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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거짓말 아직도 몰라? 김태규씨, 한 10년은 더 해!

등록 2007-01-25 21:03수정 2007-01-26 09:46

지난 24일 서울 영등포동 열린우리당 당사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회의. 김태규(가운데) 기자가 타사 기자들과 함께 뒤에 서서 열심히 취재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A href="mailto:jongsoo@hano.o.kr">jongsoo@hano.o.kr</A>
지난 24일 서울 영등포동 열린우리당 당사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회의. 김태규(가운데) 기자가 타사 기자들과 함께 뒤에 서서 열심히 취재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o.o.kr
당 지도부 회의·인터뷰 투닥투닥
말진의 제일 임무는 ‘타자수’
의원들 악수조차 안 건넬 땐 비애감 팍팍
정치인 말·행동 다 참말 같아 참말로 힘들다
국회야 진실을 보여다오
안과 밖/정치 ‘말진’ 기자의 적응기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 국민들의 눈과 귀는 여느해보다 더 정치판에 쏠릴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정보 욕구를 일차적으로 충족시키는 임무는 언론에 주어져 있고 그 최일선에 정치담당 기자들이 배치돼 있다. 정치판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며, 기자들은 어떻게 취재하나? 3년 넘도록 법원과 검찰 취재·보도에 애쓰다 얼마전 정치분야를 맡게 된 ‘정치판 신참기자’에게 부탁했다. 오히려 정치판과 취재기자들 속성이 잘 드러나지 않을까.

나는 열린우리당을 담당하는 <한겨레> 정치팀 기자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열린우리당 담당 ‘말진’ 기자다. 정치팀 현장기자들을 여당과 야당 담당 ‘반’으로 각각 묶고, 그 안에 기자 서열을 표시하는 게 ‘진’이다. 기자경력에 따라 1진, 2진, 이런 식으로 나뉘는데 가장 막내 기자를, 끝 말(末)자를 써서 ‘말’진이라고 한다. 2002년에 입사해서 이제 5년차, 제법 연조가 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말진이다.

정치팀 말진 기자의 하루는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타자수’ 일은 말진 기자의 대표적인 임무다. 오전 8시30분이나 9시에 열리는 당 지도부 회의 등에 들어가 의원들의 발언 하나하나를 쳐서 회사 통신망에 올려야 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동료 말진 기자들에게 ‘풀(취재 내용을 공유하는 일)’을 받아야 한다. 그만큼 다른 언론사 말진들과의 파트너십도 중요하다. 하루 내내 이어지는 각종 기자회견이나 성명 발표, 각종 정치집회에 참석해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는 것도 말진기자의 일이다.

또 유력 정치인들과의 인터뷰에 배석해 인터뷰 내용을 받아치는 것도 말진 기자의 임무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에게 자유로운 대화분위기를 보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녹음을 하기는 하지만, 두 번 일을 하지 않으려면 현장에서 제대로 받아쳐야 한다. 졸립더라도 절대 졸아서는 안된다.

언뜻 보면 정치팀 기자들이 단순노동만 반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현장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말을 보고 듣고 느끼며 정치팀 기자로서의 ‘감’을 익히는 훈련과정이다.


#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러나 ‘미관말직’ 말진 기자로서 현장에서 비애를 느낄 때도 있다. 정치팀 선배기자와 어느 유력 정치인의 인터뷰 자리에 배석했을 때의 일이다. 선배는 반갑게 인사한 뒤 나를 그 의원에게 소개했지만 그는 나와 눈을 맞추지도 않았고, 그 흔한 악수조차 건네지 않았다. 정말 단순 타자수로 대우받은 느낌이었다.

어느 재선 의원과의 만남에서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지명도도 높고 젊고 개혁적인 정치인이기에, “인사나 드리겠다”며 의원회관으로 찾아갔다. 그와 탁자에 나란히 앉았지만 그의 눈은 석간신문에 가 있었다. 이런저런 화제로 대화를 이어가려 안간힘을 썼지만 그는 대답을 하면서도 여전히 석간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경력이 일천한 말진기자라서 그렇게 대우했을까, 아니면 모든 기자들을 그렇게 대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사람을 대하는 바른 자세는 아닐 것이다.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든 예의를 갖추되 <한겨레>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당당함을 잃지 마라”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곱씹어야 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치팀 말진 기자가 느끼는 비애감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입사 뒤 3년 6개월 동안 법조팀 기자로서 일했던 나로서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그런 감정이기도 하다. 대법원-서울지법-대검-서울지검 등 서초동의 중요 관청을 기자 1인이 전담하면서 취재원과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하고 비판했던 법조팀 기자로서 말이다.

검찰·법원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감시하고 비판했던, 까칠한 법조기자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이유 때문일까? 법조팀에서 정치팀 기자로 넘어오면서 인식 전환을 요구하는 사건들도 있었다.

#2.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는 정치인들.

정치팀으로 발령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의원과 점심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정치자금 얘기가 나왔다. 이 의원은 나름대로 자산도 있고 자금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그는 “기업인의 모금 능력이 역시 우수하다”며 “기업인에게 후원회장을 맡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을 하는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내 친구가 자주 가는 단골 술집이 있는데, 거기서 자기 이름 대고 술을 먹으라고 하더군. 우리나라 정치자금법이 개인 후원을 너무 엄하게 제한하고 있어서 많이 도와주지 못하니까 그렇게라도 돕고 싶어하는 거지. 그래서 가끔 그렇게 먹었어.”

법조 기자로서의 기질이 발현된 것일까. 그 순간 ‘뇌물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수많은 공소장과 판결문에서 공무원이 접대받은 술값이 돈으로 환산돼 뇌물 액수로 특정되는 경우를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만약 그 친구가 이 의원에게 민원성 부탁을 하고 이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동안 친구가 의원에게 산 술은 뇌물이다. 둘은 ‘우정’을 강조하며 순수함과 진정성을 주장하겠지만, 수사·재판 과정으로 들어가면 친구가 산 술은 의원을 상대로 ‘한 방’의 로비를 노린 뇌물성 향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말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는 세간의 말을 실감한 자리였다. 그러면서도, ‘여의도 분들은 잠재적 피의자’라는 인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법조출입 기자처럼 ‘저 사람은 피의자’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취재할 수는 없으니까.

#3. 어느 정치인의 격정 토로

어느날은 검찰의 대형 비리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돼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어느 의원의 하소연도 들어야했다. 서울중앙지검을 출입할 때 비리사건에 연루돼 이름이 거론됐던 의원과의 점심식사 자리였다. 사건 취재차 그가 몸담았던 사무실에 찾아갔던 기억을 떠올려, 그와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사무실에 계셨죠?”라며 아는 척을 했다. 어느 취재원을 만나건, 그 사람과의 인연을 강조해야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혹시 ○○ 사건 때문에 우리 사무실 왔다갔냐?”며 자신의 억울함을 20분간 ‘격정적으로’ 토로하기 시작했다. “정말 순수하게 ‘비즈니스’ 차원에서, 문제가 된 사건 계약을 컨설팅해준 것일 뿐인데, 우리 회사에서 그 일을 해줬다는 이유만으로 한나라당에서 내 이름을 거론했다. 그리고 일부 언론이 기사를 써서 의혹을 더 부풀렸다. 기자들이 올 때마다 우리 직원이 충분히 설명했는데 기사는 엉뚱하게 나왔다.” 내가 “얘기 듣고 기사가 안된다는 생각에 아예 안썼다”고 했더니, “OO일보는 정말 이상하게 썼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무리하게 의혹 제기식 보도를 한 모양”이라며 위로했다.

“김태규씨! 사람 말 너무 믿지 마.”

정치팀의 고참 선배들이 하는 말이다.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기자를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이끌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말을 믿지 말라”는 지침은 비단 정치팀 기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모든 기자는 일단 모든 현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의심을 품어봐야 한다.

취재원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기에 그 사람의 말과 함께 몸짓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기자가 회심의 질문을 던졌을 때, 갑자기 눈을 내리깔거나 먼 산을 바라보며 얘기할 때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까지 기억하려면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덤벼들어야 하는데, 그래도 법조팀에서는 참과 거짓을 가리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법조팀에서 했던 것처럼, 정치인들을 만나면서도 그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러나 이들의 말은 다 진심으로 느껴진다. 말투와 몸짓, 눈빛에서 모두. 말에는 거침이 없고, 눈에는 촉촉하게 이슬이 맺힌다. 정말 모든 정치인들에게 진정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렵다. 다시금 선배들의 말이 떠오른다.

“김태규씨! 한 10년은 해야 돼.”

정치팀 기자로 발령나자 가까운 또래의 지인은 어릴 적 가졌던 국회에 대한 ‘환상’을 들려주었다.

“국회 지붕은 야광으로 돼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전쟁이 나면 그 야광 지붕이 열리면서 로보트 태권브이가 나온다고 생각했지.”

국회에 대해 품고 있는 경외감이 어린 아이의 가슴에 동화처럼 그려졌던 것 같다. 그러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모인 국회에서 위기상황에 로보트 태권브이가 떠오른다는 상상이 꼭 엉뚱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어른이 어릴 적 바랐던 것처럼, 나라의 위기상황에 국회가 정말로 제 몫을 다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정치인과 국민들의 이익이 공유됐으면 좋겠다는 게 정치팀 말진 기자의 소박한 바람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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