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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한반도의 원폭 악연

등록 2006-10-12 20:01수정 2006-10-14 17:39

한승동의 동서횡단
1945년 7월16일 새벽 5시30분.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콩파냐 언덕에 있던 물리학자 제임스 채드윅은 회색빛 어슴푸레한 여명속에서 홀연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운 “눈을 멀게 할 정도로 강렬한 빛”에 전율했다. “마치 우리 사이에 신께서 나타나신 것 같았다.” 채드윅 옆에 있던 오토 프리시는 무서워 등을 돌리고 있었다. “갑자기 아무 소리도 없이 언덕들이 환한 빛 속에 잠겼다. 마치 누군가 태양의 스위치를 켠 것만 같았다.”(<원자폭탄, 그 빗나간 열정의 역사> 다이애나 프레스턴)

인류 최초의 원폭실험 성공 소식은 같은 시기 독일 포츠담에서 윈스턴 처칠 영국총리, 장제스 중국총통과 함께 2차대전 이후 일본 처리문제를 협상하고 있던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원폭제조계획 최고책임자였던 헨리 스팀슨은 당시 핵무기의 등장 소식을 처음엔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던 처칠이 한 얘기를 자신의 일기에 남겼다.

“이제야 어제 트루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소. 나는 이해를 하지 못했었소. 이 보고문을 읽고 나서 회의에 들어온 그는 딴 사람이 되었지. 소련인들에게 어디서 타고 어디서 내릴지만을 말하고는, 회의 내내 대장노릇을 했소.”

육군원수 앨런 브룩은 이렇게 증언했다. “(처칠은) 완전히 기분이 들떠 있었다. 더 이상 소련인들이 일본전에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폭탄만으로도 충분히 그 문제를 종결지을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스탈린)이 이 일을 하겠노라 저 일을 하겠노라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는 그냥 모스크바를 싹 쓸어버릴 수 있소. 그 다음엔 스탈린그라드, 다음엔 키예프, 카르코프, 세바스토폴,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약 20일 뒤인 8월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다. 사흘 뒤엔 나가사키에도 떨어졌다. 이 두 개의 폭탄은 모든 것을 뒤바꿔버렸지만, 한민족의 진로를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 놓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더욱 통탄스럽다.

원폭실험과 핵무기 제조가 약간만 더 지연됐다면? 적어도 8월 초순에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히로히토의 8월15일 항복선언도 한참 늦춰졌을 것이다. 일본군의 무모한 옥쇄전략에 걸려 오키나와 등에서 숱한 피를 흘린 미군의 일본본토 진공은 지연되고 소련의 대일 참전범위는 대폭 확대됐을 것이며, 중국의 역할도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일본의 방어선은 점차 만주와 한반도로 좁혀들고, 미군 및 소련군, 그리고 중국·조선군과의 끝없는 소모전에 지치고 쇠약해진 일본은 마침내 관동군 등 한반도와 만주 등지의 자국군을 불러들여 본토방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주도한 광복군, 화북지방의 조선의용군, 만주쪽의 동북항일연군에 참여한 대규모 조선군, 소련지역 무장세력 등 한민족의 국외 항일무장세력의 한반도 진공과 더불어 한반도 내부 항일 독립운동도 활성화돼갔을 것이다. 일본항복 훨씬 전부터 조직되기 시작한 전국규모의 건국동맹과 건준, 인민위원회 등을 보면 그쪽으로의 사태발전 가능성은 충분했다.


한민족은 세계사의 대세에 힘입어 반세기의 숙원인 독립국가를 자체 힘으로 이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됐다면 분단은 물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처참한 동족상잔도 없었을 것이며, 일본이 승자가 되고 조선이 패자가 된 전후 정세는 완전히 역전됐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과정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로 일본이 조기 항복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북한이 한민족에겐 더없는 악연인 핵무기를 개발해 체제생존을 도모하겠다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핵무기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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