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쩍 벌린 용이 꿈틀거리며 옛 종 위를 붕붕 떠다니는 듯한 환영을 본 적이 있는가. 고려시대 만든 사찰의 종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명작으로 손꼽히는 전북 부안 내소사의 동종에서 이런 시각적 경험을 했다는 이들이 적지않다. 이 예사롭지 않은 명품이 국보 반열에 올랐다.
문화재청은 31일 내소사 동종을 국보로 지정예고한다고 밝혔다. 내소사 종은 고려 후기의 장인 한중서(韓冲敍)가 무게 700근의 동을 써서 고려 고종 9년인 1222년 만들었다. 이런 제작 연기가 확실하게 표면에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몸체 전면의 장식적 양상도 고려시대의 여러 종들 가운데 우뚝한 미감을 보여준다. 용의 몸체가 마치 공중을 떠다니는 것처럼 역동적으로 연출된 상부의 용모양 고리(용뉴)를 비롯해 종의 어깨 부분을 올림 연꽃 문양으로 돋을 새김해 장식한 부분이 우선 돋보인다. 몸체에 통일신라 동종의 특징인 천인상(天人像) 문양 대신 삼존상 문양을 넣었고, 종을 칠 때 표면에 닿는 자리인 4곳의 당좌(撞座)를 메운 섬세한 꽃잎무늬, 비례감과 우아한 곡률을 가진 몸체 등에서 고려 후기 동종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작자인 한중서는 13세기 전반부터 중엽까지 활동했다. 민간 기술자인 사장(私匠)에서 시작해 실력을 인정받아 관청 소속의 관장(官匠)이 되었다. 38년간 고령사 청동북(1213년), 복천사 청동북(1238년), 신룡사명 소종(1238년), 옥천사 청동북(1252년) 등을 남긴 것으로 확인되는데, 내소사 동종은 조선시대 이전 여러 점의 다양한 작품을 남긴 것으로 드러난 유일한 실명 장인의 대표작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은 “이 동종은 양식, 의장, 주조 등에서 한국범종사와 제작 기술과 기법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주종기와 이안기 등을 통해 봉안처, 발원자, 제작 장인 등 모든 내력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도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고신라 금속공예의 수작인 경주 서봉총과 금령총의 금제 허리띠 출토품들, 12세기께의 고려 청자 음각앵무문 정병, 15세기에 나온 조선 개국공신 복재 정총(1358~1397)의 유고 시문집, 17세기에 조성한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은 보물로 지정예고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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