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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내가 이 도시에 산다면? 30대 청년의 ‘로컬 담론’

등록 2023-11-07 11:00수정 2023-11-07 11:15

‘로컬씨, 어디에 사세요’ 서진영 작가
6개월간 춘천 곳곳 돌아다니며
‘내가 산다면’ 질문으로 춘천 살펴
로컬 정책 공과 있는 그대로 다뤄
‘로컬씨, 어디에 사세요?’를 쓴 작가 서진영씨(왼쪽)와 책을 구상하고 기획한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오른쪽 앞)와 이나래 문화도시 콘텐츠피디가 서울 망원동 카페창비에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양선아 기자
‘로컬씨, 어디에 사세요?’를 쓴 작가 서진영씨(왼쪽)와 책을 구상하고 기획한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오른쪽 앞)와 이나래 문화도시 콘텐츠피디가 서울 망원동 카페창비에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양선아 기자

로컬 푸드, 로컬 마켓, 로컬 크리에이터, 로컬 비즈니스…. ‘로컬’이라는 단어의 전성시대다. 지방이 소멸될 위기에 처하자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강박적으로 ‘로컬’을 띄우고 있다. 전국의 지자체들은 청년들에게 각종 지원을 약속하며 “한번 살아보라”고 호소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역 경제를 부흥시켜야 하는 로컬’ ‘인구를 유입시켜야 하는 로컬’과 같은 구호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서의 로컬’ ‘나의 색깔과 맞는 로컬’처럼 지역 담론의 새길을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있어 눈에 띈다. 바로 준공공기관인 춘천문화재단과 강원도 지역 출판사인 온다프레스 그리고 30대 청년 1인 가구인 서진영 작가가 협업해 만든 ‘로컬씨, 어디에 사세요?’라는 단행본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창비 지하2층 50주년홀에서 진행된 출간기념 북토크 행사 전, 이 기획을 함께 진행한 서 작가와 춘천문화재단의 이나래 문화도시 콘텐츠피디, 박대우 온다프레스 대표를 만나 책의 기획 배경부터 이 시대 ‘지역담론’에 대한 생각, 최근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정한 ‘김포 서울시 편입’ 정책에 대한 생각까지 다양하게 들어봤다.

‘로컬씨, 어디에 사세요?’를 쓴 서진영 작가가 지난달 31일 서울 창비 지하2층 50주년홀에서 진행된 출간기념 북토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양선아 기자
‘로컬씨, 어디에 사세요?’를 쓴 서진영 작가가 지난달 31일 서울 창비 지하2층 50주년홀에서 진행된 출간기념 북토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양선아 기자

―서울에 거주지를 둔 여성이 ‘춘천이라는 도시는 내가 살만한가?’라는 질문을 품고 6개월간 탐방해본다는 콘셉트가 재밌었다. 이런 책을 기획하게 된 배경은?

이나래(이하 이) 2001년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된 춘천에서 춘천문화재단은 도시문화사업을 하고 있다. 사업 3년차에 접어든 만큼 춘천의 도시문화를 브랜딩하는 책을 내자는 의견이 나왔다. 처음엔 춘천에 축제가 많으니 축제 관련 책을 내려했다. 지역 관련 책을 꾸준히 출판해온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를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박 대표는 축제를 넘어 도시의 얘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박대우(이하 박) 고성에서 출판사를 운영한지 5년차다. 그동안 3~4종의 지역 관련 책을 내오면서 지역 담론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 로컬정책 관계자들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너무 강하다. 그러다보니 청년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느낌도 준다. 이번에 책을 만든다면 청년사업의 공을 다루되 과까지 모두 다루면서 춘천의 사람들과 삶의 현장에 들어가 지역 고유의 색깔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고유한 지역 문화에 관심 있는 작가에 연락했다.

서진영(이하 서) 박 대표가 “6개월 동안 춘천에 살다시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내가 했던 작업의 연장선상이라 동참했다. 그동안 나는 근대문화 유산을 따라가는 여정을 담은 책 ‘하루 백 년을 걷다’와 전국의 시장을 여행지로 한 ‘한국의 시장’ 등 ‘로컬’ 관련 책들을 써왔다. 도시문화라고 하면 그 도시의 유명한 문화인을 소개하거나 유명한 관광지나 맛집을 소개하는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문화를 삶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 문화는 도시를 걸으면서 만나는 거리의 모습,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춘천문화재단이 지역 문화인 목록을 주었지만 배제하고, 직접 춘천 곳곳을 걸어다니며 보고 듣고 느끼고 사람들을 인터뷰해 책을 썼다.

―6개월 동안 돌아다녀보니 춘천이란 도시 어땠나? 어떤 곳이 가장 인상깊었나?

춘천은 도농복합 도시다. 도시가 엄청 작고 농촌이나 어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많다. 상수도 개발도 제한돼 있고, 공장이 쉽게 들어서지 못한다. 산업적 한계가 있어 시민들은 ‘춘천이 발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시민들 사이에 ‘살기 좋은 도시’라는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춘천은 또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연대의식이 깔려 있는 도시로 보였다. 책에서 소개한 ‘맡겨놓은 카페’나 ‘담작은도서관’ 같은 곳이 그 근거다. ‘맡겨놓은 카페’란 14~19살 청소년이면 누구든 무료로 카페를 이용할 수 있는 카페다. 기부자들이 응원 메시지와 함께 미리 계산된 금액이나 음료명을 기재해 카페 게시판에 붙여놓으면 청소년들이 이용하고 쿠폰 뒷면에 답장을 쓴다. ‘맡겨놓은 카페’ 에 방문했을 때 울컥했다.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응원과 지지를 받아본 경험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청포도에이드 두 잔 맡겨놓고 왔다. 얼마 뒤 카페 주인분이 “작가님이 맡겨놓은 맘을 춘고 아이들이 찾아갔어요”라며 아이들이 브이 하고 찍은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줬다. 그날 그 동네를 처음 갔었는데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춘천 사람들이 티내지 않는데 잔잔하게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다독다독해주는 그런 것들이 있다. 도서관 사서가 이용자들의 얼굴을 대부분 알고, 도서관을 중심으로 마을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담작은도서관도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는 이 집에 산다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두렵고 위험하게 느껴진다면, 춘천에서는 내가 이 집에 산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보면 각 지자체가 펼치는 ‘로컬’ 관련 정책에 비판적이다. 특히 빈 점포를 일정기간 빌려주는 청년몰 사업에 대해 비판적으로 썼다.

지역 활성화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핫하다는 로컬을 가보면 ‘복붙’(복사해서 붙이기)이다. 여기 가도 땡리단길. 저기 가도 땡리단길이다. ‘어디서 로컬을 찾아야지?’ 하는 문제의식이 생기더라. 청년몰사업은 청년들에게 빈 점포를 임대해주고 창업교육을 한다. 그런데 그 성과를 청년몰이 얼마나 활성화됐는지로 평가한다. 상권을 활성화하려면 ‘장사의 신’인 백종원을 데리고 와야하는 것 아닌가. 카이스트에는 실패연구소도 있다고 하던데, 청년들이 실패했을 때의 계획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청년들을 대상화시켜서 어떤 청년이 와서 실패하면 그 다음 청년, 또 다음 청년 그렇게 청년들이 소모품처럼 쓰여지고 있다.

―춘천시에서 조성한 육림고개 청년몰 사업이 실패했다거나 춘천의 시내버스는 꽤 자주 사람 속을 ‘욱’하게 만든다 등 작가의 솔직한 평가가 있다. 이 작업을 의뢰한 입장에서는 그런 내용을 뺴고 싶지 않았나?

이 작가의 작업에 개입하지 않았다. 춘천도시문화재단이 유연한 조직이라서 그런지 있는 그대로의 춘천을 담은 이런 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 작가는 결론적으로 춘천을 새로운 나의 근거지로 삼고 싶나?

다들 묻는다. (웃음) 이 작업을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내가 어느 지역에 살 때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있겠다, 이것만큼은 절대 포기 못하겠다 기준점이 명확해졌다. 여러 요소들 사이에 우선순위가 생겼다. 그래서 더 많은 지역에 관심이 간다. 앞으로 더 살펴볼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한 곳에 거점을 둘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10년마다 거주지를 옮길 수도 있지 않나. 실제 어디로 이주하지 않더라도 독자분들도 상상하고 실험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떤 삶의 형태로 살아가고 싶은지 말이다.

―국민의힘이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밝혔다. ‘지역 문화’에 관심 많은 청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정치인들은 지역이 소멸된다고 요란을 떨면서 되레 자신들이 나서서 지역을 소멸시키고 있다. 차라리 대한민국을 모두 범서울로 만들어버리면 되지 않나. (웃음) 사는 곳을 경제적 가치로만 보고 그것을 서열화해서 1등 도시부터 꼴등 도시까지 줄을 세우니까 그런 이야기가 쉽게 나오지 않나 싶다. 김포 시민들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 지도 의문이고, 만약에 서울에 편입되는 것이 좋다는 것이 김포 시민 다수의 의견이라도 그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도로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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