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김대중 전 대통령 다큐멘터리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민환기 감독은 흔쾌히 수락할 수 없었다. 87학번인 그는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후보 단일화 실패에 상처 입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잘 알고 있다고 믿는 한국 현대사의 ‘거인’을 그린다는 건 모험을 넘어서는 부담이었다.
“당시 김대중 후보의 비판적 지지를 설득하는 선배들의 주장에 납득 안 됐고 그 질문이 지금까지 이어졌던 것 같아요.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해해보고자, 더 솔직히는 이 작품을 하지 않을 이유를 명확히 하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영화가 시작됐습니다.”
내년 1월 김대중 탄생 100주년 즈음에 개봉 예정인 ‘길위에 김대중’의 후반 작업을 진행 중인 민환기 감독과 제작자 최낙용 시네마6411 대표를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노회찬 6411’(2021)에서 명필름과 함께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이 영화 전에 남북관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2018년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단일팀 성사와 남북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다큐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진행이 막혔어요. 박지원, 임동원, 정세현 등 김대중 대통령 시절 남북 관계 주무를 맡았던 분들과 인터뷰도 끝내놓은 상태였는데 난감해졌죠. 그런 참에 김대중추모사업회의 제안으로 이 작품을 시작하면서 진행했던 인터뷰들도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됐습니다.” 운명처럼 연결된 우연한 출발에 대해 최낙용 대표가 말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제작팀은 1700시간 분량의 영상자료를 하루 12시간씩 5개월 동안 검토했다. 제작진은 투사나 정치적 거물로서 김대중이 내놓은 결과가 아닌 “한 사람이 정치인에서 투사로, 사상가에서 다시 정치인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 초점을 뒀다. 민 감독은 “홀로 완성된 개인이 아니라 한국 역사와 상호작용하면서 어떤 사람으로 발전해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측근과 지지자들의 주관적인 평가는 거둬내려고 했습니다. 객관적인 관찰 기록을 중심으로 심경이 필요할 때는 김대중의 육성을 직접 넣었죠.”
민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던 구술 자료도 우리가 몰랐던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였다. “지난해 돌아가신 이근팔이라는 분이 계세요. 외교 공무원 출신으로 미국에서 사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 망명 온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고 설득됐죠. 대가 없이 김대중 대통령을 평생 도왔지만 끝까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어요. 나중에 비례대표를 제안받으며 한국에서 정치를 해보겠냐는 제의도 마다하셨죠. 신기한 게 김 대통령 주변에 이런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이런 분들 때문에 영화를 만들며 그래도 세상이 나아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의 방향성에서 두 사람과 공동 제작자 이은 명필름 대표간의 이견은 없었지만 2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현대사의 어떤 장면들을 넣을지는 다른 의견도 있었다. 최 대표는 “70년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때 저항적인 청년 문화를 보여주는 영상들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았다”고 했다. “한대수와 김민기의 노래도 아름다웠고요. 또 디제이와 5·18을 연결하는 접근법이 신선해서 좀 더 길게 들어갔으면 했는데 러닝타임 때문에 저항문화 부분은 빠지고 5·18 부분도 좀 줄였죠.”
유년시절과 목포상고 시절부터 시작하는 ‘길위에 김대중’은 1987년 6·29선언으로 자유를 얻은 김 대통령이 9월 광주로 향하는 여정으로 마무리된다. 1971년 이후 16년 만의 광주행은 엄청나게 환영받았다. “기차가 대전을 지날 무렵부터 역마다 사람들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면서 우리를 환호했어요. 광주에 도착하니 광주역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어요. 숨이 막힐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대합실 지붕까지 점령했지요.”(고 이희호 여사의 회고, ‘이희호 평전’) 여기서 민 감독은 김대중의 울음을 봤다. “환호를 받다가 갑자기 눈물을 쏟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김대중은 이 환호가 슬픔이라고 느꼈구나, 자신이 겪어온 고통을 광주 사람들이 5·18 때 겪었던 고통과 동일시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인으로 개인적 동기와 정치적 명분이 어긋나는 딜레마의 순간이 온 건데 그 딜레마가 김대중을 성장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민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며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마지막 장면에 내놓은 셈이다.
김대중은 수만명의 시민들이 운집한 망월동에서 유가족·부상자들을 껴안은 채 통곡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87년으로 끝나는 ‘길위에 김대중’은 제작진이 구상하는 김대중 다큐멘터리의 1편에 속한다. 세 번의 낙선 끝에 1997년 15대 대통령이 된 뒤 통치자 대통령을 그린 2편도 내년 말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권력을 가진 통치자였던 만큼 그가 펼친 빛과 그림자를 객관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다큐멘터리스트로 여러 작품을 발표해온 민 감독은 김대중 대통령이 재임 시에 펼쳤던 영화정책도 흥미롭게 봤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김 대통령의 문화정책 덕에 한국영화가 꽃을 피웠죠. 그렇게 성장한 한국영화들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빈부격차 같은 부분들이 김대중 대통령 재임기간인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때부터 본격화됐다는 게 아이러니죠. 이 문제를 다룬 ‘기생충’은 세계적인 상을 휩쓸었고요. 2편에서는 이런 빛과 그림자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다뤄볼 생각입니다.”
이들이 집요하게 관찰하고 뜯어봤던 ‘김대중’은 어떤 사람일까.
“정치인. 정치를 통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권력을 잡았을 때 뭘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한 사람, 그 고민에서 한 순간도 벗어난 적 없었던 사람같아요. 그래서 미국 망명 때도 진보 인사들보다 보수 인사들을 더 열심히 만나고 다녀서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당시 디제이에게 화가 났었다고 해요. 그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정치 활동을 쉬지 않았던 분이죠. 그 끝의 목표에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남북화해가 있었고요.”(민환기)
“어떤 순간에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이었어요. 유혹도 있었을 거고 위협도 있었는데 사람다움을 평생 지켜낸 사람이에요. 그런 면에서 종교적인 사람이기도 했어요. 그에게 윤리의식은 신념과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독교인의 십계명 같은 거였다고 생각합니다.”(최낙용)
최 대표는 관객들이
텀블벅 펀딩(tumblbug.com/dj_road) 등으로 직접 참여하는 ‘김대중 대통령 탄생 백주년 기념영화 상영위원회’의 국외 진행을 맡아 국내·외 동시 상영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일본·중국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브라질 등 현재 상영이 확정된 21개 도시 외에도 상영을 요청하는 도시들이 늘고 있다. 최 대표는 “영어와 일본어 자막만 준비되고 있는데 독일에서는 직접 자막을 만들어 상영하겠다고 요청하는 등 상영운동에 동참하려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