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프간·이라크 침공 등을 비판해온 노엄 촘스키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추구가 끝모를 테러전쟁의 시대를 열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지난 7일 ‘부시, 테러리스트’라고 쓴 피켓을 든 인도네시아인들이 자카르타 시내 유엔 사무소 앞에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지원하는 미국을 비난하고 즉각적인 정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카르타/ AFP 연합뉴스
5년 되도록 “왜 우릴 미워하나” 갸우뚱하며
맹목적 증오심에 미국 테러한다는 믿음
피의 복수 다짐하는 ‘부시 독트린’ 맞장구
석유패권·일방주의 계속되는 한 끝없는 전쟁
맹목적 증오심에 미국 테러한다는 믿음
피의 복수 다짐하는 ‘부시 독트린’ 맞장구
석유패권·일방주의 계속되는 한 끝없는 전쟁
안과 밖 9.11 테러 5주년이 다가온다. 9.11 후폭풍은 국제정치의 지평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 아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리고는 북한, 이란, 시리아의 정권교체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그런 서슬에 질린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대통령은 반미 깃발을 거두고 항복했다. 미국의 패권 범위는 전지구적으로 넓어졌다. 그렇지만 오늘날 ‘미국의 평화’는 없다. 걸핏하면 테러비상이 걸리고 미국인들은 테러 노이로제에 걸렸다. 9.11 테러 뒤 많은 미국인들은 “그들이 우리를 왜 미워하는지 알 수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 논란으로 지구촌이 들끓던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정치학자 레이몽 아롱은 “어지러운 시절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깊이 하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테러는 왜 일어나는가, ‘테러와의 전쟁’은 올바른 전쟁인가, 도대체 전쟁은 언제 끝날 것인가… 물음들이 꼬리를 문다. 60년을 뛰어넘는 연결고리, 석유 9.11 테러는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 일컬어진다. 1941년 12월8일의 진주만 공습, 2001년 9월11일의 테러. 60년 차이를 둔 두 사건 사이엔 석유를 향한 탐욕과 갈등이란 공통점이 깔려 있다. 첫째, 일본의 미국 석유. 1930년대 말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를 마구 점령해 들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미국은 필리핀을 비롯한 자국의 동남아시아 이권이 위협당하는 것을 느꼈다. 그 무렵 일본이 가장 많은 석유를 들여오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대일 석유수출을 제한하고 나섰다.
석유가 모자란다면 산업도 타격을 입지만, 일본제국주의 대외침략의 선봉장이던 일본 연합함대도 기동력을 잃게 된다. 위기를 느낀 일본군 지도부는 석유가 풍부한 인도네시아(당시 네델란드 식민지) 점령을 목표로 동남아 침공을 서둘렀다. 미 태평양 함대를 침몰시킨 일본의 12.8 진주만 공습은 동남아 침공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둘째, 미국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9.11의 주역 오사마 빈 라덴은 “아라비아반도의 신성한 이슬람 영지를 점령, 재물을 약탈하고 통치자를 억누르고 이웃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1998년 발표한 선언문 ‘유대인과 십자군에 저항하는 세계 이슬람전선의 성전’)고 미국을 비판했다. 빈 라덴은 △사우디에서 재물(석유자원)을 약탈해가는 미국, △미국에게 석유를 대주고 미군기지를 제공한 사우디의 부패왕조, △미국의 지원 아래 팔레스타인을 식민통치하고 이슬람 국가들을 위협하는 이스라엘, 이 셋을 중동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라는 주장을 폈다. “왜 우릴 미워하나”, 반성 없어 3천명의 목숨을 하루아침에 앗아갔던 9.11 테러사건의 파장은 컸다. “우리 미국이 뭘 잘못 했기에 테러공격을 받았나. 그들은 왜 우리를 미워하는가”라는, 반성보다는 응징과 복수를 바라는 목소리가 지난 5년 동안 미국을 지배해왔다. 미국인들은 피의 복수를 다짐하는 미군통수권자 부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부시의 군대는 ‘테러와의 전쟁’ 깃발을 흔들며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라크로 진격해 들어갔다. 많은 미국인들은 테러리스트들이 ‘자유의 나라’ 미국을 그저 맹목적으로 증오한 나머지 테러공격해왔다고 여긴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그런 미국인들의 답답한 세계관 형성과정에는 상업주의와 애국주의의 두 바퀴로 굴러가는 미국 주류언론의 역할이 크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의 미국중심적 세계관은 두 요소의 기묘한 혼합이다. 하나는 ‘미국은 세계평화를 지키는 자비로운 패권’이라는 정치적 우월주의, 다른 하나는 ‘미국은 자유시장경제 질서의 수호자’라는 신자유주의다. 미국적 질서에 도전하는 제3세계의 불순한 움직임은 초전박살내야 한다. 이를테면, <뉴욕타임스>의 국제담당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라크 침공은 (반전평화운동가들이 늘 지적했듯이) 석유 때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9.11이 낳은 새로운 시사용어가 ‘부시 독트린’(Bush Doctrine)과 ‘테러와의 전쟁’이다. 미국 영토와 시민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나 단체를 미리 선제공격해 들어가겠다는 부시독트린은 지구촌 평화에 위협요소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9.11테러와는 관련 없는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부시행정부는 세계여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그럼에도 부시는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테러전쟁은 전쟁범죄를 저질러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환상의 마법과 같은 전쟁인가. 미국이 국제법을 무시한 초법적 군사행동에 나서자, 다른 나라들도 흉내를 낸다. 러시아는 체첸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우리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테러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미국이 이길 수 있겠는가. 이 물음에 대해 미국인들조차 확신을 하지 못한다. 최근에 ‘에이피(AP)-입소스’가 미국인 1천명에게 물어보니, 3분의 1은 “테러전쟁에서 결국 테러분자들이 승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60%는 “미국 안에서의 테러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아졌다”고 여긴다. “이라크 침공으로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는 부시대통령의 주장과는 다른 대답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테러사건들은 9.11 전보다 더욱 늘어났다. 정치학자들은 그 까닭을 “알카에다가 조직에서 운동으로 바뀌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알카에다의 반미 지하드(jihad, 성전) 이념에 공감하는 자생적인 반미조직들이 지난 5년 동안 곳곳에서 생겨났다. 빈 라덴은 9.11 5년을 맞아서도 여전히 ‘지하드 닷 컴’(jihad.com) 회장이다. 글로벌 반미 지하드의 이념적 중심축으로서의 ‘알카에다 주의’는 여전히 큰 힘을 갖는다. 테러의 정치적 동기를 헤아려야 19세기 초 프러시아의 전쟁이론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유명한 <전쟁론>에서 전쟁을 가리켜 ‘다른 (물리적) 수단들을 동원한 정치적 관계의 연장’으로 정의내렸다. 테러도 마찬가지다. 테러라는 폭력적인 현상은 그 행위자들의 열정과 분노라는 정치적 동기에 비롯된다. 지구촌을 휩쓰는 테러의 뿌리를 보면 미국의 잘못된 대외정책이 깔려 있다. 테러는 그에 대한 저항운동의 성격이 짙다. 미국의 석유자원 챙기기, 일방적인 친이스라엘 정책, 더 나아가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세계를 힘으로 지배하겠다는 패권전략을 비판하는 물리적 저항이 곧 테러다. 미국이 벌여온 테러전쟁은 ‘전쟁 발발→전투→종전협정→평화’라는 고전적인 등식과는 다르다. 부시 대통령은 “전세계적으로 연결망을 지닌 테러조직을 모두 찾아내 뿌리를 뽑을 때까지 전쟁을 벌이겠다”고 거듭 말해왔다. 그렇다면 안타깝게도 그 전쟁은 ‘끝없는 전쟁’이다. 미국이 석유자원 확보와 패권확장을 노린 미국의 군사적 일방주의를 거두어들이지 않는 한, 친이스라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이슬람 민중의 삶의 권리도 존중하지 않는 한, 반미 테러의 동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재명/국제분쟁 전문가, 국민대·성공회대 강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