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한 서점에서 어린이들과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결정 주문: 이 사건 심판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7월20일 헌법재판소는 현행 도서정가제와 관련하여 전자책 작가가 제기한 직업의 자유 침해 등 위헌 확인 심판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선고했다. 이는 도서정가제를 규정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 간행물 판매자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판단한 첫 사례로 상징성과 실효성이 매우 크다.
올해 1월12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치열한 도서정가제 찬반 공개 변론일로부터 약 6개월 만에 내려진 이번 선고에서, 도서의 정가 판매 의무와 가격 할인 제한을 규정한 현행 도서정가제 조항에 대해 재판관(8인)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했다. 이에 따라 도서정가제와 관련한 숱한 소모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올해 11월까지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할 향후 3년간의 도서정가제 정책 방향에 큰 뒷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의 이유로 도서정가제가 지나친 가격경쟁에 의한 유통질서 혼란을 방지하여 저자와 출판사를 육성하고, 다양한 서점의 유지를 통해 독자의 도서 접근권을 확대하며, 문화적 다양성 보호, 출판산업과 독서문화의 선순환 생태계 조성 등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종이출판물과 상호 보완 관계인 전자출판물에 대한 도서정가제 적용의 타당성을 인정한 점이 주목된다. 또한 도서정가제 적용에 따른 ‘소비자 후생’의 제한 정도가 그 효과에 비해 크지 않다고 보고, 소비자 후생을 경제적 이득만이 아닌 도서 선택권 증대 등 ‘독자의 이익’에 방점을 찍었다. 무엇보다 도서정가제를 “독과점 방지 장치”로 본 것은 탁견이다. 1980년대의 공정거래법 시대부터 현행 정가제로 개정(2014년 11월)되기 이전까지 사실상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입김으로 폐지 직전까지 내몰렸던 도서정가제의 파란만장한 경과를 반추해보면, 매우 통쾌한 법리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도서정가제 관련 법 조항의 후속 개정 노력이 필요하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명칭조차 없는 ‘도서정가제’를 명시하고, 법정 할인 한도의 실효성과 범위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 인터넷 서점 등에서 도서 구매와 별도로 제공하는 쿠폰이나 배송비 등을 할인 대상에 포함할지 여부도 논의해야 한다. 또 현재는 책값 할인폭이 상대적으로 큰 학교도서관(대학도서관 포함)의 도서구매비도 공공도서관 수준에 맞춰야 한다. 그리고 전자출판물과 관련하여 대여와 정기구독은 정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담은 ‘전자출판물 정가제 시행 지침’을 모법인 출판문화산업진흥법으로 옮겨야 한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으로 판단한 민간의 출판유통 자율협약이 해체됨에 따라 기업형 중고서점에서의 신간 판매 기간 제한, 제3자(카드사 등) 할인 제공 제한 등을 법제화할 필요성도 대두됐다.
이번 합헌 결정은 도서정가제 역사에서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그렇지만 책 생태계의 유통질서 안정화가 빈사 상태로 향하는 국민의 독서 활동 및 출판시장 활성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현실은 엄중하다. 책 생태계 발전을 위한 독서‧출판정책의 고도화, 책을 읽고 나누는 사회 만들기에 합심하여 큰 걸음으로 나설 때다.
책과사회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