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따라 마야로’에서 고대 문명 차박사로 관심 끄는 차승원. tvN 제공
이 남자, 또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삼시세끼’(tvN)에서 김치까지 담그며 ‘차줌마’가 되더니 이번에는 고대 문명을 덕질하는 ‘차박사’가 됐다. 지난 4일 시작해 매주 금요일 저녁 8시40분에 방송하는 예능 프로그램 ‘형따라 마야로’(tvN)에서다.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곧 저녁 준비로 살림살이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했던 차줌마 때도, 마야 문명의 탄생 과정을 술술 읊는 차박사 때도 비결은 같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니까 즐거워하고 관심 갖는 것이지 남들보다 잘하거나 많이 알지는 않아요.” 지난 12일 한겨레와 한 단독인터뷰에서 차줌마 아니 이젠 차박사, 차승원이 말했다.
차박사의 등장은 2015년 차줌마와의 첫 만남처럼 놀랍다. 차승원이 광해(MBC ‘화정’)를 연기할 때 우리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관계자들이 감탄한 적은 있지만, 그 관심이 고대 문명까지 닿아 있을 줄이야. 그는 “인류의 시작에 관심이 많다. 인류가 이동하고 문명을 만들고 터를 잡고 전쟁을 일으켜 패권을 다투는 등 그 과정을 보는 게 흥미롭고 알수록 놀랍다”고 했다. 특히 중남미에 퍼진 이슬람 문명과 마야 문명에 관심이 많다. “마야 문명이 척박한 밀림 속에서 꽃피웠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 것도 너무 미스터리하지 않아요?” ‘형따라 마야로’는 그렇게 시작됐다. 티브이엔 관계자는 한겨레에 “그와 사석에서 대화를 하다 보니 고대 문명을 잘 알고 좋아하더라. 시청자들한테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면서, 차승원의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덕후에게 가장 행복한 일은 직접 눈으로 목격하는 것. ‘형따라 마야로’에서는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정된 피라미드 치첸이트사를 시작으로 여러 유적지에 간다. 치첸이트사는 차승원이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했던 곳 중 하나다. 한 면의 계단 수가 91개로, 네 면에 꼭대기 제단을 더하면 365개 1년이다. 1년에 딱 두번 춘분과 추분 해가 질 때 뱀이 계단 아래로 내려오는 듯한 형상이 나타난다. 그는 “직접 보니 신념의 위대함이 더욱 느껴졌다. 바퀴나 가축도 없이 이런 정글 속에 거대 피라미드를 지었다는 건 어마어마한 신념 없이는 안 됐을 것 같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밀림 중앙에 터를 잡고 살았을 그들의 척박함 속에서 비롯한 간절한 마음도 느껴지더라. 인간은 위대한데, 신념은 더 위대하더라”고 말했다. 이번 촬영에서 여러 이유로 신대륙 발견 이전의 미주대륙에 세워진 거대 피라미드 건축물이 있는 테오티우아칸을 못 간 건 아쉽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인도의 하라파 유적과 모헨조다로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가 평소 가보고 싶었던 치첸이트사 피라미드에 올랐다. 더 보이즈 주연(왼쪽)과 예능 첫 출연 김성균이 ‘형따라 마야로’ 갔다. tvN 제공
차승원은 질문을 던지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련 역사를 술술 읊었다. 답변에 추가 질문을 해도 막힘이 없었다. ‘배우’인 ‘덕후’답게 직접 느낀 감정을 제대로 살려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줘 인터뷰 내내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형따라 마야로’에서도 이야기꾼 매력을 살려 차승원이 문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전해주는 ‘차박사의 고대 문명 강의’가 중간중간 나온다. “마야, 아즈텍, 잉카. 다 비슷하게 들리시죠? 잉카는 800년 전 페루와 칠레 쪽 남미에서 생겨난 문명입니다. 아즈텍은 800년 전 멕시코 중남부에서 생겨난 문명이죠….”
차줌마는 요리하면서 정리까지 동시에 하는 ‘신공’을 발휘해 많은 남자들의 원성을 샀다. 당시에 그는 “모든 남자가 다 요리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난 요리하는 게 좋고, 원래 깔끔한 성격이어서 이렇게 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차박사로서는 다르다. 그는 “많은 이들이 문명의 시작에 관심을 가졌으면” 바랐다. 역사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제가 좋아하는 고대 문명뿐 아니라 뿌리를 아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어요. 서구 문명의 위대함과 찬란함을 아는 것만큼 그것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왜곡된 시선을 보내지 않는 것도 중요하죠. 문명이 어떻게 발전했고 지금에 이르렀는지 알아야 미래로 가는 방향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고대 유적지를 본다는 설렘이 비타민 주사였다. 등산 등 아웃도어 활동과 여행을 즐기지 않는 그가 ‘형따라 마야로’에는 흔쾌히 출연했다. 기온 40도가 넘는 곳에서 치첸이트사 계단도 거뜬하게 올라갔다. 티브이엔 관계자는 “9박10일간 촬영 현장이 힘들었는데 지쳐 있다가도 유적지에 간다고 하면 바로 에너지가 솟더라”고 했다. 그도 “내가 그곳에서 그 많은 계단을 오른 건 놀라운 일”이라며 웃었다. 덕질은 사람도 바꾼다.
그는 쓸쓸한 가장(‘우리들의 블루스’), 서늘한 악역(‘낙원의 밤’) 등 배우로서도 더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각 영화사·방송사 제공
그는 고대 문명에 대한 관심을 “나의 소소한 취미이자 소일거리”라고 표현했다. 촬영장과 헬스장 외에는 주로 집에 있는 그는 인터넷 검색이나 영상 시청, 독서로 궁금증을 해소한다. 그는 “특별히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오늘은 이걸 알아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본다”고 했다. 차승원이 살림이든 고대 문명 덕질이든 좋아하는 것은 잘하게 되는 것은 즐기면서 하기 때문 아닐까. 티브이엔 쪽은 “첫번째 목적지인 산크리스토발데라스카사스까지(약 25시간) 가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도 잠을 거의 자지 않고 관련 영상을 보는데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더라”고 했다.
차승원은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다. “나는 척박한 환경에서 뭔가를 이뤄내는 사람 같아요. 척박한 환경에서 뭘 하다 보니 조금만 잘해도 빛이 더 나는 거죠. 그래서 실제 한 것에 비해 더 잘한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도 척박한 환경에 자주 놓였다. 예능에서 ‘척박한 환경’과 달리 배우로서는 외모였다. 그가 뭘 해도 외모에 가렸다. 외모가 부각될 때 ‘신라의 달밤’, ‘선생 김봉두’ 같은 코미디 영화를 하며 외모 편견을 깨왔다.
그가 티브이(TV)에서 로맨틱 드라마 남자 주인공을 맡은 건 40대가 되어서였다. 이제는 ‘독전’을 비롯해 ‘낙원의 밤’ 같은 영화에서 뼛속까지 악한 인물을 맡으며 또 한번 자신을 뛰어넘었다. 그가 ‘삼시세끼’ 차줌마로 이미지가 굳어질까 봐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이유도 그는 늘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왔기 때문이다.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그 모습 그대로 봐주시지 않을까요?” 이제 영화 ‘독전2’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차박사로 산다. 차박사는 “중국 역사와 중국어 관련 공부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