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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7인의 탈출’ ‘코미디 로얄’…넘쳐나는 비난, 혐오에 시청자 떠났다

등록 2023-12-30 09:00수정 2023-12-30 09:04

한겨레 필자들이 뽑은 2023년 최악의 프로그램 ‘코미디 로얄’. 넷플릭스 제공
한겨레 필자들이 뽑은 2023년 최악의 프로그램 ‘코미디 로얄’. 넷플릭스 제공

원칙과 상식이 실종된 사회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상대를 죽여서라도 살아남겠다는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을 비난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에 빨간불이 들어온 지 이미 오래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으나, 최종 승자를 가리기 위한 대결은 전방위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방송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대결을 통해 최종 승자를 가리는 다양한 유형의 ‘서바이벌’ 영상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 것을 마냥 반기기는 어렵다. 표현의 자유로 포장한 혐오와 비난의 욕설이 난무할 정도로 점입가경이기 때문이다. 2023년을 마무리하면서 무한 생존 경쟁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 두 편의 영상 콘텐츠를 곱씹는 까닭이다.

첫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에 코미디 콘텐츠를 제공할 기회를 놓고 대결하는 예능프로그램 ‘코미디 로얄’이다. “대한민국 코미디의 진정한 로얄을 가리기 위한 코미디 로얄”을 표방했지만, 시작부터 욕설과 저속한 성적 행위로 코미디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곽범, 이재율, 박진호 등 인기 코미디언들은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뱉겠다”며 욕설을 내뱉고, 원숭이의 교미를 흉내내면서 말초적 감각을 자극한다. 성희롱 같은 언행이 웃음을 유발한다고 착각한 참가자들이 대결 구도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뒤끝은 개운하지 않다. 이들은 취향에 따라 구독을 결정하는 세대에게 통하는 코미디라고 주장하면서 세계관의 차이를 운운하는데 이는 억지 주장일 뿐이다. 풍자와 해학이라는 코미디의 본질을 망각한 말초적 언행으로 대한민국 코미디의 무대를 세계로 넓히겠다는 것은, 궤변에 가깝다.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의 막강한 영향력에 맹종한 폐해는 아닌지,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한겨레 필자들이 뽑은 2023년 최악의 프로그램 ‘7인의 탈출’. 에스비에스 제공
한겨레 필자들이 뽑은 2023년 최악의 프로그램 ‘7인의 탈출’. 에스비에스 제공

둘째, ‘피카레스크(악인들이 주인공인 장르) 복수극’을 표방하면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건을 남발한 드라마 ‘7인의 탈출’(SBS)이다. 원조교제와 출산, 학교폭력과 교사의 부정부패, 연예계와 인터넷 개인 방송, 경찰의 비리와 마약 문제 등이 성글게 엮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자신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는 대상을 향한 폭력과 욕설은 기본이고, 여자 고등학생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설정은 참으로 목불인견이다. ‘극적 허용’을 ‘순옥적 허용’(김순옥 작가이기에 가능한 전개라는 뜻)으로 오인하거나 남용한 작가의 오만 때문은 아닌지 궁금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아이돌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 고등학생의 탈선, 이를 방조하면서 이용하는 기성세대의 행태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면서 대결과 경쟁을 부추기는 문제적 현실의 방증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물질적 욕망에 함몰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정도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정성을 전제로 하는 경쟁을 터부시할 수 없다. 무한 생존 경쟁이 일상화되면서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동물적 본능을 탓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경쟁을 약육강식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이다. 서바이벌 영상 콘텐츠가 만들어낸 폐해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를 공격하는 상대가 있다면, 악다구니를 써야만 ‘호구’ 잡히지 않는다. 이렇게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면서 공격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삶의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힘겹게 버텨온 2023년이 저물고 있다. 2024년에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에 파란불이 켜지기를 바란다. 표현의 자유로 포장한 혐오와 비난의 욕설은 물론 저속한 성적 언행을 일삼는 ‘코미디 로얄’과 ‘7인의 탈출’ 같은 영상 콘텐츠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까닭이다.

충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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