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의 역사왜곡인가, 아니면 ‘식민지 근대화론’ 학자의 억지주장인가?”
‘식민지 근대화론’ 진영의 대표 학자인 서울대 이영훈 교수(한국사)의 역사대하소설 <아리랑>(전 12권, 1990~94) 비판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교수는 뉴라이트재단과 헤럴드미디어가 공동발행하는 계간 <시대정신> 여름호에서 조정래씨의 소설 <아리랑>을 ‘역사학 텍스트’로 분석한 결과, 자격과 함량 미달이었다고 비판했다. 이 소설은 1904년 러일전쟁 이후 1945년 해방 때까지 일제식민치하에서 조선 민중의 고난과 수난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교수는 <아리랑>을 “일종의 광기, 학살의 광기와 거꾸로 통하는 광기”로 가득 찬 소설이라고 비판하면서 소설이 제시한 연대기적 사실조차 대부분 사실과 동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소설 첫 대목에서는 토지조사 사업(1910~1918) 과정에서 지주를 크게 다치게 한 차갑수라는 농민을 김제경찰서 죽산주재소장이 마을 당산나무에 결박하고는 ‘조선경찰령’에 따라 즉결 총살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나아가 그런 법령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정래씨 쪽은 “당시 일본 경찰이 (즉결처분 피해자에 대해)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며 즉결처형 묘사는 당시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대전대 도면회 교수는 “한일합방 이후 경찰의 즉결처형을 가능케 한 법령은 없었으나, 무단통치 기간인 1910년대에는 군대의 경찰인 헌병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어 말썽이 많았다”고 밝혔다. 즉 법령을 뛰어넘는 월권행위가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일본군이 전투 중 체포한 의병을 즉결처형하는 등 ‘법 따로 현실 따로’의 사례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소설은 또 김제평야가 러일전쟁 이후에 야금야금 일본인 지주 손에 들어갔다고 묘사한 것은 물론, 그 이전에 실제 전라북도 관찰사로 재직한 이완용이 김제만경평야를 일본에 팔아먹었다고 했으나, 이는 역사조작이라고 이 교수는 주장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김제만경평야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수리시설이 전혀 없어 대부분 갈대가 무성한 황무지였을 뿐이고, 이곳이 곡창지대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이후가 된다. 즉 일본인들이 곡창지대로 개발했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빼앗겼다는 게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상찬 서울대 교수(한국사)는 “조선시대에도 ‘김제만경평야는 넓다’는 말이 있었다”며 “일제 때 수리시설 확충으로 농지가 더 늘어났을 수는 있지만 일제에 의해 곡창지대화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