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현씨
재일한국인 진창현씨 자서전 출간 맞춰 방한
‘동양의 스트라디바리.’ 세계에 다섯 명밖에 없는 ‘무감사 마스터메이커(Hors Concours master maker)’라는 최고의 영예를 얻은 재일 한국인 진창현(78)씨. 그가 자서전 〈천상의 바이올린〉 출간에 맞춰 20일 한국에 왔다.
1929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진씨는 열네 살에 일본에 건너가 항만노역, 인력거·토목 인부 등을 전전하며 고학을 했다. 교사의 꿈을 안고 메이지 대학을 졸업했으나 조선인인 그에게 그 길은 열리지 않았다. 우연히 들은 ‘스트라디바리의 소리’에 대한 강연이 인생을 바꾸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오히려 자극이 돼 바이올린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독학이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당시 일본의 바이올린 장인들은 그를 제자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 낮에는 건설공사에 쓰이는 자갈을 채취하고, 밤에 공사판에 지은 판잣집에서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초기에 만든 것은 3000엔에 팔렸다. 요즘 만든 것은 150만엔(1500만원)을 호가한다.
그는 어떻게 독학으로 명인의 경지에 이르렀을까.
진씨는 초기 기술연마 단계에서 ‘다작’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통 1주일에 한대씩 만드는 바이올린을 진씨는 여섯 대를 만들었다. 그는 “일단 많이 만들어 보는 게 중요하다. 기술은 머리가 아니라 손가락의 감촉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현악기는 모두 600개. 비슷한 연배의 일본인 장인이 150개 정도의 현악기를 만든다니, 네 배 정도 많은 셈이다.
“나에게 스승은 대자연밖에 없었어요. 지구촌 이곳저곳을 유랑하면서 감성과 감각을 연마하고 시야를 넓혔습니다.” 멕시코와 페루의 인디오 마을에서는 바이올린 염료에 쓰는 천연식물성 염료를 입수했다. 포르투갈의 나자레 해안의 석양에선 명기 ‘구아르네리’의 색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의 해돋이에서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색을 보았다.
한국과는 달리 진씨는 일본에선 유명인이다. 일본 〈후지티브이〉에서 진씨의 일대기를 드라마로 제작·방영했다. 일본 문부성에선 진씨의 이야기를 일본 고등학교 2학년 영어교과서에 싣기로 결정했단다. 그는 인생을 성취한 곳이 일본인 탓에 한국만큼이나 일본의 자연도, 일본 사람들도 사랑한다고 했다.
“저의 천직이, 저의 인생 이야기가 한국과 일본의 교류와 협력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글 이화주 기자 holly@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글 이화주 기자 holly@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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