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공연 장면. 엠피앤컴퍼니 제공
111년 전 소설이 무대 위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원작에 더한 기발한 상상력은 관객들 웃음보를 무장해제시키고, 더없이 훈훈한 결말은 가슴을 따스하게 덥혀준다. 지금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엠피앤컴퍼니와 한겨레신문사 공동 주최로 공연 중인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내년 2월25일까지) 얘기다.
원작 소설 ‘키다리 아저씨’는 진 웹스터가 1912년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도 전세계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고전 스테디셀러다. 고아원에서 자란 소녀 제루샤가 후원자 키다리 아저씨에게 쓴 편지 형식으로 구성됐다. ‘키다리 아저씨’는 연극, 영화 등 다른 형태의 작품으로도 끊임없이 재창조됐다. 1990년대 한국에서 방송된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향수를 가진 이들도 많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공연 장면. 엠피앤컴퍼니 제공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2009년 미국에서 초연한 작품을 바탕으로 한다. 뮤지컬 ‘레미제라블’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토니상 최우수 연출상을 받은 바 있는 존 캐어드가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캐어드는 원작의 편지 형식을 그대로 살리면서 제루샤와 키다리 아저씨만 출연하는 2인극으로 구성했다. 2명만으로도 꽉 찬 무대와 풍성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제루샤는 고아원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맏언니다. 어느날 베일에 싸인 인물이 후원자를 자청하며 대학에 보내주겠다고 한다. 조건은 자신에게 대학 생활과 일상을 담은 편지를 주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 그는 제루샤의 글솜씨에 반해 작가로 키우고자 후원에 나섰다. 우연히 후원자의 길쭉한 뒷모습을 본 제루샤는 키다리 아저씨라 부르기로 한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공연 장면. 엠피앤컴퍼니 제공
이후부터는 제루샤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쓴 편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대는 두 공간으로 분리되는데, 제루샤는 앞쪽 공간을 누비며 자신의 얘기를 담은 편지를 읽는다. 뒤쪽 공간은 키다리 아저씨의 서재. 그는 서재에서 제루샤의 편지를 읽으며 웃음 짓는다. 발신자와 수신자는 같은 편지를 번갈아 읽고, 노래도 함께 화음을 넣어가며 부른다. 공간은 달라도 편지로 마음이 이어진다.
제루샤의 룸메이트 줄리아에겐 제르비스 펜들턴이라는 젊은 삼촌이 있다. 제르비스는 학교에 찾아와 제루샤와 가까워진다. 제루샤는 제르비스에게 관심을 갖고, 이를 키다리 아저씨에게도 알린다. 편지를 받은 키다리 아저씨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제르비스의 비밀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제루샤가 제르비스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나려 하면 질투하기도 하는데, 나름 귀여운 웃음 포인트로 작용한다. 마지막에 둘이 한 공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노래하는 장면은 추운 겨울을 잊을 만큼 따뜻하다.
아기자기한 소품 활용을 보는 재미도 있다. 제루샤의 공간 여기저기 늘어놓은 슈트케이스는 의자도 됐다가 책상도 됐다가 침대도 된다. 건반·기타·첼로 연주와 함께 흐르는 노래는 대번에 귀에 꽂힌다. 음악을 만든 폴 고든은 이 작품으로 오베이션 어워드 최우수 작곡·작사상을 받았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포스터. 엠피앤컴퍼니 제공
국내에선 2016년 초연 이후 다섯번째 시즌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4년 만에 돌아왔다. 2016~2019년 연출을 맡았던 박소영은 이번에 예술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 전서연 연출이 새로 합류했다. 제루샤는 유주혜·김려원·장민제가, 제르비스는 김종구·김경수·테이가 연기한다. 2019년 출연했던 유주혜를 뺀 나머지는 모두 새 얼굴이다.
연말 시즌을 맞아 연인·친구·가족과 보기에 좋다. 23~31일 공연에선 커튼콜 때 눈을 뿌려 연말 분위기를 더욱 돋울 예정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