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성향 민간단체들이 젠더·성평등·인권 등을 다룬 어린이·청소년 책이 “유해 도서”라며 공공도서관에 “열람 제한 및 폐기”를 요구하는 민원 활동이 늘면서, 일부 도서관들이 출판 관련 단체에 의견서를 요청하는 등 다양한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에 나섰다. 사진은 공공도서관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보수 성향 민간단체들이 젠더·성평등·인권 등을 다룬 어린이·청소년 책이 “유해 도서”라며 공공도서관에 “열람 제한 및 폐기”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민원 활동이 크게 늘고 있다. 이에 최근 일부 도서관들이, 단체들이 민원을 제기한 도서출판물 117종의 유해성 여부를 심의해달라고 간행물윤리위원회에 의뢰했다. 지난 18일에는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에 공문을 보내 “민원 제기된 117종 출판물에 대한 유해성 여부 또는 출판 과정 적합성에 대한 단체의 의견서를 회신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출판 관련 단체들에도 의견 수렴에 나섰다. 사실상 ‘금서 지정’ 활동이 도를 넘자, 민원에 취약한 도서관이 출판계 안팎에 의견을 구하는 방식으로 공론화에 나선 모양새다.
도서관들이 출협에 보낸 공문을 보면, ‘전국학부모연합회’ 소속 단체들에서 활동한다는 학부모들과 청주 시민단체 ‘행동하는학부모연합회’ 대표는 지난 6일부터 이들 도서관에 <10대를 위한 성교육> <꽃할머니> <어린이 페미니즘 학교> <달라도 친구> 등을 포함한 총 117종 책에 대해 “유해 도서”라며 일반 이용자의 열람을 제한하고 대출을 금지하고 폐기해달라는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다만 행동하는학부모연합회 대표는 26일 <한겨레>에 “나는 단체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117종 전체가 아닌 성교육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나다움책’ 시리즈에 대해서만 민원을 제기했으며, 직원 및 관장과 두 차례 전화를 했을 뿐 그 행위도 지속적이지 않았다”고 밝혀왔다.
이 같은 행위는 미국 보수 학부모단체들의 ‘금서 지정’ 운동을 닮은 것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이 ‘유해’ 도서라고 밝힌 어린이·청소년 책들은 대체로 젠더·성평등·인권 등을 주제로 삼은 책들이다. 허은미 작가의 <달라도 친구>는 성격·외모·취향·장애·가족구성·인종 등이 각각 다른 아이들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화로,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권윤덕 작가의 <꽃할머니>는 2007년 한·중·일 작가들이 ‘평화’라는 주제로 그림책을 동시 출판하기로 해 권 작가가 ‘위안부’ 피해 여성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그림책이다. 권 작가는 최근 세계적인 아동문학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CAA) 2024년 한국 후보로 선정되는 등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작가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1조 ‘목적’)을 위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등을 정한 도서관법을 두고 있으며, 한국도서관협회의 ‘도서관인 윤리선언’은 “도서관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서 자신의 편견을 배제하고 정보 접근을 저해하는 일체의 검열에 반대해야 한다”(2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도서관들이 ‘지역사회 이용자의 요구’를 장서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꼽고 있어, 사실상 ‘금서 지정’ 요구에 해당하는 민원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출협 관계자는 “공문이 접수돼 내부 논의 중이며 조만간 의견을 밝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