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백제 여인상을 표면에 돋을새김한 토기조각 탁본. 2년 전 부여 남령공원 유적에서 출토된 사실이 최근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동그란 구를 묶은 끈을 오른손에 들고 휘젓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이 무희상을 문양판에 새겨 토기 표면에 대고 두들기면서 돋을새김으로 이미지를 올렸다. 백제문화재연구원 제공
1500년 전 백제 여인은 어떤 춤을 추고 있었을까.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공 같은 물건 묶은 끈을 손에 쥐고 빙빙 돌리면서 춤추는 여인의 모습이 새겨진 백제시대 토기조각이 나왔다. 출토지는 백제 마지막 도읍 사비성의 자취가 남아있는 충남 부여읍 도심의 남령공원터. 춤추는 백제인 그림 문양이 사상 처음 확인됐고, 출토 유적이 사비성 핵심 사찰이던 정림사터와 백제 왕궁 자리로 손꼽히는 관북리 유적 사이에 자리해 문양의 실체를 놓고 관심이 쏠린다.
백제문화재연구원(원장 서오선)은 지난 2021년 9~12월 충남 부여군 동남리 446-1번지 남령공원 유적을 발굴 조사한 뒤 올해 11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백제인의 춤 장면이 새김된 작은 토기조각 출토품 1점을 공개했다. 춤추는 사람 문양이란 뜻의 무인문(舞人文)을 제목으로 붙인 이 토기조각은 공원 터에 흩어진 고려 조선시대의 가마터와 집터를 조사하던 중 지표면에서 백제 사람 얼굴이 들어간 인면문 토기조각과 함께 발견됐다.
백제 무희상을 표현한 토기조각 실물. 춤추는 무희상을 새긴 문양판을 토기 표면에 대고 두들겨 돋을새김으로 무희상 이미지를 올렸다. 백제문화재연구원 제공
토기조각은 사변형 모양으로 생긴 회청색빛의 경질토기로 남은 너비는 7.5㎝, 남은 길이는 6.7㎝에 불과하다. 몸체에 가늘고 긴 치마를 두른 여성인 듯한 인물 한 명이 환히 웃는 표정으로 오른손은 치켜들고 왼손은 아래로 내린 채 춤추는 동작을 취한 것이 특징적이다. 계란형의 얼굴에 양 볼에 연지를 찍고 머리 부분에는 관대 혹은 족두리 형상의 장식을 쓴 것을 알 수 있다. 얼굴은 전통 탈처럼 해학적인 모습인데, 오른 손은 동그란 구를 맨 끈을 잡은 것이 특이하다.
이 인물상 왼편에 역시 구를 맨 끈을 잡은 다른 인물의 오른손 부위가 남아있어, 구를 맨 끈을 잡은 손을 상하로 움직여 휘휘 저으면서 춤추는 인물상이 연속적인 무늬로 들어갔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부여에서 발견된 백제 무희상처럼 끈으로 묶은 구를 휘두르는 말 탄 남자 도상을 담은 고구려벽화의 일부분.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에 있는 덕흥리 고구려 고분의 앞방 남쪽벽 동쪽에 그려졌다. 전호태 교수 제공
보고서에서는 춤꾼이 든 끈으로 맨 공 모양 물건은 연주용 목탁 혹은 나무구슬일 가능성이 있고 고대 백제의 무용극에서 창안한 토기 장인의 작품세계를 반영한 독특한 문양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보고서 내용을 집필한 오종길 연구위원은 “작지만 백제여인의 춤과 율동을 보여주는 시각자료가 역대 처음 나왔다는 점에서 생활사적으로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고 평가했다.
백제인의 가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중국 사서 ‘삼국지위지동이전’에는 백제의 전신인 삼한의 습속으로 5월의 하종과 10월의 추수가 끝났을 때 (중략) 귀신에 제사 지내고 밤새도록 가락에 맞춰 손발을 맞추며 몸을 높였다 낮췄다 하는 가무를 술과 함께 즐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일부 국내 연구자들은 이를 근거로 당시의 춤이 오늘날 농악 또는 두레굿의 원초적인 형태였으리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견된 춤추는 백제 여인상의 문양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평남 남포에 있는 덕흥리 고구려무덤 벽화에 춤추는 백제인 문양과 유사하게 구 모양의 물건을 빙빙 돌리는 남자 도상이 말 탄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고구려벽화 전문가인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고대음악은 제의의 일부였기에 특정 제의에 맞춰 목탁 모양의 타악기를 연주하면서 춤을 추는 주요 행위장면이 전형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덕흥리 고구려 벽화의 도상과 비교하며 연구할 만하다”고 짚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도판 백제문화재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