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스크걸’에서 김모미가 부르는 ‘리듬 속의 그 춤을’과 ‘토요일 밤에’는 그의 내면을 표현한다. 넷플릭스 제공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
가수 최헌(1948~2012)은 알았을까? 1978년 발표한 솔로곡 ‘앵두’가 2023년 젊은이들이 따라 부르고 전국에 울려 퍼지리란 것을. 이 곡의 가사처럼 옛 노래는 그저 “흘러가는 구름은 아니”었던 것이다. 옛 노래들이 드라마와 영화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대중문화에 오래전부터 불어온 레트로 바람이 추억 소환의 수단을 넘어 더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옛 노래가 뜨고 있다.
영화 ‘밀수’가 대표적이다. ‘밀수’는 1970년대 어촌을 배경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해녀들이 먹고살 길을 찾는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여기에 옛 노래가 극적 효과를 드높인다. 해녀들이 생활고에서 벗어나려고 밀수에 가담할 때는 ‘잘 살아보세’(가수 미상)가, 배가 출항할 때는 ‘연안부두’(1979, 김트리오)가 흐르는 식이다. 엔딩 자막과 함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1978, 박경희)가 나올 때는 예측 불가한 인물들의 미래에 마음 한곳이 짠해지기도 한다. ‘밀수’에는 이 외에도 ‘하루 아침’(1974, 한대수) ‘님아’(1968, 펄시스터즈) ‘무인도’(1974, 김추자) 등 옛 노래 10여곡이 나온다. 류승완 감독은 ‘밀수’ 흥행 요인 중 하나로 “듣는 재미”를 꼽았다. 그는 영화 개봉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권 상사(조인성)의 액션 신에서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1978)가 흐르면 관객들은 감정에서 뭔가가 올라오는 것 같다고 한다고 전했다.
영화 ‘밀수’는 최헌 ‘앵두’부터 박경희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까지 7080 노래 10여곡이 흐른다. 뉴 제공
넷플릭스(OTT) 드라마 ‘마스크걸’에서는 옛 음악이 인물의 내면을 대변한다. 김모미는 춤추는 게 좋아 연예인을 꿈꿨지만 외모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인터넷에서만 활동한다. 성형수술을 하고 나서 마스크를 벗지만 이 역시 또 다른 가면을 쓴 것과 다름없다. 어린 모미가 장기자랑 때부터 추는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1987)과 성인 모미가 인터넷 방송 때 틀고 몸을 흔드는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2009)는 주인공의 서사를 드러낸다. 김용훈 감독은 “‘리듬 속의 그 춤을’은 매혹적인 무아지경의 구간이 있고, ‘토요일 밤에’는 곡은 경쾌한데 가사가 슬프다. 음악으로 모미의 서사를 보여주려고 두달간 고심해서 선곡했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에는 잼의 ‘난 멈추지 않는다’(1992), 엄정화의 ‘배반의 장미’(1997) 등도 시대적 배경을 드러내며 삽입됐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영탁이 ‘아파트’를 부르는 모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옛 노래가 작품 전반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주인공 영탁(이병헌)이 부르는 ‘아파트’(1982, 윤수일)가 그렇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 생존자들이 몰려드는 황궁 아파트는 더없이 안전한 장소이지만, 또 다른 규칙이 생겨나며 계급을 드러내는 공포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tvN)은 옛 노래로 감각적인 느낌을 살린다. 시즌2에서 신입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배경음악은 ‘어쩌다 마주친 그대’(1982, 송골매)다. 초능력자들이 악귀로부터 엄마·아이를 구하는 장면에서는 ‘마법의 성’(1994, 더 클래식)이 흐르고 액션은 그림자로 표현된다. ‘경이로운 소문’의 한 제작 스태프는 한겨레에 “카운터(초능력자들)들의 정감있고 경쾌한 느낌과 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예쁜 곡과 그림자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시즌2는 옛 노래로 감각적인 느낌을 살렸다. 티브이엔 제공
‘7080콘서트’같은 음악프로그램에서 따로 취급할 정도로 비주류로 여겨져온 옛 노래가 이처럼 다시 뜨는 것은 우선은 과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아져서다. ‘밀수’ 외에 1970년대가 배경인 영화 ‘거미집’도 올 추석에 개봉한다. 이 작품에도 1970년대 사랑받은 밴드 ‘사랑과 평화’의 대표곡 ‘한동안 뜸했었지’ 등이 실린다. 또한 유튜브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엠제트(MZ)세대에게 과거 명곡이 더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도 제작자들로 하여금 더 손쉽게 옛 노래를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넷플릭스 등 오티티 활성화로 제작비용이 늘어나 기존 곡을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기존 곡에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보다 새 곡을 만드는 것이 더 저렴한 편이라고 한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한국 대중음악의 자산적인 측면에서 볼 때 1970~80년대는 명곡도 많고 막강하다. 문화상품의 핵심은 새로움과 반가움인데, 옛 노래는 둘 다 줄 수 있다”며 “케이(K) 콘텐츠 시대에 전 세계에 대한민국에 이런 음악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순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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