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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옛 노래, K-드라마·영화 서사를 살리다

등록 2023-08-30 08:00수정 2023-08-30 09:32

영화 ‘밀수’, 드라마 ‘마스크걸’ 등
70~00년대 명곡들 극적 효과 높여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김모미가 부르는 ‘리듬 속의 그 춤을’과 ‘토요일 밤에’는 그의 내면을 표현한다.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김모미가 부르는 ‘리듬 속의 그 춤을’과 ‘토요일 밤에’는 그의 내면을 표현한다. 넷플릭스 제공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

가수 최헌(1948~2012)은 알았을까? 1978년 발표한 솔로곡 ‘앵두’가 2023년 젊은이들이 따라 부르고 전국에 울려 퍼지리란 것을. 이 곡의 가사처럼 옛 노래는 그저 “흘러가는 구름은 아니”었던 것이다. 옛 노래들이 드라마와 영화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대중문화에 오래전부터 불어온 레트로 바람이 추억 소환의 수단을 넘어 더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옛 노래가 뜨고 있다.

영화 ‘밀수’가 대표적이다. ‘밀수’는 1970년대 어촌을 배경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해녀들이 먹고살 길을 찾는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여기에 옛 노래가 극적 효과를 드높인다. 해녀들이 생활고에서 벗어나려고 밀수에 가담할 때는 ‘잘 살아보세’(가수 미상)가, 배가 출항할 때는 ‘연안부두’(1979, 김트리오)가 흐르는 식이다. 엔딩 자막과 함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1978, 박경희)가 나올 때는 예측 불가한 인물들의 미래에 마음 한곳이 짠해지기도 한다. ‘밀수’에는 이 외에도 ‘하루 아침’(1974, 한대수) ‘님아’(1968, 펄시스터즈) ‘무인도’(1974, 김추자) 등 옛 노래 10여곡이 나온다. 류승완 감독은 ‘밀수’ 흥행 요인 중 하나로 “듣는 재미”를 꼽았다. 그는 영화 개봉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권 상사(조인성)의 액션 신에서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1978)가 흐르면 관객들은 감정에서 뭔가가 올라오는 것 같다고 한다고 전했다.

영화 ‘밀수’는 최헌 ‘앵두’부터 박경희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까지 7080 노래 10여곡이 흐른다. 뉴 제공
영화 ‘밀수’는 최헌 ‘앵두’부터 박경희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까지 7080 노래 10여곡이 흐른다. 뉴 제공

넷플릭스(OTT) 드라마 ‘마스크걸’에서는 옛 음악이 인물의 내면을 대변한다. 김모미는 춤추는 게 좋아 연예인을 꿈꿨지만 외모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인터넷에서만 활동한다. 성형수술을 하고 나서 마스크를 벗지만 이 역시 또 다른 가면을 쓴 것과 다름없다. 어린 모미가 장기자랑 때부터 추는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1987)과 성인 모미가 인터넷 방송 때 틀고 몸을 흔드는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2009)는 주인공의 서사를 드러낸다. 김용훈 감독은 “‘리듬 속의 그 춤을’은 매혹적인 무아지경의 구간이 있고, ‘토요일 밤에’는 곡은 경쾌한데 가사가 슬프다. 음악으로 모미의 서사를 보여주려고 두달간 고심해서 선곡했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에는 잼의 ‘난 멈추지 않는다’(1992), 엄정화의 ‘배반의 장미’(1997) 등도 시대적 배경을 드러내며 삽입됐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영탁이 ‘아파트’를 부르는 모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영탁이 ‘아파트’를 부르는 모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옛 노래가 작품 전반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주인공 영탁(이병헌)이 부르는 ‘아파트’(1982, 윤수일)가 그렇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 생존자들이 몰려드는 황궁 아파트는 더없이 안전한 장소이지만, 또 다른 규칙이 생겨나며 계급을 드러내는 공포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tvN)은 옛 노래로 감각적인 느낌을 살린다. 시즌2에서 신입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배경음악은 ‘어쩌다 마주친 그대’(1982, 송골매)다. 초능력자들이 악귀로부터 엄마·아이를 구하는 장면에서는 ‘마법의 성’(1994, 더 클래식)이 흐르고 액션은 그림자로 표현된다. ‘경이로운 소문’의 한 제작 스태프는 한겨레에 “카운터(초능력자들)들의 정감있고 경쾌한 느낌과 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예쁜 곡과 그림자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시즌2는 옛 노래로 감각적인 느낌을 살렸다. 티브이엔 제공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시즌2는 옛 노래로 감각적인 느낌을 살렸다. 티브이엔 제공

‘7080콘서트’같은 음악프로그램에서 따로 취급할 정도로 비주류로 여겨져온 옛 노래가 이처럼 다시 뜨는 것은 우선은 과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아져서다. ‘밀수’ 외에 1970년대가 배경인 영화 ‘거미집’도 올 추석에 개봉한다. 이 작품에도 1970년대 사랑받은 밴드 ‘사랑과 평화’의 대표곡 ‘한동안 뜸했었지’ 등이 실린다. 또한 유튜브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엠제트(MZ)세대에게 과거 명곡이 더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도 제작자들로 하여금 더 손쉽게 옛 노래를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넷플릭스 등 오티티 활성화로 제작비용이 늘어나 기존 곡을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기존 곡에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보다 새 곡을 만드는 것이 더 저렴한 편이라고 한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한국 대중음악의 자산적인 측면에서 볼 때 1970~80년대는 명곡도 많고 막강하다. 문화상품의 핵심은 새로움과 반가움인데, 옛 노래는 둘 다 줄 수 있다”며 “케이(K) 콘텐츠 시대에 전 세계에 대한민국에 이런 음악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순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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