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 하듯 연극했지…고도를 기다리며” 연극인의 절반 이상이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삶을 꾸려가는 척박한 우리 연극계에서 장시간 ‘현역’으로 버텨내기는 힘든 노릇이다. 그러나 50년 동안 한결같은 연극인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그는 한번도 자신을 불행이라는 단어와 연관시켜본 적이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딱 10년만 버텨보자고 시작했는데… 한국 연극계의 ‘영원한 현역’ 임영웅(71·극단 산울림 대표)씨가 자신의 분신이자 우리나라 민간 소극장의 산역사인 산울림 소극장의 개관 20년을 맞았다. 1985년 3월 그와 그의 ‘전우’인 아내 오증자(70·전 서울여대 불문과 교수·산울림 소극장 대표)씨가 집을 팔고 빚을 내면서 “눈 딱 감고 10년만 버텨보자”며 홍대 근처에 마련한 터전이다. “우리나라 같이 연극하기 힘든 환경에서는 ‘독립운동’하듯이 연극해야지. ‘독립운동’하는 이가 돈이나 명예를 바라고 하겠습니까? 요즘 젊은 연극인들에게는 그런 절실함이 없는 것 같아요.” 그는 ‘독립운동’을 하던 자신의 곁을 말없이 지켜보면서 용기를 불어주었던 아내는 단순한 친구나 동지보다는 ‘전우’의 존재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는 산울림 소극장에 그가 오랜 화두처럼 매달려왔던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는 11일부터 5월8일까지 또다시 올린다. 그가 1969년 극단 산울림 창단과 함께 한국일보 사옥 12층에 마련된 소극장 무대에 올린 첫 작품이자 1985년 산울림 소극장 개관 기념작이며 올해로 21번째 공연이다. “<고도…>가 벌써 36년이 되어버렸네요. 돌이켜보면 내 연극 인생의 평생의 반려자가 되어 중요한 고비 때마다 그 연극을 했어요. 언젠가 어느 연극 후배가 그 연극을 보고 자극받아 연극을 하게 되었다고 털어놓더군요.”
‘한국연극영화 예술상’을 비롯해 각종 예술상을 14회나 수상했고, 국내 최초로 아비뇽 연극제에 이어 베케트의 고향 더블린 연극제에 초청공연까지 가졌던 <고도…>는 그와 숙명적인 관계였다. 개관작 ‘고도…’ 36년 16번 연출 ‘반려자’ “연극이란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라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베케트는 <고도…>에서 복잡한 현대인을 무대에 올려놓고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의 의미는 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36년 동안 16번이나 연출해오면서도 항상 새롭게 느껴지고 긴장이 되곤 하죠.” 지병인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체력이 허용한다면 살아 있는 동안은 연극을 놓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소명의식이라고나 할까요. 노파심 같지만 제가 포기하면 저를 바라보고 따라오는 후배들이 ‘임 선배도 포기했는데…’라며 좌절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요. 20년 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한번에 무너뜨릴 수는 없죠.” 9월엔 아들 임수현 교수와 공동작업도 그는 <고도…>에 이어 5월에는 극단 산울림의 창단 멤버인 손숙의 모노드라마 <셜리 발렌타인>, 7월에는 박정자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9월에는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작 <목화 밭의 고독 속에서>, 10월에는 이강백의 신작 희곡을 차례로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특히 한국 초연인 <목화 밭의…>는 아들 임수현(41) 서울여대 불문과 교수가 번역 작업을 맡아 모처럼 부자가 함께 연극무대에 선다. “고도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 여러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기다려야 한다. 고도가 반드시 오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가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인가?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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