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여성들 앞치마 두르고
시계 없는데도 ‘시간젓’ 수유
서구 ‘핵가족 모형’ 따라해
시계 없는데도 ‘시간젓’ 수유
서구 ‘핵가족 모형’ 따라해
‘근대가족의 형성과 젠더’ 쓴 김혜경 교수
우리나라 주부들이 ‘대가족 며느리’가 아니라 ‘핵가족 안주인’이 된 건 1920~30년대 근대 가족이 형성기라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식민지하 근대가족의 형성과 젠더>(창비)를 쓴 전북대 사회학과 김혜경(48) 교수는 20~30년대의 교육받은 여성들이 며느리가 아닌 ‘안주인’이 되고자 적극적으로 핵가족 구성에 나섰다고 풀이한다. 기혼 여성들이 ‘효부’보다 ‘현모양처’가 되는 전략을 써서 가정 안 지위 상승을 꾀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그 시대 교육받은 여성들이 비과학적이고 경험적인 시어머니의 육아방식보다 의사와 전문서적의 힘을 빌린 ‘과학적 모성’으로 무장하는 한편, 핏줄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보다 단란한 핵가족을 이루려 했다”고 말했다. 시부모 봉양이 기혼 여성의 가장 큰 의무였던 그 시절, 남편에게 사랑받고 아이를 예쁘게 키우는 ‘전업 주부’가 여성들에겐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자연히 아이들도 ‘어린이’로 칭송받으며 가족의 핵심 구성원이 됐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이 달라 혼란도 있었다고 한다.
“시계가 없으면서도 시간에 맞춰 젖을 먹이는 ‘시간젓’(젖을 당시 맞춤법에서는 ‘젓’으로 적었음)을 강조한다거나, 식모를 두고서도 서구 사회처럼 앞치마를 두른 채 요리를 하는 전업 주부의 모습을 이상화했던 거죠. ‘식민지 근대의 역설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근대 가족에 대한 담론 형성에 언론도 앞장섰다. 1931년 2월1일치 <동아일보>는 우량아대회 수상 아동의 육아기 기사에서 “강긔증 잇는 네 아이를 시간젓과 약으로 꼭 죽을 것을 살리엇다”는 김덕성씨와 “목욕은 거의 날마다, 유모를 단속(시간젓을 먹이도록)”했다는 방무길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 교수는 “1930년대 동아일보는 창간 기념 기획물로 ‘가족주의 타파’를 다루며 소가족론, 부부 애정, 과학적 모성 등에 대한 ‘근대적 모성 상식’을 내보냈다”고 밝혔다.
1920년대에 처음 우리 사회에 생겨난 근대 핵가족 이미지는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직장인 아빠,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일하는 전업 주부 엄마, 그리고 건강하고 심성 착한 아이들로 이뤄진다. 이 모습은 그때도 관념 속에 존재할 뿐, 두루 일반적인 실재 가족이라고 하긴 어려웠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행복한 핵가족 관념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시계가 없으면서도 ‘시간젓’을 먹이려 했던 근대적 모성의 혼란과도 닮았다. 그렇다면 왜 그때 사람들은 새로운 근대적 가족형태에 열광했을까? 김 교수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분노가 지식 지배사회인 근대에 대한 과도한 열망을 낳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김 교수는 “앞으로 60~70년대 가족의 모습을 살펴볼 계획”이라며 연구 주제에 대한 힌트 한가지를 남겼다. “성별 분업 구조로 가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근대 가족 형태가 일반적으로 가능해진 게 겨우 60~70년대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평생 직장 개념이 깨지면서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벌어야 살 수 있는 지금 사회에서 남성 혼자 경제활동을 하는 남성부양자 모델이 불가능해졌지 않습니까? 가족은 변화하는 사회 구성물입니다. 성별 분업적인 핵가족 판타지는 현실과 여전히 거리가 있습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두 사람이 벌어야 살 수 있는 지금 사회에서 남성 혼자 경제활동을 하는 남성부양자 모델이 불가능해졌지 않습니까? 가족은 변화하는 사회 구성물입니다. 성별 분업적인 핵가족 판타지는 현실과 여전히 거리가 있습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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