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각씨
현대차 정병각씨 45살에 시 전문지 ‘심상’ 통해 등단
대기업 홍보과장이 시인으로 등단했다.
현대자동차 홍보3팀 정병각(45·사진) 과장은 지난해 12월 청록파로 활동했던 고 박목월 시인이 1973년 창간한 월간 시 전문지〈심상〉이 공모한 ‘2007년 신인상’에 5편을 응모해 〈연〉, 〈항구〉, 〈그 여자〉, 〈그 여자 2〉 등 4편이 당선됐다.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소재로 한 당선작은 〈심상〉 1월호에 실렸다.
그는 고 1때 교지 만드는 일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됐다. 시인을 꿈꾸던 그는 3학년 때인 81년 시인을 꿈꾸는 울산의 고교생 30여명과 함께 ‘얼·글·일 세 글자의 리을 받침’이라는 뜻을 줄여 만든 문학동아리 ‘세 리을’을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았다.
“모를 때는 용감하게 써댔지만 시를 알게 되니 덜컥 겁이 나더군요. 갈수록 긴장과 함축의 맛도 떨어지고요. 흉내만 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자괴심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 벽을 뛰어넘었어야 했는데 그만 꿈을 멀리하고 말았지요.”
그는 88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사보 제작을 맡으면서 글과의 연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회사의 가치를 외부에 알리는 ‘업무상 글’과 ‘마음의 글’을 병행하긴 힘들었다. 그러다가 2년 전 20여년 전 자신의 습작노트를 다시 꺼냈다. “세 리을 동기와 후배들이 ‘초대 회장까지 지낸 사람이 뭐 하느냐’고 채근을 해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낭중지추. 숨겨진 재능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붓을 들기 시작한 지 1년 만인 2005년 울산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 공단문학상에 응모해 우수상을 받았다. 이어 신춘문예에 두차례 응모해 떨어진 뒤 세번째 응모한 〈심상〉에서 신인상에 당선됐다.
그는 “이미 오래 전에 포기하고 살았던 등단의 꿈을 뒤늦게나마 이루게 돼 기쁘지만 시가 어려워 팽개쳐 버렸던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쓰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며 “생활 주변의 삶을 소재로 따뜻한 시들을 써 2~3년 뒤 시집을 펴내고 싶다”고 말했다.
울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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