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30돌 기념 국내외 순회공연 나서는 ‘원년’ 김덕수패
탄생 30돌 기념 국내외 순회공연 나서는 ‘원년’ 김덕수패
1978년 4월의 어느날, 서울 종로구 원서동 소극장 ‘공간사랑’. 30대 초반의 사내 네명이 흰 무명옷을 입고 앉아 있다. 손에는 북과 장구, 꽹과리, 징을 들고서. 원조 한류라 할 수 있는 ‘사물놀이’가 탄생한 것이다. 농악의 여러 악기는 4가지 악기로 줄었고, 무대는 마당에서 극장으로 변했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들 남사당의 후예들은 풍물가락의 무대화를 위해 전국의 대가들을 찾아다니며 배운 가락을 다시 4가지 악기로 편성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들은 1982년 미국 달라스에서 열린 세계타악인대회 이후 1991년까지 100여 나라에서 600여차례 이상의 공연을 했다. 민속학자 심우성(현 공주민속극박물관장)이 이름붙여준 ‘사물놀이’라는 고유명사는 보통명사가 됐다. <뉴욕타임스>에서 “세계를 뒤흔든 혼의 소리”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 ‘사물놀이’가 등록되기에 이른다.
사물놀이가 탄생한지 30년이 흘렀다. 21일 공간사랑에는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등 사물놀이 원년 멤버와 84년부터 고 김용배의 빈자리를 메운 남기문 등 4명의 광대가 한 자리에 다시 모였다. 무대를 빼면 의자 50여개를 겨우 놓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다. 김덕수는 “공간사랑은 쉼쉬기조차 어려웠던 70년대 중반 이후 문화운동이 시작된 위대한 공간”이라며 “바로 이곳에서 사물놀이는 몸부림치듯 일어났다”고 회고했다. 이광수는 “인간문화재 제도를 만드는 대신 아무데서나 공연을 못하게 하는 등 전통문화를 박물관으로 보내려는 시도에 맞서 암암리에 시작한 것이 바로 사물놀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사물놀이 세계화를 위한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물놀이 하우스’를 만들어 국악 공연과 교육, 한국문화 체험 등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최종실은 “죽기 전에 뭘 남기고 갈 것인가 고민했다”며 “40주년을 맞이할 때까지 앞으로 10년 동안 노력해서 사물놀이의 메카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3월 6~7일에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사물놀이 탄생 30주년 기념공연’을 열고, 이어 지방 순회공연을 할 예정이다. 미국과 유럽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1577-5266.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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