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소설가 공지영씨와 〈허삼관 매혈기〉의 중국 작가 위화. 장철규 기자
한국작가 공지영이 중국작가 위화에게 묻다
자기도 읽기 싫은 작품 독자에게 강요해선 안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소설가 공지영씨와 <허삼관 매혈기>의 중국 작가 위화. 한국과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두 작가가 만났다. 상하이 푸단대에서 열리고 있는 제1회 한·중작가회의에 함께 참석한 두 사람은 10일 오전 따로 시간을 내서 서로의 작품에 대해, 그리고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두 사람은 2000년에 한국에서 처음 만난 이래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몇 차례 거듭 만나면서 친분을 쌓아 왔다. 공지영씨는 한국어로 번역된 위화의 소설을 거의 다 읽었지만, 공씨의 소설이 아직 중국어로 번역되지는 않아서 대담은 주로 공지영씨가 묻고 위화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회의 주제 ‘상처와 치유’, 문화대혁명과 관련있어
공지영(이하 공): 국내 일정뿐만 아니라 해외 일정도 많아서 아주 바쁜 걸로 아는데, 이번 한·중작가회의서 만나게 되어 반갑다. 2000년에 처음 만났을 때, 영어를 단 한 마디도 못하는 게 나한테는 충격이었다. 마침 이번 회의의 주제가 ‘상처와 치유’인데, 그것이 문화대혁명과도 관련이 있는 것인가?
위화: 그렇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학교를 다녀서 외국어 공부를 전혀 못했다. 아마 나와 같은 세대 작가들은 비슷할 것이다.
공: 나는 사실 1997년 당신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 한국어판이 나올 때 윤문 작업에 참여하면서 당신을 알게 됐다. 그 일을 하면서 무척 많이 울었다. 나와 거의 동년배인데도 너무 다르게 성장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 소설은 어떻게 쓰게 됐나?
제3자 시점으로는 막혀 일인칭으로 바꿨더니 술술 위화: 당시의 창작 동기는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불안한 시대를 살아 온 한 사람의 운명을 그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제삼자의 시점으로 쓰려 했는데, 도저히 써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일인칭으로 바꾸었더니 아주 쉽게 쓸 수 있었다. 삼인칭으로 쓰면 주인공은 단지 고통을 겪는 인물일 따름이다. 일인칭으로 쓰게 되자 그 사람이 고난을 겪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인생의 낙을 찾아 가는 면모를 그릴 수가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해 보자. 최근 당신의 어떤 소설이 한국에서 무척 많이 팔렸다고 들었는데, 그 작품이 무언가? 공: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사형수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죽음과 행복이라는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중국에서도 여러 출판사가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지금 검토 중이다. 많이 팔리는 걸로 치자면 당신도 만만치 않은 걸로 안다. 초판을 50만부 찍기도 했다는 게 사실인가? 위화: 중국의 책값이 한국보다 싸기 때문에 그다지 많이는 벌지 못한다.(웃음) 50만부 초판 건은 사실이다. 출판사의 생각으로는 만일 적게 찍었다가 필요한 사람이 책을 구하지 못하게 되면 해적판을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내 소설 중에서는 <살아간다는 것>이 100만부로 가장 많이 팔렸고, 2005년작인 <형제>는 70, 80만부 정도 팔렸다. 공: <형제>는 곧 한국에서도 번역돼 나온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가? 문혁은 중세 암흑기…지금 분출 욕망은 유럽보다 극단적 위화: <형제>는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은 문혁 시기의 반인간성을 폭로하는 내용이고, 하권은 당대의 범람하는 욕망을 다룬 작품이다. 중국은 유럽이 500년에 걸쳐 겪은 사회 변화를 불과 40, 50년 사이에 겪었다. 문혁 시기는 유럽으로 치면 중세 암흑기에 해당한다. 한편 지금 분출되는 욕망은 유럽보다 더 극단적이다. 중국이라는 사회가 나에게 이런 작품을 쓸 기회를 준 셈이다. 공: 처음부터 유명한 작가가 될 것을 예측했나? 지금처럼 유명한 작가가 된 것이 앞으로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나? 위화: 크게 유명한 작가보다는 조금이라도 이름을 남기면 만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운의 작가다. 그러나 갑자기 유명 작가가 된 게 아니라, 그렇게 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점차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처음의 격정이 식지 않고 좋은 작가가 되고자 노력할 수 있었다. 초기의 출세작으로 곧바로 유명 작가가 된다면 아마도 그런 동력 없어졌을 것 같다. 공: 나도 9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쳐 6년 정도 공백기가 있었는데, 당신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위화: 그렇다. 시기와 기간도 비슷한 것 같다. 소설가로서 침묵기에는 산문을 많이 썼다. 인터넷이라는 신 매체가 충격을 주기도 했고, 이런 상황에서 소설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도 됐다. 그러나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면서 모든 게 순조롭게 풀렸다. 작가란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글을 쓸 수 없다. 특히 문학의 운명 같은 것에 대해 너무 많은 고민을 하면 글을 쓰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이야기성 강하고 단문이며 빠른 호흡에서 일치
공: 내 경험과 비슷하다. 나 역시 과연 소설이 무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기존 문학관의 요구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사정도 한 몫 했다. 앞에서 우리 두 사람의 성장 배경이 다르다고 했지만, 당신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내 소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성이 강하고 문장이 단문이며 설명을 많이 하지 않고 빠르게 진행하는 점이다. 그런데 차이는, 나의 경우 서구 문학사조의 영향이랄까 문학의 엄숙주의 때문에 나름대로 갈등했다는 점이다. 나는 작가로서 이제부터 어깨에서 힘을 빼려고 하는데, 당신은 이미 힘을 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위화: 20세기 모더니즘적 소설의 단계는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소설도 삶과 마찬가지다. 모든 걸 완벽하게 구비할 수는 없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나는 언제나 앞서 쓴 작품은 잊고 새로운 주제에 맞는 창작 방법을 찾는 데에 주력한다. 이미 완성된 방식을 떠나서 새로운 서술 방식과 표현방법을 모색한다. 작품 내용에 따라 우아한 미문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서슴없이 아주 비속한 언어를 쓰기도 한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나는 소설을 축구에 비교하고 싶다. 아무리 선수의 동작이 아름다워도 골을 넣지 못하면 무효다. 반대로 동작이 우스꽝스러워도 골이 들어가면 성공인 것이다.
어두운 얘기 뒤 발랄한 사랑 다루면서 연극배우가 된 느낌
공: 내 경우에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마치고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쓰기 시작할 때는 내가 마치 연극배우가 된 느낌이었다. 무겁고 어두운 사형수 얘기를 끝내고 가볍고 발랄한 사랑 이야기를 쓰면서 나 역시 사형수에서 연애하는 청년으로 바뀐 느낌이었다. 지금은 다시 신문에 유머러스한 가족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소설에 유머라는 요소를 집어넣는 셈이다. 지금 내 문학의 목표는 문학의 엄숙주의를 지양하면서 좀 더 오락적인, 즐거움을 주는 소설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자기도 읽기 싫은 작품 써놓고 독자에게 강요하는 건 문제
위와: 당신이 말한 그 방향이 우리 두 사람의 방향이자 앞으로 문학이 나아갈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작가들이 독자들의 취향이 너무 저급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작가들의 책임이 크다. 작가들이 써 놓고 자신도 읽기 싫은 작품을 독자에게 읽으라고 강요한다는 건 문제다. 영어권 독자들을 대상으로 시기 불문하고 가장 좋아하는 작품 100편을 뽑았더니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두 편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19세기 작품들이었다. 이런 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이야기성이 강하고 인물 성격이 분명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공: 공감한다. 읽기 쉽고 이야기성 강한 당신의 문학적 특징이 중국 평단과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나?
위화: 개인적으로 중국 평단은 아직까지 모더니즘의 파장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수 있지만, 읽기 어려운 난해한 작품이 좋은 작품 취급 받는다.
비와 바람은 문학적 상상력의 현실적 근거
공: 다음달에 한국에 오는 걸로 아는데, 어떤 일로 오는지?
위화: 출판사 창비 초청으로 간다. 연세대와 서강대에서 특강을 하게 된다. ‘문학의 상상력’이라는 주제다. 내가 좋아하는 중국의 고전 중에 <수신기>가 있다. 이 책 중 한 장면이 아주 인상적인데, 하늘에서 비가 올 때는 신선이 지상에 내려오는 것이고 바람이 불면 다시 올라간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비와 바람은 문학적 상상력의 현실적 근거다. 상상력이란 현실적 근거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상하이(중국)/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제3자 시점으로는 막혀 일인칭으로 바꿨더니 술술 위화: 당시의 창작 동기는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불안한 시대를 살아 온 한 사람의 운명을 그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제삼자의 시점으로 쓰려 했는데, 도저히 써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일인칭으로 바꾸었더니 아주 쉽게 쓸 수 있었다. 삼인칭으로 쓰면 주인공은 단지 고통을 겪는 인물일 따름이다. 일인칭으로 쓰게 되자 그 사람이 고난을 겪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인생의 낙을 찾아 가는 면모를 그릴 수가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해 보자. 최근 당신의 어떤 소설이 한국에서 무척 많이 팔렸다고 들었는데, 그 작품이 무언가? 공: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사형수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죽음과 행복이라는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중국에서도 여러 출판사가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지금 검토 중이다. 많이 팔리는 걸로 치자면 당신도 만만치 않은 걸로 안다. 초판을 50만부 찍기도 했다는 게 사실인가? 위화: 중국의 책값이 한국보다 싸기 때문에 그다지 많이는 벌지 못한다.(웃음) 50만부 초판 건은 사실이다. 출판사의 생각으로는 만일 적게 찍었다가 필요한 사람이 책을 구하지 못하게 되면 해적판을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내 소설 중에서는 <살아간다는 것>이 100만부로 가장 많이 팔렸고, 2005년작인 <형제>는 70, 80만부 정도 팔렸다. 공: <형제>는 곧 한국에서도 번역돼 나온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가? 문혁은 중세 암흑기…지금 분출 욕망은 유럽보다 극단적 위화: <형제>는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은 문혁 시기의 반인간성을 폭로하는 내용이고, 하권은 당대의 범람하는 욕망을 다룬 작품이다. 중국은 유럽이 500년에 걸쳐 겪은 사회 변화를 불과 40, 50년 사이에 겪었다. 문혁 시기는 유럽으로 치면 중세 암흑기에 해당한다. 한편 지금 분출되는 욕망은 유럽보다 더 극단적이다. 중국이라는 사회가 나에게 이런 작품을 쓸 기회를 준 셈이다. 공: 처음부터 유명한 작가가 될 것을 예측했나? 지금처럼 유명한 작가가 된 것이 앞으로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나? 위화: 크게 유명한 작가보다는 조금이라도 이름을 남기면 만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운의 작가다. 그러나 갑자기 유명 작가가 된 게 아니라, 그렇게 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점차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처음의 격정이 식지 않고 좋은 작가가 되고자 노력할 수 있었다. 초기의 출세작으로 곧바로 유명 작가가 된다면 아마도 그런 동력 없어졌을 것 같다. 공: 나도 9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쳐 6년 정도 공백기가 있었는데, 당신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위화: 그렇다. 시기와 기간도 비슷한 것 같다. 소설가로서 침묵기에는 산문을 많이 썼다. 인터넷이라는 신 매체가 충격을 주기도 했고, 이런 상황에서 소설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도 됐다. 그러나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면서 모든 게 순조롭게 풀렸다. 작가란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글을 쓸 수 없다. 특히 문학의 운명 같은 것에 대해 너무 많은 고민을 하면 글을 쓰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이야기성 강하고 단문이며 빠른 호흡에서 일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소설가 공지영씨와 〈허삼관 매혈기〉의 중국 작가 위화. 장철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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