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의 창업을 통한 ‘진짜 나’ 찾기 여정을 담은 ‘도쿄 윤카페’의 저자 윤영희씨가 활짝 웃고 있다. 윤영희씨 제공
‘한 달마다 내 통장에 따박따박 직장인 월급만큼 돈이 꽂히면 얼마나 좋을까…. 경력도 없고 나이 든 내가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아이도 돌보고 집안일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경제적 보상이 없는 전업주부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부산에서 30년을 살다 여행 중에 일본인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을 하고 도쿄로 이주한 윤영희(52)씨도 그랬다. 두 아이를 낳고 20여년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 육아’(서해문집)라는 육아책을 낸 바 있는 그는 한달에 300만원만 준다 해도 무슨 일이든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었다. 번역·한국어 수업·백화점 레스토랑 점원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하던 그가 2020년 봄, 일을 저질렀다. 나를 고용해줄 회사를 찾지 말고 내가 만들고 싶은 가게를 직접 차려보자고 마음먹었고, 도쿄에 한국식 가정요릿집 ‘도쿄 윤카페’를 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직전 가게를 시작해 엄혹한 시기를 거쳤다. 그러나 가게를 연 지 3년 반이 된 지금 그는 월 300~500만원 순익을 내고, 성수기엔 월 1천만원까지도 버는 식당 사장이 됐다. 최근 그는 소자본 창업을 통해 중년 여성이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도쿄 윤카페’(책구름)라는 책을 내고 온라인 ‘줌’을 통해 한국 독자 44명을 만났다. 지난 8일 출판사 책구름이 ‘여성, 진화’라는 주제로 연 ‘줌 북토크’의 강연자로 나선 윤 사장을 만나 ‘중년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도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경제적 자립을 꿈꾸는 전업주부들에게 “결혼 이후 경력단절과 함께 육아와 살림을 해야 했지만, 그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매일 하는 일은 어떻게든 자산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윤카페’를 열게 된 것도 아이를 키우면서 했던 ‘부엌 육아’ 덕분이었다. 가게 메뉴 대부분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주 만들었던 음식들이다. 20여년 동안 그는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담백한 가정요리를 반복해서 만들었고, 그 요리를 더 많은 사람에게 맛보게 하고 싶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한류 바람이 불면서 김밥이나 비빔밥과 같은 한국 요리를 찾는 일본인들이 많아졌다. 한국 요리 붐에도 불구하고 외식할 때 마음에 쏙 드는 식당을 찾기 어려웠다. 그는 저렴한 대중식당의 한국 요리 이미지를 깔끔하고 카페 분위기에서 먹는 요리로 콘셉트를 바꿔 가게를 열어보기로 했다.
‘도쿄 윤카페’에서 윤영희씨가 요리하고 있는 모습. 윤영희씨 제공.
저렴한 대중식당 이미지가 아닌 카페 분위기의 한국 가정요릿집 ‘도쿄 윤카페’의 내부 모습. 윤영희씨 제공.
쉰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창업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가게가 무슨 소꿉장난이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윤 사장은 “주변에서 의미 없이 한마디씩 덧붙이는 말을 듣지 마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40~50대에 창업하는 것은 장점이 많다고 귀띔했다. 그는 “40~50대는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난 풍부한 경험 덕분에 어떤 성향의 사람을 만나도 여유 있게 대할 수 있고, 연륜이 있어 모든 부분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일이 완성되어가도록 하는 요령도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다 커서 자신의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어 돈을 벌어야 할 필요성과 의욕도 왕성하다. 이 장점을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30~40대 운동 등 체력관리는 필수라고 덧붙였다.
그는 “아침에 출근할 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요리할 때, 반짝이는 조리대를 닦을 때 ‘진짜 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나 스스로가 나에게 만들어준 나의 평생 직장 때문에 너무 행복하다”며 웃었다. 윤 사장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며 참가자들은 “자기 소신대로 살아가도 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윤씨는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십시일반 모아온 돈 5천만원으로 빚을 지지 않고 ‘미니멀리즘’으로 창업했다. 돈을 모으기 위해 두 아이에게 불필요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고 검소하게 살았다. 그는 결혼한 사람은 이미 창업을 경험한 셈이라고 말한다. 부부가 둘이 가진 자금으로 함께할 공간을 마련하고, 필요한 물품을 사고, 생활비와 교육비를 감당하고 집을 키워가고 차곡차곡 저축까지 하며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창업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살림하며 효율적인 소비와 지출을 통한 돈 관리법을 익힌 것 또한 카페 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단다. 일상의 모든 일은 의미가 있으며, 그것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간절히 바라는 바를 용기를 내 성취한 그는 “삶은 형용사보다 동사다”라며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업주부인 제가 창업해서 경제적 자립을 해보니, 내가 스스로 번 돈은 내 안에 잠재된, 나도 모르는 에너지와 재능을 발휘하게 해주는 촉진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주부들에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뭐라도 행동으로 옮겨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행동했을 때만 비로소 보이는 게 있거든요. 앞으로도 윤카페는 전업주부를 우대할 것이고, 여성들의 자립에 보탬이 되는 가게로 키워나갈 것입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