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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본질은 “한국지배” ‘자의적’ 해석 넘어 새조명

등록 2005-02-22 17:54수정 2005-02-22 17:54

한 중 일 '미래를 여는 역사' 공동교과서 집필

“다른 강국 한반도 점령땐 일본위협 ” 논리 소개

사상 첫 동아시아 공동 역사교과서인 <한·중·일이 함께 쓴 미래를 여는 역사>가 오는 5월 세 나라에서 동시 출간된다. 세 나라의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단체들이 3년에 걸쳐 토론과 집필을 거듭한 결실이다. 2차대전 종전 60주년을 맞아 ‘공동의 역사인식’ 위에 동아시아 평화의 밑거름을 마련하려는 노력이다.

<한겨레>는 이 작업을 주도한 한국 쪽 시민단체인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와 함께 앞으로 12차례에 걸쳐 공동 교과서 내용을 일부 소개한다. 동시에 세 나라의 시선이 엇갈리는 역사 쟁점의 의미와 최근 논의를 공동교과서 집필위원들이 직접 살폈다. 이번 기획을 통해 한국의 시민사회가 ‘국사’에 갇혀 있던 역사인식의 공백과 기울어짐을 고쳐잡고 동아시아 평화의 주역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일본 외무대신) 고무라에게 이 전쟁은 한국에 대한 지배와 깊이 관련된 것이었다.”

<한·중·일이 함께 쓴 미래를 여는 역사>(이하 ‘미래를 여는 역사’)는 ‘러-일 전쟁’의 본질을 이렇게 서술한다. “전쟁을 한 장소가 일본도 러시아도 아닌 한국과 만주”였다는 점에 “이 전쟁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한겨레>가 입수한 <미래를 여는 역사> 최종 원고를 보면, 러-일 전쟁에 대한 서술은 책의 제1장 ‘개항과 근대화’ 대목에서 상당한 비중으로 다뤄지고 있다. 세 나라의 편찬위원들은 왜 러-일 전쟁을 ‘새롭게’ 쓴 것일까?

<미래를 여는 역사> 집필위원인 신주백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러-일 전쟁이) 각 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현재 처지에 따라 다르게 설명돼 왔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일본사> 고등학교 교과서는 “일본 내에서 만주를 점령하고 철병의 약속을 실행하지 않는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점차 높아졌다”고 서술한다. 개전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전쟁이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동아시아를 구했음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반면, 중국 초급중학교에서 쓰는 <중국역사> 교과서는 러-일 전쟁보다는 ‘청-일 전쟁’을 주로 서술하고 있다. 한국의 중학교 <국사> 교과서는 러-일 전쟁을 전후한 복잡한 국제관계의 변화를 서술하지 않고, 일본의 침략적 행위 자체에 대해서만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일본이 러-일 전쟁을 ‘자의적’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반면, 중국과 한국에서 러-일 전쟁은 ‘잊혀진 전쟁’ 또는 ‘몰라도 되는 전쟁’으로 취급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미래를 여는 역사>는 러-일 전쟁의 실체를 제대로 알리는 일이 한·중·일 공동의 역사인식을 풀어가는 데 핵심적 사건이라고 본다. 신주백 연구원은 “세 나라의 근대사는 침략과 저항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으며, 이를 올바로 전달하지 않으면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며 러-일 전쟁에 대한 공동 역사서술의 의미를 평가했다. “한·중·일의 학생들이 러-일 전쟁 당시의 복잡한 국제관계를 반성적으로 살펴보게 하는 교육은 최근 동아시아 각국의 이해를 조정하는 미래 지향적인 역사교육”이라는 것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당시 일본이 러시아에 공격받을 위험성은 없었다”며 일본의 개전 책임을 분명히했다. 동시에 러-일 전쟁으로 한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의 민중들까지 큰 피해와 부담을 안았다는 점을 적었다. 전쟁 중이던 1904년 5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정치상, 군사상 보호의 실권을 장악하고 경제상 점진적으로 이권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결정한 내용도 소개했다.

이는 특히 러-일 전쟁의 긍정적 의미를 부각시켜온 일본 역사교과서와 대비된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일본 학생들을 의식한 듯, 전쟁 당시 일본 정부의 ‘논리’도 소개했다. 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가 러-일 전쟁 개전 반 년 전에 쓴 글을 인용한 대목은 이렇다. “만일 다른 강국이 한반도를 점령하게 된다면 일본의 안전이 위협받는다. 이를 예방하는 것이 예부터 내려온 일본의 정책이다.” 전쟁의 배경을 깊이 인식하게 하려는 배려다. 침략전쟁이라는 본질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본) 국내에서는 세계 일등국이라는 의식도 높아갔다”며 일본인의 빈약한 현실인식을 꼬집는 대목도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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