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대결 도중 대뜸 욕설이 등장한 넷플릭스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로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야!”
지난달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코미디프로그램 ‘코미디 로얄’을 보던 한 시청자는 깜짝 놀랐다. 코미디언들이 독한 농담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로스팅 대결 도중 느닷없이 욕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용진팀 팀원으로 무대에 오른 박진호는 상대 팀인 탁재훈이 표정 등을 지적하자 그를 향해 대뜸 욕설을 내뱉었다. 이를 현장에서 지켜보던 코미디언들은 박장대소했지만 시청자들은 당황스러워했다. 방송을 본 30대 직장인은 “오프라인에서 하는 19금 코미디도 아니고 방송에서 욕을 하는 상황도 놀라웠지만, 코미디언들이 재미있다고 웃는 게 더 이해가 안 됐다”고 말했다.
‘코미디 로얄’처럼 지상파 등에 견줘 상대적으로 수위가 높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가 늘면서 드라마에 이어 예능까지 욕설이 퍼지고 있다. 방송의 내용에 따라 욕설이 필요할 때도 물론 있지만 맥락 없는 사용은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드라마는 대다수 작품에서 욕설이 기본 대사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2021년 오티티 티빙의 ‘술꾼도시여자들’처럼 욕설이 장면의 현실감을 높이고 화제성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정도가 심해지면서 시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있다. 한 프리랜서 드라마 피디는 “이제는 욕설을 사용해야 오티티 드라마라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은 것 같다”며 “무분별한 사용에 화제성도 사라진 상황”이라고 했다.
콘텐츠의 국경이 사라지면서 한국어 욕이 외국에까지 번지는 현상도 생겨났다. ‘케이-커스’(K-curse)라는 이름으로 한국어 욕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4월7일 ‘글로벌 시청자들을 서울로 끌어들이고 있는 케이-콘텐츠 열풍을 들여다보다’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에 가본 적 없고 한국어도 잘 모르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샤넷 톰슨이 ‘아이씨’라는 말을 한다”는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한 유명 연예인이 ‘아 ××’을 사용한 뒤 소셜미디어(SNS)에서 이 단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티티 콘텐츠 자체에 대한 규제가 허술한 것도 이런 욕설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을 보면 ‘내용 전개, 구성상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욕설, 비속어, 은어 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지만, 오티티는 방송이 아닌 비디오 영상물로 분류돼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받아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마냥 목소리를 높일 수도 없다. 창작자들은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중시한다. 전문가들은 창작자 스스로 공익성과 창작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욕설과 저속한 행위를 사용하는 게 금지를 향한 저항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창작자와 플랫폼이 자체 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자극적인 욕설이 작품 흥행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넷플릭스가 지난 12일 발표한 상반기(1~6월) 시청시간 집계 순위를 보면 ‘일타 스캔들’(16위), ‘닥터 차정숙’(25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59위) 같은 드라마들이 심한 욕설 없이도 전세계에서 사랑받았다.
윤석진 교수는 “최근 오티티 프로그램에서 나타나는 욕설 현상은 이른바 수용자의 이목을 끌기 위한, 자극적 도구로 이용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문제”라며 “‘코미디 로얄’은 풍자와 해학이라는 코미디의 본질을 표현의 자유로 왜곡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짚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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