곡, 팬덤명, 앨범명을 정하고 팬이 직접 스타에게 투자하고 제작에 참여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출연자와 시청자가 집단지성으로 미션을 수행하는 예능 프로그램 <플레이유 레벨업>도 인기다. 유재석은 상황마다 시청자 결정에 따라 다음 행동을 이어 가야 한다. 시청자들이 티브이에 ‘투입’되는 셈이다.
과감함을 넘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은 이 세계 아이들만의 특색 있는 팬덤 문화에서 비롯했다. 요즘 제트(Z) 세대는 콘텐츠를 보고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탈락했지만 실력자들은 팬들이 힘을 모아 데뷔시키고, 기획사의 잘못된 판단에 입장을 표명하며 규정을 바꿨던 것에서 한층 더 나아간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제트 세대들은 이제 콘텐츠 소비자가 아니라 메이커”라고 분석했다.
엔터테인먼트가 대형산업화한 이유도 한몫한다. 다양한 아이피(IP·지식재산권)가 꾸준히 등장해야 아티스트의 시장성이 확장되기 때문에 팬덤까지 가세하게 되는 것이다. 이세계아이돌 한 팬은 “이젠 스타의 이미지를 고려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가 더욱 다양한 곳에서 활동할 수 있게 영역을 확장해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스스로 콘텐츠도 만들고, 프로모션까지 진행한다는 의미다. 카카오웹툰 쪽은 “‘이세계아이돌’ 웹툰 관련 추가 오에스티와 이모티콘 등 아이피 발굴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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