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아들이 9개월째 학교도 안 가고 은둔생활을 한다. 주로 방에서 온라인 게임에 빠져 있다. 이쯤 되면 입에 욕을 달고 사는 반항기 가득한 10대 청소년이 연상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감정이 메말랐을 뿐 아빠한테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아이는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며 활달했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스스로 세상 사이 벽을 쌓았다.
지난 1월13일과 27일 방송한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채널A, 금 저녁 8시) 130·131회 내용이다. 아빠가 소통을 거부하는 아들을 도와달라고 이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그동안 ‘금쪽같은 내 새끼’는 초등학생이 부모한테 폭언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 등을 여과 없이 공개해왔다. 심한 행동은 인터넷에서 영상으로 떠돌아 2차 피해마저 우려됐다. 방송을 통하면 부모와 아이의 일상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전문가가 원인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분명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끔은 저 장면까지 내보내야 했나, 다시보기 서비스는 안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을 때도 있다. 아이가 커서 그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러나 130·131회는 한줌 고민도 없이 모두가 보기를 권한다.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이자 방향성이 담겨 있는 회차다. 나아가 어른들의 잘못이 아이한테 어떤 상처를 주는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닫은 이유를 알고 나면 눈물이 쏟아진다. “어른으로서 미안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9개월 전 엄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음주운전 피해자였다. 아이에게 큰 존재였던 엄마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아이의 세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밖에 나오면 엄마가 있던 곳, 엄마와 가려고 했던 곳 등이 생각나 방문을 열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 진행자인 오은영 전문의는 “엄마가 돌아가신 걸 부정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워 살 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131회에서 연극 치료 등을 통해 아이는 9개월간 묵혀둔 슬픔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며 엄마 역할을 한 배우를 안고 통곡한다. 이 모습을 지켜본 시청자들이 함께 울었다. 이 아이는 왜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 걸까. 억울한 고통이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엄마를 잃었고, 아이는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에 자신을 가뒀다.
방송이 화제가 되면서 누리꾼들이 사고에 관한 기사를 찾아냈다. 가해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169% 만취 상태로 시속 107㎞로 주행하다가 스포츠실용차(SUV)를 들이박았다. 1명이 사망하고 아이 포함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가해자는 음주운전 및 위험운전치사죄로 징역 1년4개월을 선고받았는데 항소했다고 한다. 이 방송을 봤을까? 그가 감옥에서 1년을 살든 10년을 살든 아이의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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