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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성교육·성평등 도서가 ‘금서’? “우리가 읽어보자” 운동 확산

등록 2023-08-08 07:00수정 2023-08-10 17:49

화상회의로 여는 책담회부터
SNS ‘대출·구입 인증’, ‘번개’ 독서회까지
예민한 도서관 인스타그램.
예민한 도서관 인스타그램.

“‘걸스토크’는 작가 이다의 몸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여드름 관리하는 법부터 생리나 성욕, 자위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다룹니다. 여자의 가슴이 놀림거리가 된 상황을 얘기하면서 불편한 브래지어 경험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거나 털에 대한 스트레스도 다룹니다. 생리컵 등 다양한 생리대 이야기도 나와요.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여자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른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빼라는 걸까요?”

지난 2일 저녁 7시,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충남차제연)가 화상회의 ‘줌’으로 연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릴레이 성평등 책담회’에서 발제를 맡은 유내영 인권 활동가가 말문을 열었다. 4회차에 해당하는 이날 책담회에는 학부모, 인권활동가, 어린이책 전문가 등 다양한 시민 20여명이 참여해 ‘걸스토크’ 외에도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10대들을 위한 빨간 책’ ‘아들 인권선언’ ‘아빠 인권선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성교육·성평등 도서를 공공도서관에서 빼라는 일부 단체들의 ‘금서 지정’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우리가 금서를 한번 읽어보자”는 독자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학부모 단체들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 “조기성애화를 부추긴다” 라고 낙인을 찍은 책들을 독자가 직접 읽어보고 토론하면서 판단해보자는 취지다.

이날 책담회에 참여한 독자들은 한결같이 “책을 읽어보니 도서관에서 뺄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10대를 위한 빨간책’을 읽은 김예은씨는 “책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앞뒤 맥락을 무시하고 한 문장만 따서 비판하고 있다”며 “‘10대를 위한 빨간 책’의 경우 옛날에 만들어져서 성교육 관련 부분은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돼 ‘강추’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피해를 주는 책도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그런 방식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빼려면 빼야 할 책이 너무 많아질 것이라는 것.

오은선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아동 성교육 도서를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문제가 생긴다고 짚었다. 그는 “아동이나 청소년은 ‘성’에 대해 근원적으로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성기나 성관계를 사실적으로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며 “성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양육자나 교육자가 ‘성을 대하는 태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소모임 ‘모두를 위한 평등’에서는 지난 6~7월에는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가이드라인’(2018)를 함께 읽은 뒤 8월 모임부터는 성평등 도서들을 읽고 있다고도 전했다.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SNS)에서도 ‘금서’를 읽자는 제안들이 이어지고 있다. 독서교육을 위한 잡지 ‘학교도서관저널’에 매달 ‘평등이 평범해지기 위한 수업’이라는 주제로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는 작가 ‘예민한 도서관’은 최근 인스타그램(@yemin_library)에 ‘성평등도서를 지켜주세요’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들은 ‘나다움어린이책’의 세가지 핵심 가치는 ‘나와 남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자기긍정’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다양성’ ‘서로 배려하고 평등하게 연대하는 공존’임을 소개하고, 민원의 대상이 된 성평등도서를 오는 15일까지 대출·신청·구입한 인증샷을 해시태그 ‘#유해도서_아니고_필독도서’와 함께 업로드하면 추첨을 통해 선물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책담회 웹 홍보물 이미지. 충남차제연 제공.
책담회 웹 홍보물 이미지. 충남차제연 제공.

한 출판사의 청소년책 편집자는 페이스북에서 오는 13일 저녁 7시~7시30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광화문쪽 출구 앞 벤치에서 각자 ‘금서 목록’에 올라온 책들 가운데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자유롭게 읽는 ‘행동 독서회’를 제안했다. 이는 지난 ‘미투’ 운동이 벌어졌을 때 미투 관련 책을 독자들이 함께 읽고 서로 얘기 나눈 형식을 따온 것이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 등이 호응하면서 ‘행동독서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행동독서회’ 제안자 양선화씨는 “이번 시도가 교육 검열로 이어질 수 있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며 “행동독서회는 일종의 독서시위인데 실제로는 그냥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모여 자유롭게 책을 읽는 것만큼 집회 신고를 할 필요가 없고 다양한 연령대와 성격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어 제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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