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문’ 주연배우 도경수.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카트’(2014)의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도경수를 캐스팅할 때를 또렷이 기억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실화를 다룬 무거운 영화인 만큼 영화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조역으로 아이돌 배우를 바라긴 했지만 워낙 저예산 영화라 스타 캐스팅은 언감생심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대도 안 한 도경수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당시 도경수는 배우 이력은 없지만 ‘으르렁’으로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 시장까지 집어삼킨 엑소의 멤버였다. 그의 인기로 보자면 터무니없던 개런티를 털어놨음에도 도경수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고 오디션을 통과했다. 그리고 ‘카트’에서 신형 휴대폰 같은 또래들의 바람을 마음속에 눌러 담은 채 고달픈 현실을 감내하는 태양 역으로 큰 호평을 받으며 연기자 데뷔를 했다.
‘카트’ 이후 십년, 도경수는 주연과 조연을 오가며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으면서 대작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연으로 성장했다. ‘더 문’의 선우는 마음에 그늘을 드리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가 주로 해온 배역들과 이어진다. 하지만 더 뜨겁게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이전의 캐릭터들과 다르다. 31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카페에서 만난 도경수는 “상대 배우와 눈을 맞추며 액션 리액션으로 이뤄지는 게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은 거의 모든 장면을 혼자 연기하는 게 조금 외로웠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가 연기하는 황선우는 달 탐사에 함께 나섰던 다른 요원 둘을 사고로 잃은 뒤 홀로 달 지표를 밟는 막내 요원이다. 유성우로 우주선이 망가지고 고립된 그를 구출하기 위해 지구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위성 통신으로 소통하는 설정이라 실제 연기는 좁은 우주선 세트에서 혼자 해야 했다. 함께 출연한 김희애는 제작발표회 때 “생전 처음 뵀”고 설경구 등 상대 배우들도 만날 기회가 없었다. 노련한 선배들에게 현장에서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건 아쉬웠지만 홀로 달에 떨어진 고립감을 연기하기에는 충분하게 고립돼있었던 셈. “배우 대신 감독님과 늘 함께 있으며 선우의 고립된 감정선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또 실제 크기와 똑같이 만든 우주선 자체가 정말 좁고 답답해서 두려움이나 고립감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했죠.”
김용화 감독과는 ‘신과 함께’ 1, 2편에서 관심병사로 출연한 뒤 두 번째 만남이다. “황선우는 관객들이 쉽게 동의하고 지지할 수 있는 인물이이어야 했다”는 게 김 감독이 밝힌 캐스팅 이유. 큰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결과가 불투명한 황선우의 구조에 나설 수 있도록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는 역할의 전부가 도경수의 몫이었다.
5개월의 촬영기간 동안 홀로 연기하는 도경수와 붙어있다시피 했던 김 감독은 “무거운 우주복 위에 와이어를 6, 7개씩 걸고 연기하다 보면 쏟아지는 땀 때문에 어이없을 정도로 고생스러운데 이 친구가 좀 둔한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힘든 기색 없이 해내더라”고 말했다.
도경수는 “체감무게가 10㎏은 되는 우주복을 입고 와이어에 매달려 우주 유영을 연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며 “아이돌로 안무 훈련이 되어 있는 게 몸의 균형을 잡거나 움직임의 합을 맞추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또 “연기하는 나만 중요한 게 아니라 와이어를 조작하는 스태프들의 역할도 중요하기 때문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정말 많은 리허설을 한 거 같다”고 덧붙였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완성한 장면이 많아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관객 못지않게 궁금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는 그는 “내 연기를 볼 때마다 여전히 어색하고 아쉬운 게 솔직한 마음”이라면서도 “지난 10년 동안의 경험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고 했다.
도경수는 엑소 멤버와 배우 일을 병행하며 ‘연기돌’로 불리는 것에 대해 “엑소 활동으로 배우 일을 더 순탄하게 시작한 부분이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함께 하는 스태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연기 못한다 소리를 듣지 말아야겠다는 노력을 해온 것 같다”고 했다.
차기작은 대만영화 리메이크작으로 지난해 초 촬영을 마친 ‘말할 수 없는 비밀’. 도경수는 “본격 액션이나 코미디처럼 도전해보고 싶은 게 많지만 가장 고르고 싶은 건 장르와 상관없이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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