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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사선 함께 넘은 남북 외교관 동포애 다뤄”

등록 2006-06-06 19:58

91년 소말리아 대사 시절 내전 휘말려
북 외교관과 함께 군용수송기 타고 철수
당시 생생한 경험 살려 체험 소설 펴내
[이사람] 외교관 출신 강신성씨 소설가 데뷔

만 36년 외교관으로 일하다 97년 옷을 벗고 올 봄 체험 소설로 문단 데뷔한 강신성(69)씨. 그는 15년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있었던 일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요즘도 종종 주마등처럼 떠오른다고 했다.

*94년 유엔 평화유지군 일원으로 한국군이 파견됐다 조기철수했던 소말리아에선 강씨가 대사 시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90년 말~91년 초 상황입니다. 벌써 몇달째 반군과 정부군의 밤낮없는 전투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죠. 자국민끼리 살인은 물론 심지어 공관 약탈, 외교관 구타·총기위협 등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북한공관엔 8차례나 강도가 들어와 숟가락 하나 안남기고 빼앗아 갔습니다.”

80년대 중·후반 한국 정부는 10개 남짓 아프리카국과 수교를 확대한다. 91년 9월 유엔 가입을 위해서였다. 87년 12월24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한국 대사관이 설치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강씨가 초대 대사로 부임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후진국인 소말리아에서 인간의 원시성과 현대문명이 갈등하면서 빚어내는 정치·사회적 불안을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게다가 남북한 대치상황에서 빚어지는 국가적·이념적 충돌이 저를 수없이 고민하게 만들었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부임 3년여 동안 소말리아엔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내전에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90년말 극도의 신변 위협을 느낀 33개국 대사관과 11개 국제원조기관이 앞다퉈 철수하기 시작한다. 91년 1월초 모가디슈엔 이 가운데 7개 공관이 남았을 뿐이다. 본국과의 모든 통신수단이 끊겨 교신은 엄두도 못낼 상황. 말 그대로 고립무원이었다. “당시 남북한 대사관은 거의 마지막까지 철수를 못했습니다. 북한대사관은 보안을 이유로 현지인 경비를 두지않아 늘 약탈과 습격대상이었죠.” 1월9일 최종 철수를 위해 모가디슈 국제공항에서 도착해있던 강 대사 일행은 구조용 비행기를 놓치고 김영수 대사 등 북쪽 공관원 14명과 한국 공관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하룻밤새 남북한 외교관과 부인들은 긴장 속에서 공동운명체가 됐다.

이튿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옮긴 이들은 거기서 3일간 더 머문 뒤 동체에 빨간 십자가가 선명한 국제적십자사 구조기를 발견했다. 모두가 환호성을 올렸다. 또 한 대는 국방색 수송기. 구조기엔 이틀전 숨진 북한 박상열 3등서기관 유족과 몸이 나쁜 북한대사 부인이 탔다. 남북한 대사는 좌석조차 없는 군용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두어시간 비행 끝에 케냐 남부 항구도시 몸바사공항에 도착했다. 그게 전부였다. 북한측은 트랩을 내리자마자 2~3분이나 될까, 악수와 포옹이 전부였다. 그리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왜 그래야 했을까. 더이상 함께 하며 안도의 회포를 풀 여유도 있었는데…. 강 대사는 아직도 안타깝기만 하다고 했다. 회포도 풀고 동포의 정을 더 느낄 수 있었을텐데…. “분단상황 탓에 적대국 사이라지만 머나먼 이국땅에서 내 동포들을 사지에 방치한다는 것은 도저히 양심상 허락치 않더라구요. 하지만 당시 그런 결정하기는 솔직히 쉽지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재구성해 최근 소설 <탈출>로 문학공간사 추천으로 등단했다. 97년 하와이총영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4서3경> <노장> <주역> <플라톤> 등 동서양 철학공부에 빠져들고 있다.

“인과응보, 업보 이런 말이 새삼 무슨 뜻인지 나이 들면서 깨닫게 됩니다. 남은 인생 소말리아 역사나 거기 관계된 사람들 만나 얘기듣고 싶습니다. 소말리아 얘기를 한 권 정도 더 쓰고 싶습니다.”

그는 이달 중순 93년 소말리아 평화유지군 파견을 위해 사전 답사했던 예비역 고위장성을 만나면 궁금해 하던 것을 많이 풀 수 있을 것같아 설렌다고 했다.


글 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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