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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장애 딛고 첫 시집 낸 이경학씨

등록 2006-03-28 18:31수정 2006-03-28 18:33

“글쓰기는 육신 고통 잊게 하는 진통제”
“존재이고 싶다. 살고 있는 숨소리 살아낸 흔적이고 싶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나는 나다.”

신체의 4분의 3을 쓸 수 없는 장애인이지만 누구보다 맑고 밝은 이경학(47)씨 첫 시집 〈허공에 내가 묻어 있다〉에 실린 ‘자화상’ 일부다.

이씨는 계간 〈문학마을〉로 등단했으며, 문학마을의 ‘우리시대의 시인 100인’에 뽑혀 시집을 냈다. 그는 화가다. 홍익대 미대를 나온 그는 1982년부터 독일 슈투트가르트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이씨는 병을 얻기 전까지 ‘만능 스포츠맨’으로 불릴 정도로 호탕한 성격답게 조금은 거칠고 큰 그림을 그렸다. 그림 공부가 한창이던 85년 원인 모를 뇌혈관 질환으로 왼쪽 몸이 마비됐다.

87년 6월 성치 않은 몸으로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지만 이번에는 아랫몸이 굳기 시작했다. 1년여 투병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오른손과 ‘말하고 생각하는 기능’만 남기고 모두 멈췄다.

그림을 너무 좋아했던 그는 그리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그림중독’을 앓고 있었다. 그는 오른손과 머리를 통해 글씨를 그려내는 글쓰기로 승화시켰다. 그림으로 표현해 왔던 예술혼을 시, 소설, 산문 등 글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독일서 미술공부 중 뇌질환 앓아 온몸 마비
작가로 변신…쓴 원고 키높이 만큼 쌓여

방에 자화상 10여점을 걸어둘 정도로 자신과 그림을 사랑했던 그는 자아의 발견과 사랑, 예술 등을 작품의 뿌리로 삼고 있다.

그는 “글쓰기는 내게 스물네 시간 온몸을 옥죄는 육신의 고통을 잊게 하는 진통제였다”며 “글쓰기는 열정, 꿈을 잃고 안락사마저 소망했던 고통을 잊게 했다”고 말했다. 방 한켠에는 20년 가까이 써온 원고지가 그의 키 높이만큼 자리잡고 있다. 시뿐 아니라 80년대 학생운동, 몸이 불편한 화가 자신을 소재로 한 중편·장편소설도 원고로 남아 있다. 칠순 노부모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지만, 그는 방안에만 있는 환자가 아니다.


‘아이엠에프 한파’로 모두가 힘겹던 98년 대전고 졸업 20돌 기념식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친구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시를 낭독해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에 친구들은 그에게 컴퓨터를 선물했고, 이제 그는 인터넷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오른손만 쓰지만 두 손가락으로 똑딱이는 ‘독수리 타법’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KBS 청주방송 라디오 ‘추억의 골든 팝스’를 즐겨 듣는 그는 프로그램 홈페이지에서 ‘이장’으로 통한다.

사연과 소식뿐 아니라 틈틈이 써온 소설까지 연재하고 있는 그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애청자들과 수시로 만나면서 삶의 활력과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25일 청주제일감리교회에서 연 출판기념회엔 서울, 강원, 부산 등에서 250여명이 와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그는 시를 쓰면서도 그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엽서를 그려 친구와 지인들에게 보내고 있다. 해마다 30~40통씩 보낸 엽서가 400장이 훨씬 넘는다. 엽서를 받은 친구들은 2~3년 안에 그의 엽서를 모아 특별전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누구에게 읽히려고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시의 형태를 빌려 쓴 글토막이 제법 모여 시집이 된 것”이라며 “단 한 수라도 진정한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청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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