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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좌도 우도 아닌 예술이 ‘안식처’

등록 2006-05-10 20:53

“(평소엔 다정하지 않지만) 그럼 다정한 척 해볼까?” 부인 정덕미(74)씨의 농담에 부부가 활짝 웃었다.
“(평소엔 다정하지 않지만) 그럼 다정한 척 해볼까?” 부인 정덕미(74)씨의 농담에 부부가 활짝 웃었다.
[커버스토리] 월북 예술가들과 깊은 교유
투옥·밀항 등 시대적 풍파 속 연출 창작 평론작업 한 평생
한국 최초 음악교과서 만들고 60년대 뮤지컬붐 일으켜
박용구의 일생은 예술을 사랑한, 연약한 자유주의자의 그것이었다.

월북한 시인 설정식, 작곡가 김순남 등과 친하게 지냈던 진보적인 지식인이었지만, 본격적인 조직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일제나 독재정권에 부역하지 않았지만 정면으로 저항하지도 않았다.

두 차례의 짧은 투옥과, 망명과도 같았던 두 차례의 출국에도 불구하고 그는 크게 상처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준 것은 다름아닌 예술이었다.

박용구 선생이 쓴 우리나라 최초 음악평론집 〈음악과 현실〉(1949)
박용구 선생이 쓴 우리나라 최초 음악평론집 〈음악과 현실〉(1949)
심포닉아트 첫 대본 〈삼별초〉(2005)
심포닉아트 첫 대본 〈삼별초〉(2005)

“제가 1938년 일본에서 바그너의 악극을 보고나서 동경학술좌에 발표한 글이 새로운 음악극을 제창하는 내용이에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내가 이름붙인) 향토가극 운동을 했구요. 그 다음 오페라, 연극, 뮤지컬을 했죠. 21세기 들어서 제가 ‘심포닉 아트’를 주창하고 있는데, 제 삶이 그걸 준비한 게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1914년 그는 경북 영주군 풍기면에서 최고 부자였던 한의사 집안에서 3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구식에, 엄하기만 했던 부모님 아래서 그가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의 은인인 자형 김희규 덕분이었다. 그는 보통학교 시절 내내 그의 담임선생이기도 했다.

“일년에 몇 번씩 여관 마당 같은 데서 연극을 하는데, 자형이 나를 데리고 가 구경을 하게 해줬어요. 바이올린을 해본 것도, 신문의 연재소설을 탐독한 것도 다 자형 덕분이지요.”

그런 자형이 그가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고보에 입학하자마자 폐병으로 숨졌다. 그는 “아, 이분이 나를 위해서 살았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평양고보 5학년 때는 독서회를 조직해 좌익서적을 탐독하다 걸려 퇴학을 당했고, 짧은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34년 일본으로 유학을 간 그는 니혼대학교에서 미학을, 니혼고등음악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최승희의 스승인 이시이 바쿠로부터 6개월 동안 무용을 배우기도 했고, 연극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해방 뒤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교과서 〈임시중등음악교본〉을 만들기도 했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이었잖아요. 친구 설정식이 미군정청 여론부장이어서 종이를 한 트럭 내주더라고. 그래서 5만부를 찍었지요. 남로당원이었던 설정식이는 나중에 월북했는데, 결국 처형당했지. 천재였는데 말이에요.”

그의 또다른 친구인 작곡가 김순남도 월북했다. 김순남과의 인연은 그가 이승만 정권의 매카시즘에 염증을 느껴 일본으로 밀항하는 계기가 된다.

“오제도의 국민보도연맹이 명동 시공관에서 민족예술제라는 행사를 주최하는데 허락도 없이 나를 참가자로 만들었더라고. 월북한 예술가들한테 투항하라는 메시지를 읽는 것인데, 김순남이는 내가 맡고, (월북 전의) 설정식은 임화를 맡고 그런 식이었지요. 나는 남로당원도 음악동맹원도 아니었는데, 단지 친하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해서, 아 이제 내 설 땅은 없구나, 하고 밀항을 결심했죠.”

일본 도쿄의 고마키 발레단에서 문예부장을 지내다 4·19혁명으로 이승만이 물러난 뒤 귀국한 그는 한 차례 더 매카시즘의 희생양이 된다.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에 의해 간첩으로 몰린 것이다. 6개월 만에 무죄로 풀려나와 오페라와 연극 연출을 하던 그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김종필 당시 공화당 총재였다. 북한의 대형 집체극에 맞서기 위해 만들었다 문을 닫았던 한국예그린악단을 다시 살려달라는 제안이었다.

“뮤지컬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조건을 달고 단장직을 수락한 그는 〈살짜기 옵서예〉 〈꽃님아 꽃님아〉 등을 히트시키며 뮤지컬 붐을 일으켰다. 그가 뿌린 씨앗은 4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날 제2의 뮤지컬 붐으로 살아나고 있다. 이후 ‘야성’으로 찍힌 그는 1989년 여소야대 시절 초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지냈을 뿐, 평론가와 작가로 초야에 묻혀 지냈다.

그는 요즘 〈낙원에서 멋대로 살기〉(가제)라는 사회문화 비평서를 쓰고 있다. “지금까지 쓴 것과는 달리 낙천적인 익살과 신명으로 우리 민족의 희망을 밝히는 얘기”다. 여생을 한반도 르네상스를 앞당기는 일에 던지기로 했다는 그는 여전히 ‘싱싱하게’ 꿈꾸는 청년이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한류를 한반도 르네상스의 출발점으로!”

“대중예술을 고급예술로” 장르 벽 허무는
심포닉 아트와 건물 벽화운동 제안

쌓아올린 책처럼, 인생도 켜켜이 쌓여있다. 지난 5일 평창동 자택에서 박용구 선생이 자신의 저서 더미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장서와 자료들을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기증했다.
쌓아올린 책처럼, 인생도 켜켜이 쌓여있다. 지난 5일 평창동 자택에서 박용구 선생이 자신의 저서 더미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장서와 자료들을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기증했다.

박용구 선생은 인류 역사상 르네상스가 3번 있었다고 말한다. 당나라의 장안, 이탈리아의 피렌체, 그리고 19세기의 러시아. 르네상스 하면 다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의 이탈리아를 떠올리지만, 이태백과 도연명, 고선지의 당나라가 이탈리아에 앞서 문예부흥을 했으며,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발레 뤼스와 스타니슬랍스키의 러시아도 이에 못지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네번째의 르네상스를 한반도에서 일으키자고 제창한다. 마침 한류라는 이름으로 피어나고 있는 문화적 에너지를 대중예술에서 고급예술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적으로 기획을 해야 할 때예요. 한류를 물고 한반도 르네상스로 가져가야지. 에너지라는 것은 방향이 없으면 흩어지고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그는 지난해 〈삼별초〉(지식산업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한반도 르네상스를 대비해 그가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공연예술 형태인 ‘심포닉 아트(약칭 심포니카)’의 대본이다. 심포니카는 무용, 음악 등의 공연예술과 드라마, 시를 비롯한 문자예술, 영상예술을 더한 종합예술을 말한다. 최근 유럽에서도 이런 식의 장르 허물기가 유행하고 있다.

“16세기에 피렌체 귀족들이 오페라 운동을 해서 르네상스를 이뤘잖아요. 20세기에 와서는 시네마라는 영상예술이 생겼어요. 21세기에는 그 오페라와 시네마, 그러니까 실상과 영상이 모두 종합되는 그런 장르를 만들자는 것이고, 그걸 심포닉 아트로 부르자는 것이죠. 심포니라는 게 교향곡이니까, 한마디로 울타리를 다 헐어버리자는 얘기죠.”

심포니카와 함께 그가 주창하는 또 하나의 문화운동은 벽화운동이다. 대형 건물이나 공공기관, 백화점 등을 미술작품으로 뒤덮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빌딩 앞에 조각을 세운 것은 잘한 일이지만 큰 조각 운동을 일으키지는 못했잖아요. 그런데 멕시코는 벽화운동을 해서 리베라, 오로스코, 시케이로스 등 미술사에 남는 3대 화가를 배출했어요. 운동을 시작함으로써 예술가들이 자라는 거예요.”

그가 생각하는 21세기형 벽화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한 발 더 진전시켜, 티브이 프레임에서 벗어나 거대한 빌딩 벽이나 내부를 장식하는 형태다.

“21세기에는 아이티를 이용하지 않으면 예술표현 수단으로서 뒤떨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텔레비전에 흥미가 없지만 광고는 유심히 봐요. 첨단기술은 전부 광고에 투입돼 있어요. 백화점에 들어갔을 때 그런 볼거리가 있으면 얼마나 즐겁겠어요.”

이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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