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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일본풍 잠재운 색다른 트로트 ‘활짝’

등록 2007-01-07 17:59수정 2007-04-17 11:55

주현미의 ‘진짜’ 데뷔 음반으로 잘 알려진 <비 내리는 영동교>(1985)
주현미의 ‘진짜’ 데뷔 음반으로 잘 알려진 <비 내리는 영동교>(1985)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81) 주현미
가수 주현미의 홈페이지에 가서 본적을 찾아보면 ‘중화민국 산둥성(山東省) 모평현(牟平縣)’이라고 적혀 있다. ‘중화민국 산둥성’이란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면 ‘한의사였던 중국인 아버지 주금부 씨와 한국인 어머니 정옥선 여사 사이의…’ 라는 가족관계를 보고 고개를 끄덕거리면 된다. 아버지가 한국으로 건너올 때 중국 대륙이 아직 ‘공산화’ 이전이었다면 ‘중화민국’이라는 표현도 틀린 것이 아닐지 모른다. 사설이 길었는데 그녀는 ‘화교’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현미를 생각할 때 ‘화교’라든가 ‘중국인’이라는 특별한 정체성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덩리쥔(등려군)이 부른 노래들, 예를 들어 <야래향> 등을 즐겨 부르기는 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 강조하지는 않았다. 1988년 결혼한 이후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여 법률적으로도 ‘우리나라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화교라는 정체성은 점차 소실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추적해 보면 1960~7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도 몇몇 화교 가수들이 활동했다. 하지만 ‘곡충주’, ‘유미려’, ‘리리온’ 등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주현미도 한성화교학교를 다니던 1976년 아직 10대였을 때 독집 음반을 발표했다는 사실, 그리고 1981년 엠비시 강변가요제에 ‘인삼뿌리’ 2기 멤버로 참가했다는 사실도 대체로 기억 밖의 일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기억하는 <쌍쌍파티 메들리>(1984년)가 그녀의 데뷔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녀의 진짜 데뷔가 <비 내리는 영동교>(1985)이고, 이어 발표한 <신사동 그 사람>(1988)으로 그해의 ‘가수왕’을 차지했으며, 여세를 몰아 이듬해에도 <짝사랑>(1989)으로 정상의 지위를 이어갔다는 사실이 더 쉽게 떠오를 것이다. 이 무렵 트로트 계열의 곡들 가운데 ‘영동’, ‘강남’, ‘신사동’, ‘테헤란로’ 등등 서울의 특정 지명이 등장하는 곡들이 양산되었다는 사실은 수많은 ‘가요평론’들이 지적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굳이 반복하지는 않겠다.

흥미로운 것은 주현미가 등장하면서 트로트에 대해 줄기차게 제기되었던 ‘왜색 시비’가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태생적으로 ‘왜색’과 거리가 있는 주현미의 목소리의 효과에 더하여 <비 내리는 영동교>의 리듬이 2박자가 아닌 3박자라는 사실, <신사동 그 사람>이 폴카를 원용하여 경쾌한 리듬을 구사했다는 사실, 두 곡의 조성 모두가 단조가 아닌 장조라는 사실 등이 ‘시비’를 슬쩍 잠재울 수 있었던 요인들이다. 즉, 그녀의 메가히트곡들은 엄밀히 따지면 ‘정통 트로트’가 아닌 것들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성공에 대해서 사회학적 설명을 하기는 어렵지 않다. 즉, 한국형 개발자본주의의 꽃인 강남(혹은 영동)에서 싹이 트고 꽃을 피운 1980년대 이후 밤문화는 통행금지도 사라지면서 매일 밤 불야성을 이루었고, 이곳에 즐비한 성인유흥업소에서는 ‘동아시아형’ 접대문화가 발전했다. 이 모든 것이 일본의 유흥문화에 의해 영향받았다고 말한다면 과장이겠지만, 일본형 성인유흥으로부터 자유로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런 문화를 오버그라운드에서 대표했던 인물이 ‘일본풍’이 아니라 ‘중국풍’이었던 사실은 현실을 적당히 덮어두기에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일본풍’이 강했던 김연자나 심수봉이 이 시기에 이런저런 시련을 맞이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신현준/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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